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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교의 .변증

공정한 환대 (레티 러셀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1. 20세기의 여성해방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신학자요 뉴욕 이스트할렘의 빈민가에서 목회했던 장로교 목사로 모든 소수자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평생 헌신한 故 레티 러셀 (Letti M. Ressell 1929-2007) 은 그녀의 마지막 저서가 된 이 책에서 “환대란 위기에 봉착한 우리 세계를 치유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하나님과 함께 참여하기 위해서 차이를 넘어서 낯선 자들과 연대함으로서 하나님의 환영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환대는 성서 메시지의 근본이자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며, 모든 교회는 세상의 불의와 분열을 치유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환대의 영성을 실천하기 위해 (1) 낮선 자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동역자가 됨으로서 인종, 성별, 성적 지향의 차이를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2) 이 세상 안에서 교회가 정의와 평화의 도구로 갱신되기를 기도하면서 세상과 교회 내에 존재하는 억압의 구조에 지속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공정한 환대를 실천함으로 중심/주변, 내부자/낯선 자의 구별이 흐려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며, 정의를 위한 노력이야말로 낮선 자에 대한 환대의 핵심이다.

 

2. 레티 러셀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유명한 책 <오리엔탈리즘>의 출간 이후 등장한 탈식민주의적 해석 (Postcolonial Interpretation) 의 도움을 받아 분열된 오늘의 세계를 형성한 식민주의의 인식론적 틀을 분석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식민주의는 제국주의 시대의 물리적 점령에서 세계은행이나 무역기구를 통한 지배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지금도 서구 문화를 만국공통의 표준으로 제시함으로서 이러한 표준을 부과하는 자들 - 서구인, 백인, 남성 - 에게 과거의 피식민지배자들을 종속시키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1) ‘마음의 非식민주의화’를 단행함으로서 서구적 사고가 표준적이고 우월하다는 식민주의적 사고에 대해 맞서고, (2) 다양성을 긍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짓는’ 권리를 주장함으로서 ‘해방하는 차이 (Emancipatory difference)' 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저자는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환대의 신학’을 세우기 위해, ‘본문으로 괴롭히기 (textual harassment)’ 를 통해 지속적으로 타자에 대한 배제와 억압을 자행하는 ‘차이의 해석학’ 대신 성서의 또다른 중요한 전통 중 하나로 하나님의 환대 속에서 사람들을 환영하면서 차이를 긍정하는 ‘환대의 해석학’으로 눈을 돌린다. 저자에 의하면 성서가 증거하는 환대는 (1) 환대를 실현하는 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만나거나 그리스도를 대접하며 (2) 주변화된 사람들을 위한 인권옹호와 환영을 포함하고 (3) 일방적 시혜가 아닌 상호환영의 행위이자 (4) 궁극적으로 새로운 공동체의 창조로 이어진다는 특징을 가지며, 이러한 성서 속의 환대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1) 드러난 성서의 기록 이면에 숨어 있는 메시지에 주의하는 ‘의심의 해석학’으로 읽기 (2) 성서에 드러난 가부장 제도를 인식하고 그와 대결하기 (3) 부정적이고 모호한 것처럼 보이는 본문들 속에서도 감추어진 하나님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언질의 해석학 (Hermeneutics of Commitment)’으로 읽기를 통해 본문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4. 이러한 ‘환대의 해석학’ 의 관점에서 보자면 (1) 바벨탑 이야기는 강제적으로 부과된 일치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려는 권력자들의 허황된 계획을 하나님이 좌절시키신 사건일 뿐 아니라, 억압받던 사람들이 마침내 다양한 인종과 언어와 가족들로 구성된 공동체로 해방된 사건이기도 하며, 요란하고 유쾌한 차이로 가득 찬 세계야말로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2) 또한 흔히 ‘차이’를 분열과 배제 그리고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삼아 왔던 ‘선택’의 교리는  '환대의 해석학' 을 통과하면서 외부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환영을 개방하는 가장 강력한 보증으로 바뀌게 된다.

 

5. 저자는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거룩한 존재이기에 거룩하고 신성하게 대접받아야 하며, 우리가 예전에 낮선 자들이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환영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낯선 자들에게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환대야말로 멸시받고 거절당하고 곤궁한 모든 이웃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복음적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눈에는 더 이상 아무도 타자가 아니며, 교회는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분열된 창조물들을 수선하고 교회의 일치를 이루어 주시리라는 ‘불가능한 가능성 (impossible possibility)'을 믿고 매일을 살아가면서 (1) 지배의 욕망을 포기하고 우리가 가진 권력을 타자와 나눔으로서 권력 분배의 균형을 유지하고 (2) 변두리로 내몰린 외부자의 관점에 우선권을 주며 (3) 진실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정의의 실현과 세상의 변혁을 위한 노력을 통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하나님의 환대를 세상 가운데서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소망해야 하는 미래는 차이를 드러내는 창조의 무지개를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개방된 미래다!

 

6. 다양성이 인간에게 허락된 커다란 축복이며 환대야말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라는 자신의 신학에 따라 평생 수많은 ‘타자들’에 대한 공정한 환대를 실천했던, 그러나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성적 소수자(레즈비언) 로 살아갔던 레티의 삶과, 칼날 같은 지성으로 자신과 다른 신학적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언제든지 은혜에서 배제하고 기꺼이 지옥으로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신실한’ 한국의 남성 이성애자 그리스인들의 삶 중 과연 어떤 것이 더 성서적이고 은혜로운 삶의 길일까? 아마도 ‘차이의 해석학’ 으로 무장한 한국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에게 레티가 강조하는 ‘환대의 해석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paradigm shift) 을 요구하는 것은 ‘개종’에 버금가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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