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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예술/음악

증언(솔로몬 볼코프 지음, 이론과 실천 刊) 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by 서음인 2016. 6. 1.

쇼스타코비치의 음반을 가지고 있거나 그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소지' 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이 성립되는 시기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군사독재 시절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음악 교과서에 그는 소련의 계관 음악가이자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음악에 충실하게 반영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의 대표적 작가로 소개되어 왔으며, 실제 그의 작품들은 냉전시대 소련 정부의 효과적인 프로파간다로 활용되어 왔기에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는다' 는 나라에서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1975년) 이후인 1979년에,  생전에 그가 음악학자인 솔로몬 볼코프에게 구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술된 회고록인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회상록 이 미국에서 발간된 후로 이러한 평가는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맞게 된다. 이 책에서 그는 질식한 것 같은 전체주의 시대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음악가로서의 고뇌와 고통, 그리고 개인의 예술혼을 억압하는 스탈린 체제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고백은 그의 음악에 나타나는 적나라한 고통과 분노 (그리고 그러한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는) 풍자와 위트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의 교향곡 10번은 스탈린이 사망한 해인 1953년에 그 독재자의 죽음 이후 발표되었다. 이 곡의 1악장은 비극적이고 절망적이다. 아마도 스탈린 시대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묘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어지는 2악장은 스탈린 시대의 공포정치를 눈앞에서 대하는 듯한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혹독한 겨울바람을 맞는 기분이랄까? 작곡가 자신은 앞서 언급했던 그의 회고록 증언에서 이 부분이 스탈린의 음악적 초상화라고 직접 고백한 바 있다. 이어지는 풍자적인 3악장에 이어서 고통을 승화시킨 승리를 표현했다는 4 악장에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확실한 기쁨보다는 불안하고 머뭇거리는 듯한, 무엇엔가 쫒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준 스탈린 체제가 지나갔지만 그의 고난이 다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예감한 것은 아니었을지....  외향적이고 드라마틱한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연주보다는, 작곡자의 불안과 긴장을 잘 표현한 것처럼 들리는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의 실황연주에 마음이 더 끌리는 이유다.

 

마지막 한 가지. 쇼스타코비치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어떤 음악적 초상화를 얻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증언>

므라빈스키

카라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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