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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예술/음악

모짜르트, 음악과 신앙의 만남 (한스 큉 지음, 이레서원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요 약   모짜르트처럼 신학자들의 사랑을 받는 음악가도 드문 것 같습니다. 깊은 신앙심으로 경건한 삶을 살아가며 종교음악의 걸작들을 남긴 바하나 브루크너보다, 경건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말년에는 변태적이기까지 했던 이 사내를 신학자들이 더 편애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대체적인 대답은 모짜르트의 음악이 "초월과 신성의 자취"를 가장 많이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같습니다. 바하의 음악이 잘 짜여진 한 편의 강해요, 베토벤이나 브루크너의 음악이 심오한 간증이라면, 모짜르트의 음악은 천사들이 직접 땅에 내려와 연주하는 성가대 찬양쯤 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모짜르트는 지구를 찾아온 방문객에 불과하였다” 라고 말했다는 슈바이처나, “천국에 가면 루터, 칼빈, 슐라이에르마허보다 모짜르트의 안부를 먼저 묻겠다”던 칼 바르트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짜르트는 특히 신학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곡가인 것 같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에 대한 급진적 비판으로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이자  칼 바르트의 제자인 한스 큉이 이 책을 통해 모짜르트에 대한  사랑고백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모차르트의 시대는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구체제에 맞서 비판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정신에 근거한 계몽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전환기였으며, 바하나 하이든과 같이 영주나 봉건귀족의 가신으로 살아가던 음악가들이 베토벤처럼 독립된 부르주아 예술가로 서게 되는 과도적 시기이기도 했다. 궁정이나 교회 소속이 아닌  프리렌서로 활동했던 모짜르트 역시 고위 성직자들의 교권남용과 타락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가톨릭교회의 종교의식들을 혐오했으며 전통적 형태의 신앙적 경건과는 거리가 멀기는 했지만,  저자는 어두웠던 말년을 포함한 인생의 어떤 시기에도 모짜르트가 기독교 신앙 자체에 대한 신뢰를 철회한 적은 없었으며 그의 작품들 역시 그러한 그의 신앙고백의 결과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던 모짜르트라는 인간을 신성화하거나, 그의 음악을 신학을 위해 징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초월의 자취들을 발견해 왔으며, 심지어는 일반계시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바르트마저도 그의 음악에서 ‘거의 신성에 가까운 위대함’, ‘하나님의 진리와 계시에 대한 그림자’를 읽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의 음악은 바하의 음악과 같이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베토벤이나 브루크너의 음악처럼 인생의 고백을 담고 있지도 않지만 궁극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 즉 신비에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저자에 의하면 "모짜르트의 음악은 (루터나 바르트를 연상시키는 표현인) 나에게 대항하여 나를 압도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마치 가톨릭의 '주입된 의' 라는 칭의개념을 떠오르게 하는) 나를 감싸 안아 주고 나에게 침투해 들어와 나의 내부로부터 나를 기쁘게 하는, 완벽히 나를 채워 주는” 어떤 것이며, “우리에게 빛과 어두움, 기쁨과 슬픔, 생명과 죽음의 양면 모두를 끊임없이 보여주며, 그 안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에 근거하여 어두움은 언제나 빛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또한  그의 음악에서 우리는 “끝간 데 없는 아름다움의 무한한 소리가 우리를 초월한다고 느끼며, 형언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어떤 신비에 의한 감동을 맛보고, 우리에게 해방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경험 속에서 자신을 초월하는 현존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그의 음악은 "스스로의 아름다움 속에서 그 순수함과 완전함을 통하여 이미 우리들에게 영원한 나라를 맛보게 해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모짜르트가 프리메이슨에 가입했으며 가톨릭의 경건과 제도적 교회에 무관심했다는 등의 사실을 바탕으로 그의 음악을 하늘을 배제한 땅의 관점에서, 신학을 배제한 인간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는 천사가 아닌 인간이었으며, 그의 음악은 “가톨릭적 경건에 의해 굴절된 모든 편협한 신앙을 싫어한 어떤 사람의 작품”이기에 이러한 시도는 나름의 정당성과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모짜르트의 음악이 가진 무한한 아름다움이 지향하는 초월과 영원의 메시지를 완전히 배제한 채 그 음악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심지어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던 독설가 버나드 쇼 마저도 “모차르트의 음악은 하나님의 품 안을 벗어난 어떤 곳에서도 소리를 낼 수 없도록 쓰여진 유일한 음악”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우리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이 위대한 유산을 마음껏 향유하되“음악에 의해 유발될 수 있는 종교적인 감정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 시대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주목하는 데 태만하게 될 위험” 에 대한 저자의 경고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CCM 이 거의 광풍 수준으로 유행하는 한국교회는 저자의 이 경고를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종교가 흔히 그러하듯이 음악도 언제든 현실도피를 위한 “아편”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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