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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철학

관용론 (볼테르 지음, 한길사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1. 이 책의 저자인 볼테르(Voltaire 1694- 1778)는 보편적 이성과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옹호하는 계몽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지만, 한국의 설교단에서는 주로 ‘인본주의적’ 혹은 ‘반기독교적’ 사상가 무리의 수괴쯤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당시 유럽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칼라스 사건(개신교인으로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인 툴루즈에 살고 있던 68세의 모범적 시민 칼라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했다는 이유로 그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참한 형벌 끝에 죽어간 사건)을 알게 된 후 이 사건의 부당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마침내 3년 만에 칼라스의 무죄와 복권을 이끌어낸다. 볼테르는 이 사건을 계기로 쓰여진 『관용론』에서 종교적 광신과 편견에 대해 비판하면서 자비와 관용,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호소한다.

 

2. 볼테르는 “신들을 항한 모욕에 분개하는 일은 오직 신들의 몫이다(Deorum offensae diis curae)" 라는 격언에서도 알 수 있듯 로마인들은 종교적 불관용을 알지 못했으며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것은 오직 사회질서와 국가안녕을 위태롭게 했을 때뿐이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끊임없이 서로를 박해하며 형제를 향해 칼을 휘둘러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칼라스 사건을 포함하여 종교적 불관용의 결과로 일어났던 여러 참혹한 사건들을 열거하면서 “가장 거룩한 신앙심도 그것이 지나칠 때 무서운 범죄를 낳게 된다”고 강조한 후, “어떤 이들은 자비나 관용, 그리고 신앙의 자유란 가증스러운 것들이라고 비난하지만, 단언컨대 자비나 관용, 신앙의 자유가 그 같은 재양을 초래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러한 광신도들의 수를 감소시킬 방법은 “광신이라는 정신의 질병에 이성의 빛을 쬐는 것”뿐이며, “이성이라는 요법은 인간을 계몽하는 데 효과는 느리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는 처방”이라고 역설한다. 또한 저자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말과 행동으로 온유와 인내와 용서를 가르쳤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한다면 “처형자가 아닌 순교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일갈한다. 


마지막으로 볼테르는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갈 인간이 조물주가 내려야 할 판결을 미리 가로챌 권한”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이후로는 문명의 빛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이성의 정신에 모든 것을 맡기고 기다리는 일만이 남아 있다” 고 확신한다.

 

3. 과연 볼테르의 희망찬 예언대로 이후의 역사는 점차 합리적 사고와 보편적 이성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19세기는 인류의 진보에 대한 기대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으로 가득한 희망의 세기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그 희망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포함한 수많은 홀로코스트 그리고 냉전과 핵전쟁의 위협 등을 겪으며 철저히 깨지고 말았으며, 이제는 볼테르를 비롯한 수많은 계몽주의자들의 확신과 달리 합리적 이성의 지배가 불관용을 포함한 인류의 모든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 사실이 결코 몇몇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꿈꾸듯 역사의 시계바늘을 중세적 기독교국가(Christendom)라는 억압의 체제로 되돌려야 할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서구인들이 발전시킨 합리적 이성의 지배와 타자에 대한 관용의 정신이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처럼 세속화와 불신앙의 결과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피비린내 나는 종교적 박해와 전쟁의 참화를 겪어가며 힘들게 터득한 생존의 지혜일진데, 아직 전 근대적인 기독교 국가의 미몽에 빠져 이성 없는 맹신과 타인에 대한 증오를 참된 신앙의 표지로 착각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합리주의와 이성의 지배, 그리고 더 큰 관용의 정신이 아닐까?  

 

P.S. 번역자가 많은 양의 각주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신학 및 교회사 전반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볼테르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들어 왔던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책의 23장에 위치한 “신에게 올리는 기도”를 읽으며 깜짝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이 책을 읽은 후에도 볼테르를 ‘신본주의’를 거스르고 ‘인본주의’를 주창한 신앙의 적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혹시 그들이 증오하는 ‘인본주의’가 실제로는 ‘상식’이고, 그들이 열망하는 ‘신본주의’가 사실 ‘광신’의 다른 이름은 아닐지 한번쯤 진지하게 성찰해 볼 일이다. 

 

 

『관용론』 23장. 신에게 올리는 기도

 

이제 나는 인간들이 아닌 신에게, 즉 온갖 존재와 전 세계와 모든 시대를 주관하는 하나님, 당신에게 호소하려 합니다.

 

이 광대한 공간에서 길 잃고 떠도는, 우주의 티끌처럼 흔적 없는 미약한 존재들이 감히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셨으며 또한 그 뜻은 변함없고 영원하신 당신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일이 허락된다면, 부디 우리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죄들을 가엾게 보아주소서. 당신은 우리에게 결코 서로를 미워하라고 마음을 주신 것이 아니며, 서로를 죽이라고 손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도와서 힘들고 덧없는 삶의 짐을 견디도록 해주소서.

 

우리의 허약한 육체를 가리고 있는 의복들, 우리가 쓰는 불충분한 언어들, 우리의 가소로운 관습들, 우리의 불완전한 법률들, 우리의 분별 없는 견해들,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불균등하지만 당신이 보기에는 똑같은 우리의 처지와 조건들 사이에 놓여 잇는 작은 차이들, 즉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을 구별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해주소서.

 

당신을 숭배하느라고 한낮에 촛불을 켜는 자들이 당신이 내려주는 햇빛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을 관대히 대하게 해주소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자신들의 옷 위에 흰색 천을 덮어쓰고 다니는 자들이 검은 모직 망토를 걸치고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도록 해주소서. 당신을 경배하는 말에 옛날에 사용되던 언어를 쓰던 더 나중의 언어를 쓰던 마찬가지로 경건하게 여기게 해주소서.

 

붉은색이나 자주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고위성직자들), 이 세상의 다만 흙덩이에 불과한 한 조각 땅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 그리고 금은동으로 만든 둥근 금속 조각들을 가진 사람들, 이들이 자신의 ‘지위’와 ‘부’라고 부르는 것을 누리는 데 거만하지 않게 해주소서. 또한 그 밖의 사람들은 이들을 시샘하지 않게 해주소서. 사실 당신도 아시는 바와 같이 이러한 허세란 부질없는 것이라 부러워할 것도 우쭐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그들 모두가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소서!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과 정직한 생업의 결실을 강탈해가는 강도들을 증오하듯이, 그들의 영혼에 가해지는 폭압을 증오하게 해주소서. 전쟁이라는 재앙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평화를 유지하는 동안만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서로 편갈라서 고통을 주지 않게 해주소서. 그리고 시암에서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러나 당신을 경배하는 데서는 마찬가지인 수많은 언어를 통해,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시간을 우리에게 이 삶을 주신 당신의 은혜를 찬양하는 데 쓰게 하소서.

 

 

목차

 

1. 장 칼라스 사건의 개관 ...25

2. 장 칼라스의 처형에서 얻은 각성 ...41

3. 16세기 종교개혁에 대한 이해 ...45

4. 신앙의 자유란 과연 위험한가 ...53

5.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면 ...67

6. 불관용이란 과연 자연법인가 ...75

7. 그리스인에게도 종교적 박해가 있었을까 ...77

8. 로마인들도 인정한 신앙의 자유 ...83

9. 순교자들 ...93

10. 거짓 성인전설과 박해의 위험성에 대해 ...113

11. 종교적 불관용이 불러온 불행한 결과들 ...127

12. 유대교에서 불관용은 신의 율법인가 ...137

13. 유대인들의 크나큰 관용 ...151

14.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관용 ...157

15. 종교적 박해에 대한 반론들 ...167

16. 죽음 앞에서 나눈 두 사람의 대화 ...173

17. 어느 성직자가 보낸 편지 ...179

18. 불관용이 인간의 정의의 일치하는 경우들 ...187

19. 중국에서 벌어졌던 논쟁에 대한 보고서 ...191

20. 사람들을 맹신에 묶어두는 것이 유용한가 ...195

21. 미덕이 앎보다 더 소중하다는 점에 대해 ...201

22. 신앙의 자유는 보편적이라는 점에 대해 ...205

23. 신에게 올리는 기도 ...213

24. 후기 ...215

25. 칼라스 사건의 귀결 및 우리의 결론 ...225

-보유 최종판결의 의의 ...233

-볼테르의 주석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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