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기독교/교의 .변증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로완 윌리엄스 지음, 복있는 사람 펴냄)

by 서음인 2016. 6. 3.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전 세계 성공회의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냈고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신학자 중 한 명이라는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 1950- ) 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성하는 네 가지의 핵심적이고 항구적인 요소인 세례, 성경, 성찬례, 기도에 대해 해설한 책이다. 


작은 판형에 120페이지 남짓 분량인 소책자이지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간결하면서도 깊이있게 서술하고 있으며, 지성과 영성 ‧ 교회와 세상 ‧ 예배와 참여 ‧ 전통과 변혁의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탁월한 균형감각이 특히 인상적이다. 특별히 개혁주의 전통의 보수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해온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간 잘 접할 수 없었던 기독교 신앙의 다채롭고 풍요로운 세계를 살짝이나마 맛보는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례 세례는 몸을 물속에 잠그거나 물을 부어서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 속으로 받아들이는 상징적 행위로, 처음부터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어둠 속으로 내려가 예수께서 겪었던 현실에 휘말린다는 개념과 결합되어 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함께 그가 계시는 자리인 인간이 처한 혼돈과 곤경이라는 심연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라는 심연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 심연에서 성령은 인간의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시 창조하고 새롭게 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받은 후 예수와 연합하여 새 삶을 시작하게 되며, 하나님이 처음 의도하셨던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세례받은 사람들의 모임은 선택받고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단체가 아니라 ① 빈곤과 타락과 혼란으로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 사는 삶을 기꺼이 끌어안는 사람들의 모임이자 ② 고난당하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예수를 따르도록 초청받은 다른 신앙인들과 함께 서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위험과 고난, 죄,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 한 가운데 서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황홀한 기쁨 한 가운데 있게 되며, 공동체를 통해 기도와 사랑을 주고받는 상호내재(co-inherence)의 연대를 맺게 된다. 이렇게 세례 받은 사람들은 예수의 삶과 모범을 따라 ① 우리에게 서로를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예언자) ② 화해를 이루고 다리를 놓아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제사장) ③ 정의와 자유를 추구하며 인간 사회를 하나님의 지혜와 질서가 반영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왕)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성경 성경은 일차적으로 개인이 읽고 연구하는 책이 아닌 교회가 함께 듣고 묵상하는 책이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대하며 다른 신자들과 어울려 그 말씀 듣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그 이야기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되며, 하나님은 과거의 특정한 시공간에서 일어났던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는 누구며 어느 쪽에 설 것인지 물으신다. 만약 하나님에 대한 성서 시대 사람들의 응답이 충격적이거나 용납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하나님께서 그런 응답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대신, 성경 메시지 전체에 비추어 오늘 우리가 선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당대인들보다 더 신실하고 더 큰 사랑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성경은 과거 사건들의 연대기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구원을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 주고 하나님의 뜻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말씀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역사의 세세한 사실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 가운데로 계속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해석의 올바름을 판단하는 시금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성경의 온전성을 훼손하거나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문헌들이 새롭고 깊은 의미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의미가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서 온전하게 밝혀졌다고 믿는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인간의 응답을 기록한 것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 선명한 중심인 예수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삼아 나머지 이야기들을 해석해야 하며, 성경을 주석해 온 그리스도교의 장구한 역사 전체는 이런 작업을 계속해서 확장해 온 활동, 곧 성경의 부분들을 그 중심과 연결시키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성경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읽어 왔고 읽고 있는 책이기에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신앙의 전통을 지닌 사람들이나 과거의 전통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찬례 성찬례에 참여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를 손님, 곧 하나님께서 환영하고 기뻐하고 기다리시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준다. 예수께서는 환대를 실천하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이끌어 내셨고, 예수의 환영은 우리에게 그분을 향해 우리를 개방할 용기를 주며,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상호간에 환영받으며 환영한다. 부활이 가르치는 핵심 진리 중 하나는 예수께서 전에 하셨던 환대를 베풀고 받는 것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시다는 것이며, 우리는 제자들이 다시 살아난 예수와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분에게서 새로 하나 된 삶을 살고 새로운 친교와 연대를 이루고 기꺼이 환영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부름을 받는 체험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살아야 한다. 성찬례를 거행할 때 우리는 우리가 손님으로 초대받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역시 다른 사람을 손님으로 초청할 자유가 있음을 알게 되며,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자유롭게 내어놓아 연대와 교제가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을 기꺼이 환영하는 자리로 만들게 된다. 우리는 성찬례를 함께 나눔으로써, 지금도 계속되는 예수의 다리 놓는 사역에 참여한다.


우리가 환영과 자비의 표징으로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현존 안에서 떡과 포도주를 놓고 감사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하고 인간의 경험과 영원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연결한다. 따라서 거룩한 성찬례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성사적 심연으로 가득한 이 세상 전체의 물적 질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과 물질까지도 하나님께서 갈망하고 들어 쓰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이로써 하나님의 눈으로 만물을 보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 또한 우리는 성찬례에서 성령께 떡과 포도주를 기적적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기적적으로 변화시켜 이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하시고, 그 결과 밖으로 나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찬양하며 그 영광을 위해 살게” 되기를 구한다. 성찬례는 새 초점과 활력을 얻어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세계 역사의 새 차원, 곧 새로운 창조를 가리키는 물적 표징이다.


기도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성숙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참 인간됨을 향해 자라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도록 맡기는 것이요,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과 이상과 희망을 점차 그분의 영원한 사역에 일치시켜 가는 길고도 힘겨운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열어 아버지께 “여기 제 안에 주님의 아들이 계시며 성령을 통해 기도하십니다. 부디 그분의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제가 그분께 내 안에서 일하고 행하며 사랑하시기를 구하는 까닭입니다” 라고 아뢰는 일이다.


기도는 갈등과 경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리는 기도함으로 이 세상의 깨진 관계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서게 된다. 기도는 우리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며, 따라서 화해와 자비 하나님의 사랑과 환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값없이 베푸는 일 같은 참 인간됨의 표지들이 기도와 철저하게 결합된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기도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신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포기하지 않는 자세이다. 당황하거나 낙담될 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 끝이라고 생각될 때 우리는 멈춰 서서 “오 하나님, 속히 저를 구원하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다. 기도란 우리를 위해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위해 우리도 거기 있겠다는 약속이자 맹세이며, 바로 그 자리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시작하고 끝내는 자리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