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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훈련/성경보물 2017

성경의 숨겨진 보물들 (3) 룻기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 남성적 vs 여성적 (후기)

by 서음인 2017. 8. 9.

1. 지난 토요일에 “성경의 숨겨진 보물들”의 세 번째 주제인 룻기를 청년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매주마다 성경공부를 위해 흔히 선택되지 않는 범상치 않은 본문들을 공부하고 그 엑기스를 뽑아내 교재로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만, 열정에 넘치고 총명할 뿐 아니라 인도자의 미숙함까지 넉넉히 품어주는 훌륭한 청년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네요! 아무쪼록 함께하는 청년들에게도 이 공부가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 흔히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보여 주는 소우주”라 불리는 룻기는, 가부장적 시선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당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들을 수 있는 희귀한 텍스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이번 공부를 통해 시도한 일은 리처드 보컴의 <성경은 남성적인가?>나 필리스 트리블의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과 같은 책들의 도움을 받아 (1) 룻기의 본문을 남성의 관점에서 쓰인 내러티브와 여성의 관점에서 쓰인 내러티브로 나누어보고, (2) 서로의 주제와 관심사를 비교해보며, (3) 각각의 내러티브가 룻기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소우주”를 만드는 데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3. 이러한 관점으로 청년들과 함께 룻기 본문을 열심히 탐사한 끝에 내린 결론은 룻기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과 동력은 가부장 사회에서 남편과 아들의 부재로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지만 서로 연대하여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고 과감한 모험을 감행한 끝에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마침내 생명을 얻어내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두 여인(룻과-나오미)과 그들이 이끌어가는 '여성 중심적(gynocentric) 내러티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대의 가부장 체제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베푸는 인애(hesed)를 통해 두 여인을 곤경에서 구해낼 힘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결혼을 통해 기꺼이 그녀들의 구속자(goel)가 된 ‘범생이 율법준수자’ 보아스와 그가 대표하는 남성 중심적(androcentric) 내러티브는,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보다는 대부분 두 여인이 이끌어가는 이야기에 대한 ‘모범적’ 응답으로서의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룻기는 여성의 목소리가 철저히 무시되거나 은폐되어 있는 대부분의 성경 본문과 달리, 여성 중심적 내러티브가 표면에 등장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드문 본문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4. 그러나 룻기의 대단원을 장식하며 남편 중심적 내러티브를 대표하는 마지막 족보는 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이끌어 온 놀라운 여성들의 존재를 철저하게 ‘삭제’한 채, 룻기 전체를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라는 단 한 마디의 문장으로 요약해 버립니다. 그리고 당대의 강고한 가부장체제 하에서는 이 주체적이고 멋진 여성들마저 결국 ‘생명’을 얻기 위해 그들을 구원해 줄 ‘백마 탄 왕자’(성인 남성 구속자, goel)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이 두 여인이 사사기의 마지막 장들에서처럼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막장 사회에 살았더라면, 그리고 보아스와 같이 그들을 구원할 힘을 가진 모범적인 가부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과연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요?

5. 만약 가부장제가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의 원리라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할 기회와 권리를 영원히 얻지 못한 채, 오직 모범적이고 훌륭한 남성이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과 목사와 대통령으로, 즉 그들에게 헤세드를 베풀어줄 고엘(구속자)로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일까요? 그리고 타락 이후에야 가시화 된 것으로 보이고(창3:16) 예수께서 친히 천국에서는 소멸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눅20:29-36) 가부장의 질서와 그에 근거한 “여성안수금지”를 신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하면서도, 미혼 여성 대통령에게는 몰표를 던지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행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글을 쓰다 보니 "하나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은 하나님이다(If God is male, then the male is God)"라는 여성신학자 메리 데일리의 일갈이 자꾸 떠오릅니다.

2022년의 단상   2022년에 룻기를 다시 묵상하며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라는 마지막 족보에 대해 조금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 제 기존의 생각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한 줄의 족보가 룻기의 풍성하고 아름다운 여성중심적 내러티브를 철저하게 '삭제'해 버리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내러티브의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본문을 읽어가며 룻기가 성경에 나오는 남성들만의 족보의 이면에 담긴 진실 중 하나를 꺼내어 펼쳐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하나님은 룻기를 통해 "누가(남성) 누구(남성)를 낳고"로 끝없이 이어지는 가부장적이고 지루한  족보의 진짜 주인공들이, 연대와 결단을 통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고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온 수많은 룻과 나오미들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여성들의 이름이 전면에 등장하는 마태복음 첫 장의 놀라운 족보는,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남성 중심의 족보로 상징되는 왜곡된 가부장 질서에 의해 철저히 억압되어 온 감춰진 영웅들(unsung heros)과 숨겨진 내러티브가 정당한 대접과 평가를 받게 되는 나라라는 강력한 선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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