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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예술/미술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게릴라걸스 지음, 마음산책 펴냄)

by 서음인 2016. 5. 28.

1985년 게릴라걸스라 불리는, 고릴라 탈을 뒤집어쓴 일련의 여성 미술가들이 뉴욕 소호 거리에 도발적인 포스터들을 붙이기 시작했다. 회고전을 연 작가부터 갓 데뷔한 작가까지 다양한 성원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하며 퍼포먼스, 포스터, 출판 등을 통해 미술계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여성이나 유색인종 미술가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도전해 왔다. 앵그르의 유명한 작품인 <그랑 오달리스크>의 얼굴을 고릴라 머리로 바꾼 후 “여성이 미국의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 미국 최대의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 미술 파트에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3%가 채 되지 되지 않지만, 누드화 모델의 83%가 여자다” 라는 문구를 적어 넣은 포스터(아래 사진)가 그들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게릴라걸스가 기존의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 도전하여 여성의 관점에서 새로 쓴 미술사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통’서양미술사는 압도적으로 백인 남성들의 대표작과 그 사조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으며, 따라서 여성에 대한 차별의 역사에 다름아니었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왜 서양미술사에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왜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은 위대한 예술가로 여겨지지 않았는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성우월주의적인 편견에 빠져 여성 예술가들을 차별하거나 폄하했던 유명한 작가나 평론가들(예를 들어 “나는 여성 작가나 변호사, 정치가들을 괴물이자 다리 다섯 달린 송아지라고 생각한다. 여성 예술가들은 그냥 우스운 존재들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는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과 조소의 칼날을 들이댄다. 또한 저자들은 여성들이 강점을 보여 왔지만 기존의 미술사에서 소외되거나 폄하되어 왔던 태피스트리나 판화, 공예와 같은 분야의 가치를 다시 부각시키고, 고대 그리스의 무명 예술가에서부터 카이유 클로델이나 프리다 칼로, 조지아 오키프같이 유명한 현대 미술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면서 그 업적을 복권시킨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권력자들을 밝히고 조롱하며, 여성혐오자와 인종차별주의자를 끌어내리면서 다음 세대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천국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모두 비슷하게 생긴 조각상같은 미남들(혹은 미녀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언어로 동일한 멜로디에 맞추어 기계와 같은 일사분란함으로 단 하나의 존재를 찬양하고 있는 곳?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거기야말로 바로 지옥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진정한 축복이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며, “요란하고 유쾌한 차이들로 가득 찬 세계”야말로 한분이시지만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본성과 부합하는 천국의 본모습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통’ 서양미술사에 더해 세상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관점에서 본 이 책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가 선물하는 다양성을 기꺼이 즐기며 잠시나마 ‘천국’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목차

 

프롤로그_ 교과서를 뒤집는 ‘불경한’ 미술사

1장 고대의 여자들 : 과소평가, 혹은 돌연변이라는 칭찬?

2장 중세로부터 온 속보 : 여성들이 만들어낸 명작이 있다

3장 르네상스 시대_ 여성 예술가들의 삶 : 무대 뒤에 감춰진 비밀병기

4장 17, 18세기_ 새롭게 생겨나는 종족들 : 재능은 숨길 수 없는 것

5장 19세기_ 행동하는 여성들 : 새로운 미래의 징조

6장 20세기_ 이즘(-ism)들의 여성들 : 이제 모든 곳에 그녀들이 존재한다

에필로그_ 오늘날의 여성들은 평등하다, 정말?

옮긴이의 말

역사 속 게릴라걸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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