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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교의 .변증

종교의 미래 (하비 콕스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1. 몇년 전 <영성 음악 여성>이라는 책을 통해 오랜만에 이루어진 하비 콕스와의 재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새천년은 새로운 종교적 부흥의 시대이자 성령의 시대가 될 것이며 전 세계적인 은사주의 운동의 발흥이야말로 그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 사람이, 과연 과거에 종교의 세속화를 소리 높여 찬양하던 <세속도시>의 저자가 맞는가? 무엇이 '세속화 신학'의 전위였던 이 스타 신학자를 성령과 은사로의 급진적인 ‘회심’으로 이끌었는가? 과연 이 책 <종교의 미래>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까?


2. 하비 콕스는 새천년 벽두에 영적 세계의 모습을 특징짓는 세 가지 사실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1) 전 지구상의 공적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교의 부흥과 (2) 제도와 신조를 강조하고 진리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주장하는 근본주의의 쇠퇴, 그리고 (3) 직접적인 영적 체험과 실천적 제자도를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의 흥기이다. 저자에 의하면 (1) 한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과 동의어로 여겨졌던 문자적 명제로 이루어진 신조에 대한 지적 동의인 믿음(belief) 은, (2) 이제 ① 교리나 성직제도의 중재 없이 직접 하나님이나 성령과 만나는 영적 체험이나 ② 예수의 행함을 그대로 따르는 실천적 제자도를 강조하는 신앙(faith) 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중이다.


3. 유한하지만 영원을 자각하는 존재인 인간에게는 영원의 신비에 대한 경외의 감정이 존재하며, 이 감정이야말로 다양한 종교가 발생하는 태반이 된다. 그리고 각 종교가 가진 이야기들, 즉 신화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이 대면한 신비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생긴 가공물이자 그 신비에 대해 취할 올바른 자세를 상징하는 매개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을 교의적 신조에 대한 승인과 동일시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신화의 상징들을 값싼 명제들, 교리들, 사이비 과학적인 이론들로 바꾸어 문자적으로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 교리나 신조는 과거 신앙의 선조들이 직면했던 역사적 도전과 창조적 대응의 과정을 보여 주는 이정표나 표지판으로서 아직도 유용하지만, 교조화되어 ‘진리’를 방어하기 위한 울타리나 장벽이 되는 순간 사람들을 사라져가는 믿음(belief) 의 시대에 가두는 신앙(faith) 의 방해물로 전락한다.


4. 콕스는 오늘날 모든 개인이나 교파가 자신 있게 성서라고 부를 수 있고, 그것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할 수 있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의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 ‘단 하나의’ 성서가 아니고 성서에 대한 수많은 해석과 해설들로, 우리의 종교 전통에 서 있는 사람들이 영원의 신비에 관련된 문제들과 어떻게 씨름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매혹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성서의 문자에만 집중하는 대신 성서 본문 너머에 존재하는 저자와 그들이 지시하는 신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성서의 바깥에 존재하는 특별한 권위에 의존하는 대신 상상력을 사용하여 성서가 생겨난 역사적 맥락 속에 들어가 성서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이러한 성서읽기는 우리를 성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 이야기의 힘에 노출시키며, 결국은 앞서 간 영적 선조들의 여정에 동참하게 한다.


5. 성서가 증거하는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의 커다란 줄기를 가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1) 주로 구약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세상의 창조와 함께 시작하여 왜곡된 세상을 정의와 평화의 공동체로 갱신하는 것에 대한 소망으로 끝나는 헤브라이 주기. (2)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구약성서의 소망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크리스마스 주기. 그 나라의 일원으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특정한 신조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예수가 소망했던 그 나라가 우리 시대에 응하도록 일하는 것이다. (3) 예수의 수난 여정으로부터 시작되어 예수의 부활로 완성된 부활절 주기. 제자들은 십자가 죽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그가 구현한 도래할 나라가 패배당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으며,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에 의해 시작된 나라는 이제 성령에 의해 교회와 세상 속으로 확장된다.


6. 저자는 이 이야기를 따라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2000년 역사를 다시 세 시대로 나눈다. 


(1) 신앙의 시대는 예수와 그의 직계 제자들과 함께 시작되어 약 300년간 지속되었다. 이 시대에 단 하나의 ‘초대 그리스도교’ 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표준화된 신학도 단일한 사도적 권위도 단일한 관리형태도 공동으로 읽히는 성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초점은 오직 예수였으며, 그들이 공유하는 유일한 신조는 “예수는 주님이시다” 라는 직설적 고백 혹은 일종의 충성 맹세였다. 그들을 함께 묶어 주었던 것은 조직이나 위계, 신조가 아니라 그들이 같은 성령을 나누어 가졌으며 평화의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사명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기도와 빵과 포도주를 나눔, 예수의 모범을 구체적으로 실천함,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실천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2) 예수의 죽음 이후 발생한 작은 규모의 변화들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시대는 3-4세기에 영구적인 형태로 굳어진 후 1500년간 지속되었고 오늘날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성령의 운동으로 시작했던 그리스도교는 이 시대에 점차 믿어야 할 조항들의 목록표로 굳어졌으며, 규정된 울타리를 쳐놓고 사제 엘리트가 평신도 위에 군림하며 지배하는 종교 왕국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신앙(faith) 은 주교나 목사에게 복종하고 그가 가르치는 교리에 동의하는 것, 즉 믿음(belief) 으로 바뀌었다. 


(3) 교회의 족쇄에 대한 성령의 내재적 저항이 제3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확산되고 있는 성령의 시대는, 다시 기독교를 교리의 체계가 아닌 삶의 방식으로 간주하며 성례전이나 성직제도의 중재 없는 하나님 혹은 성령과의 직접적 교제의 체험을 강조한다. 또한 오늘날 예수에 대한 진술에 동의하기보다는 실제로 예수를 따르는데 기초한 신앙의 공동체들이 특히 제3세계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그들의 신학적 관심은 하나님의 존재 비존재나 하나님의 본성과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이 아니라 왜 가난과 기아가 하나님의 세계에 아직도 만연하고 있는가와 같은 실천적 문제들이다.


7. 저자는 오늘날 중간 1500년과는 덜 닮고 처음 300년과 더 닮은 새로운 모습의 그리스도교가 탄생함에 따라, 기독교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그리스도교가 가지는 활력의 중심인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리스도교는 점점 덜 교리적이고 더 많이 실천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모든 징조들은 우리가 성령의 새 시대에 놓여 있다는 것과 미래는 '신앙의 미래'가 될 것임을 알려 준다. 오늘날 이와 같이 신조에 얽매인 그리스도교의 쇠퇴와 신앙의 부흥, 그리고 성령의 시대의 탄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1) 교리보다 직접적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오순절 교회의 폭발적 부흥과, (2) 예수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정통신학) 보다는 예수의 길을 따르는 올바른 방법(정통실천)을 훨씬 중시하는 해방신학의 탄생이다. 또한 (3) 비교파적이고 탈중심적이며, 교리의 수호보다는 올바른 실천을 강조하는 복음주의권의 이머징 교회 운동 역시 이러한 흐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특권을 가진 종교적 제도를 통해 성직자계급이 지키고 전승해 주는 믿음의 조항들의 한 체계로서 이해된 그리스도교는 죽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친교의 다양한 전 지구적 연결망으로 무한하게 다양화된 삶의 방식들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그리스도교가 일어나고 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길은 없으며 찬란한 중세적 종합(christendom) 으로 돌아가는 길도 없을 뿐 아니라,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이 칭송하는 옛 종교로 돌아가는 길도 없다. 기독교가 오늘과 내일 하고 있어야 하는 일은 예수와 그를 즉시 따르는 사람들이 하고 있었던 일을 계속 행하는 것이다.


8. 하비 콕스는 결코 지나치게 독창적이거나 심오한 나머지 누구도 알아듣기 힘든 이론을 펼치는 신학자는 아닌 것 같다. 그가 신학을 하는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강단이나 연구실이 아닌 ‘세속사회’의 한복판이며, 그를 지배하는 신학적 관심은 언제나 정통신학(orthodoxy) 보다는 정통실천(orthopraxis) 에 가깝다. 이 책의 미덕 역시 독창성이나 심오함에 있다기보다는 현대의 종교학과 해석학, 성서비평학의 이론에서부터 교회사와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동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잘 활용하여 우리에게 그리스도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알기 쉽고 매력적인 하나의 전망을 제시해 주었다는 데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흥미로운 전망에 선뜻 동의하기가 주저되는 이유는 과거 <세속도시>에서 그가 행한 예언이 결국 빗나가고 말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9. 이 상처받은 예언자가 이번에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의 명예뿐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라도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새로운 부흥기를 맞고 있다는 그의 예언이 반드시 현실화되기를 소망하는 맘 간절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때 종교의 부흥이라는  그의 첫 번째 예언 뿐 아니라 근본주의의 쇠퇴와 새로운 기독교의 흥기라는 다른 두 예언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과연 오늘 기독교는 이 땅을 갱신하는 새로운 부흥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가? 과연 오늘의 은사주의 운동은 기존의 왜곡된 교회를 갱신하기 위한 미래적 대안으로서의 모습을 점점 더 명확히 보여 주고 있는가? 과연 참된 실천(praxis)을 강조하는 새로운 기독교는 정통교리(dogma)의  수호를 최고의 사명으로 아는 근본주의를 대신하여 점차 기독교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가?


목 차


Chapter 1 성령의 시대 : 세속적인 것 속에 있는 성스러운 것?

Chapter 2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꺼져버린 촛불 : 경외, 경이, 신앙

Chapter 3 배들은 이미 출항했다 : 신비로부터 신앙으로 가는 항해

Chapter 4 달리기 명수 두견새와 〈도마복음서〉 : 그렇지 않았을 때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Chapter 5 길을 가는 사람들 : 신앙에서 믿음으로 퇴화

Chapter 6 “주교는 너의 고위 사제이며 막강한 왕이시다” : 성직 계급제도의 발흥

Chapter 7 콘스탄티누스의 최후의 만찬 : 이단의 발명

Chapter 8 장관님과는 오찬을 못해요 : 교황제도를 이해하기

Chapter 9 귀신이 출몰하는 집에서 살기 : 종교간 대화를 넘어서

Chapter 10 그들을 구명정에 태워라 : 근본주의의 파토스

Chapter 11 록키, 매기, 배리와 만나기 : 성서를 믿는 사람들은 어느 성서를 믿는가?

Chapter 12 상테지디오와 성 파락세디스 : 과거가 현재를 만나는 곳

Chapter 13 섭리의 제단에 바친 피 : 해방신학과 신앙의 재탄생

Chapter 14 사탄이 최후로 토해낸 것과 끊임없이 명단을 제작하는 사람들 : 성령의 시대

Chapter 15 신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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