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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예술/음악

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푸른숲 펴냄)

by 서음인 2016. 6. 1.

제목부터 내용까지 기독교적인 言辭로 가득 차 있지만 실상은 지극히 세속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종교와는 무관하거나 심지어 반기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강렬한 종교적 아우라를 풍기는 책도 있다. 이 책 "지구 위의 작업실" 이 바로 후자에 해당되는 책이리라. 

시인이자 클래식 음악광인 이 책의 저자 김갑수가 그의 '작업실' 에서 하는 일이란 하루 종일 클래식 음악을 듣고, 오디오를 바꾸고, 커피를 볶아 마시는 지극히 세속적인, 일상인의 눈으로 보자면 '한량' 에 가까운 행위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세상과 떨어진 지하 작업실 안에서 음악에 파묻히는 일이 '생의 두 번째 문' 혹은 '존재의 심연'에 가 닿는 행위라고 말한다. 종교를 가졌으되 세속적인 동기와 현세적인 가치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실천적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 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저자와 같이 종교가 없으되 일상을 벗어나는 존재의 심연과 근거를 추구하는 사람을 넓은 의미에서 종교인(Homo religious)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찾고자 노력하는 '존재의 심연'의 실체야말로 신학자 폴 틸리히가 "존재의 근거" 라고 명명했던,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가지 사이에서 만났고,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체험했던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겠는가? 

세속적인 성공 이데올로기를 마치 기독교 영성인 양 포장하여 내놓는 얄팍한 영성서적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 시대에 영원을 향한 그의 진지한 추구가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자신만의 성에 파묻히는 방법을 통해서 그가 추구하는 '존재의 심연'의 실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목 차 

프롤로그
지구 위의 작업실, 줄라이홀
'THE'와 '나'의 작업실 이야기
작업실이 지하로 피신해 들어가야 할 이유, 마흔아홉 가지
'줄리아홀'을 짓다
3만 장, 늙어도 늙지 않는 징글징글한 질병
유령과 키치, 작업실의 동거인들
작업실의 커피, 일상의 '리추얼'
커피, 자신에 대한 예의
작업실에서의 일과가 곧 리추얼이다
C8H1ON402 중독증, 우아하게 자기를 파괴하는 권리
쓸쓸한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나는 커피를 볶는다
낭만아, 우리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자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 그립다
작업실에 가득한 소리, 아날로그의 공감
호모 히스테리쿠스들은 모두 외롭다
차이코프스키, 나를 스치는 몽상
아날로그로 가는 길
소소하고, 사사롭고, 비본질적인
오디오,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오디오, 거기에 생의 '저쪽' 이 있다
음악이 다가오지 않을 때 오디오 놀음에 빠져보라
내 이름은 '톤팔이' 실은 나 불안한다
스피커, 오래된 것들의 오래된 이야기들
에필로그 -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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