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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역사

권력과 신앙 -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추태화 지음, 씨코북스 펴냄)

by 서음인 2016. 5. 28.

1.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치시대 (1933-1945)는 참혹한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로 기억되는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는 권력과 신앙의 잘못된 만남의 결과 나치에 동조하게 된 소위 “제국기독교인” 들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던 고백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을 핍박하고 탄압한, ‘개신교인이 개신교인을 탄압한 시대’ 이기도 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권력과 신앙의 잘못된 악수(握手)는 독일교회의 치명적 악수(惡手) 였으며, 그 결과는 나치라는 악수(惡獸)의 탄생으로 나타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류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한 시대에 기독교의 탈을 쓴 사악한 권력이 어떻게 기독교를 회유하고 탄압했는지, 그리고 복음과 성경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불의한 권력과 싸웠는지, 그 선한 싸움과 의로운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

 

2. 나치는 철저히 이교도적이고 반기독교적 정당이었고 기독교를 정치적 수단 내지는 정권유지의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나 (1)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기독교적 성향을 띤 혹은 기독교에 호의적인 정당인 것처럼 행세했고 (2)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사회를 휩쓸었던 민족주의적이고 애국적인 정서에 잘 부응했으며 (3) 교회를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밖에 없다고 선전했다. 나치는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활용하여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제국기독교인 (Deutsche Christen)” 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으나, 다른 한편으로 그 이중성과 반기독교성을 꿰뚫어 보고 그들에게 저항했던 “고백교회 (Die Bekennende Kirche)”와 그 교인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탄압을 자행했다. 이에 따라 독일교회는 불의한 권력과 손잡고 그 비호하에 교권을 누리는 교회 (제국기독교) 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불의에 항거함으로 핍박을 감내하려는 교회 (고백교회)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고백교회는 (1) 교회 안에서는 나치 권력에 기대에 교권을 장악한 제국기독교인들 (2) 교회 밖에서는 기독교 비판을 일삼으며 게르만 민족 고유의 신화와 종교성을 바탕으로 민족종교 내지는 신흥종교로 자리매김하려는 독일신앙운동 (DGB) (3) 나치정권, 즉 비기독교적이고 사탄적인 국가권력까지 총 세 군데의 전선에서 힘겨운 투쟁과 핍박을 감내해야 했다.

 

3. 민족주의를 표방한 기독교인들, 즉 국가프로테스탄트 (Nationalprotestantismus)  정치적으로 나치에 동조했던 이들인 제국기독교인들은 대개 연령대가 높고 보수적인 루터교인으로 민족주의적이며 반유대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그들은 신앙만으로는 독일 민족을 구원할 수 없고, 역사 속에서는 교회보다 국가나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직접적 도구이며, 히틀러야말로 하나님이 독일민족에게 보내신 메시야적 구원자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신약신학사전의 편집자인 키텔 (G. Kittel 1888-1948) 과 같은 저명한 신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던 기독교-독일신앙운동 (Christlich-Deutsche GB) 에 의해 신학적으로 뒷받침되었다. 또한 나치는 자신들이 주도하는 “독일 교회 생활에 미치는 유대 영향제거와 연구를 위한 아이제나흐 연구소” 나 나치의 어용신학자인 그룬트만 (W. Grundmann 1906-1976)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약 폐기론이나 신약의 아리안적 왜곡 (예수는 아리안족이다), 기독론을 사용한 히틀러 우상화 등 성경 진리의 왜곡을 통한 기독교 신학의 나치화를 시도했다. 저자에 의하면 나치 시대의 교회투쟁 (Kirchenkampf) 은 결국 성경의 진리성을 수호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4. 이들에 대항하여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사탄적인 권력에 항거했던 고백교회운동은 니묄러 (M. Niemoeller 1892-1984) 목사나 디벨리우스 (O. Dibelius 1880-1967) 주교를 지도자로 하여 바르트 (K. Barth 1886-1968) 나 틸리히 (P. Tillich 1886-1965) 본회퍼 (D. Bonhoeffer 1906-1945) 틸리케 (H. Thielike 1908-1986) 등 저명한 신학자들과 주로 개혁주의적 성향을 띤 교회들이 많이 참여했으며, 칼 바르트가 입안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바르멘 신학 선언 (Die Barmer Theologische Erklaerung) 에 그들의 신앙고백을 담았다. 그러나 나치는 히틀러의 측근인 묄러 (L. Moeller 1883-1945) 의 제국주교 임명과 아리안법의 시행, 기존 교구의 조정 등 교단장악을 위한 시도에서부터 친나치 교수 및 학생단체의 설립과 신학교육기관의 축소 및 폐지, 그리고 나치당내 기독교 통제 부서인 교계부 및 비밀경찰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들을 반대하는 고백교회를 집요하게 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본회퍼쉬나이더 (P. Schneider 1897-1939) 목사등이 순교의 피를 뿌리게 된다.

 

5. 이 책을 덮으니 두 가지의 질문이 떠오른다. (1) 얼마 전 우리는 모두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막 13:14)” 끔찍한 장면을 똑똑히 목도했다. 이런 참람한 짓을 행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자칭 ‘애국적’ 이고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멘탈리티는 국가와 민족을 우상으로 섬기고 히틀러를 메시야로 추종했던 나치시대의 “제국기독교인”들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내 보기에 그 둘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2) 성적 소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 여호와의 증인을 포함한 이단들, 유대인과 집시를 포함한 소수민족들에 자신들을 반대하는 고백교회 교인들까지, 아리아 민족의 순수성을 오염시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나와 다른 '타자'를 모두 가스실로 보내야만 직성이 풀렸던 나치의 사고구조는 오늘 우리 사회의 성적 소수자들이나 이단들 혹은 소위 ‘좌파’ 들에 대한 ‘애국적’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심성과 과연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인가?  나치 시대와 똑같은 역사적 정황에 처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들 ‘죄인들’을 혐오하고 정죄한 나머지 '정상인' 들과 격리시키고 정신병원이나 수용소로 보내며 심지어 가스실로 밀어 넣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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