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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성서개론서

신약 읽기 - 역사와 문헌 (데일 마틴 지음, 권루시안 옮김, 문학동네 펴냄)

by 서음인 2019. 7. 11.

예일대학교 최고의 명강의를 모아들인 오픈예일코스의 한 권인 신약 읽기 - 역사와 문헌은 예일 대학 종교학과의 명예교수인 신약학자 데일 마틴의 신약 개론강의를 글로 풀어 펴낸 책이다. 신학교가 아닌 일반 대학의 종교학과에 개설된 강의였다는 사실에서 예상할 수 있든 이 책은 성서를 신의 계시가 담긴 종교의 경전이 아니라 나중에 그리스도교가 된 운동에서 만들어진 고대 문서로 여기는 역사비평적 관점으로 신약성서에 접근한다.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처음부터 정통이라고 알려진 신학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전제 하에 신약성서 전체의 메시지를 어떻게든 통합하려고 노력하는 전통적인 신학적접근과 달리, 다양한 시기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기록된 신약 성서 텍스트를 비평학의 눈으로 탐사해 그 배후에 존재하는 저자와 공동체의 사회적 · 신학적 독특성과 다양성을 설득력 있게 재현해내는 데 주력한다.

 

이렇듯 문헌을 통해 역사를 재현하는 고전적역사비평의 독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이 책의 결론은 초대 그리스도교가 사회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엄청난 다양성을 지닌 운동이었으며, 이들이 오늘날 정통이라고 알려진 비교적 일치된 조직과 신조를 가진 그리스도교로 발전되기까지는 여러 세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비평이 성서를 읽는 여러 가치 있는 방법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목회자가 될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성서 본문을 역사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서 비평만능주의적 태도를 경계한다. 본문만 700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두꺼운 책이지만 성서신학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독자도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친절하게 쓰인 좋은 역사비평적 신약 해설서다. 본문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앞으로의 공부를 위한 밑거름으로 삼기로 한다



요 약



서론 -왜 신약을 연구하는가   성서의 글은 그 자체로는 경전이 아니며 그것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만 경전이다. 이 책에서는 신약을 경전이나 성스러운 글이 아니라 나중에 그리스도교가 된 운동에서 만들어진 고대 문서로 접근한다. 그리고 현재의 성서 본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되어 왔으며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지 살피는 것보다, 고대사의 맥락에서 1세기와 2세기에 그 본문이 어떤 의미를 지녔었는지를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탐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입견을 버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신약성서에 접근해야 하며, 신약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이 당대인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약 연구를 위한 고대의 맥락과 학술적 맥락

 


정전의 발달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예수라는 사람에게 충성한다고 생각했던 다양한 집단이 믿음과 관습에서 약간이나마 통일성일 갖춘 하나의 역사적 운동 및 제도로 어느 정도 일치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정전은 아타나시우스가 부활절 편지를 발표한 367년에 결정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보는 정통적견해와 달리 그 후로도 여러 세기에 걸쳐 천천히 확립되었으며실제로는 오늘날까지도 정전의 범위에 대해 기독교의 각 교파간에 일치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신교는 '원천으로(ad fontes)'의 정신에 따라 고대 히브리어 성서만을 구약으로 받아들였고, 가톨릭은 원래는 히브리어로 쓰였으나 그리스어로 남아 있는 몇몇 글들까지 구약으로 인정했다. 고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글을 정전에 포함하거나 배제한 이유는 '영감'의 여부가 아니었으며 ① 저자와 사도의 권위와의 관련성 ② 쓰인 시기와 예수시대와의 근접성 ③ 넓은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는지의 여부 ④ 원시 정통그리스도교에 신학적으로 얼마나 가까왔는지 등이 그 기준이었다. 정전은 정통 그리스도교를 정의하는 역사적 논쟁에서 승자가 된 책들의 목록이다. 

 

그리스 로마 세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정복을 통해 그리스 문화를 지중해 세계 전체에 퍼뜨렸고, 그 결과 김나시온이나 민회와 같은 특징적 제도를 갖춘 그리스 도시(polis)를 중심으로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헬레니즘 세계'가 발달했다. 로마인들은 이 세계에 가장(파테르파밀리아스)를 정점으로 가족 - 자유인 피후견인 -  해방노예 - 노예까지로 구성된 집안(household)'과, 로마 제국 전체의 파테르파밀리아스인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후견인-피후견인 체제’와 같은 독특한 사회 구조를 들여왔으며,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회와 그들의 몇 가지 갈등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사진 1,2). 또한 이 시대는 다른 지역 신을 섬기거나 새로운 신을 그들의 만신전에 추가하는데 배타적이지 않았던 로마인들의 성향에 따라 종교적 관용과 혼합주의가 일반적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200년간 이어진 팍스 로마나는 도로나 육로를 통한 안전한 여행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는 그리스도교가 로마 전역으로 급속히 퍼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고대 유다교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유다를 지배했던 셀레코우스 왕조의 왕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반유다교법을 제정해 성전을 모독하며 헬레니즘을 강요했다. 이에 대해 일부 유다인들은 헬레니즘화와 혼합주의를 반대 없이 수용하면서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적응하는 길을 택했다. 마카베오 가족을 중심으로 헬레니에 저항한 유다인들은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해 하스모네아 왕가(BC 166-63)를 세웠다. 다니엘서 저자를 포함하는 일련의 유다인들은 하느님이 직접 역사에 개입해 이스라엘의 압제자를 쳐부수고 새로운 왕국인 하느님의 나라를 땅 위에 세울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는 예수나 바울,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세계관과 기대에 어느 정도 반영된다. BC 63년 이후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에 맞선  유다인들의 반란은 AD 70년 이스라엘의 함락과 성전의 파괴로 막을 내렸으며그후 몇 세기에 걸쳐 유다교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사제와 제사의 종교에서, 토라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랍비 유대교로 변화했다


사료로 보는 신약 :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     현대의 역사비평은 신약의 본문을 경전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알아내기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런 독법은 신약의 여러 문서에 수록된 서사나 주장을 그 무엇도 액면 그대로 현대적 의미의 역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회의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로의 여행 이야기를 역사비평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두 본문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 매끈하고 잘 조화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문의 세밀한 부분을 주의 깊게 따져가며 그 중 어떤 쪽이 역사적으로 정확할 가능성이 더 높은지를 묻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도행전보다 훨씬 먼저 바울에 의해 직접 쓰여진 갈라디아서의 내용이 사실과 부합할 가능성이 높다. 



복음서


 

*복음서란 무엇인가     신약의 복음서는 전기가 아니며 오늘날 우리가 전기를 통해 얻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은 관심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비평의 눈으로 복음서를 읽을 때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뿐 아니라 저자가 어떤 글을 왜 그렇게 썼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역사비평은 각각의 복음서를 특별한 삶의 정황에 처한 특정 공둥체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쓰인 별개의 문학 저작물로 간주하며, 고대의 맥락에서는 불가능한 시대착오적인 동기나 의미를 저자나 글에 결부시키지 않는다. 이런 해석을 위해서는 이 본문을 고대의 청중이라면 어떻게 듣고 받아들였을지 질문하고 상상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마르코의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는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부분과 구약 성서에서 구세주를 가리키는 부분을 결합시켜 예수를 고난받는 구세주로 그려냈으며, 이는 예수가 어떻게 그리스도인 동시에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고자 한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유다인들에게는 혐오스러웠고 그리스인들에게는 웃음거리였으며, 예수는 이들에게 구세주가 고난과 죽음을 거쳐야만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치기 위해 이 사실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입증되기 전까지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지켰다(메시아 비밀). 또한 성전에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세워진 직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라는 작은 묵시록의 예언과, 부활한 예수가 갈릴래아로 올 것이라는 빈 무덤에서의 천사의 약속(막 16:7)을 볼 때, ‘마르코는 유다 전쟁 시기 성전과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직전에 갈릴래아에 살았던 그리스도교인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결국 마르코복음은 유다 전쟁 시기 갈릴래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가 지배하는 세상이 끝날 때 부활한 그리스도가 오시고 구원과 영광이 있으리라는 약속을 통해 현재 닥친 고난을 견뎌내도록 격려하기 위해 쓰인 문서라고 할 수 있다.  


마태오의 복음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복음서였던 마태오복음서는 사실 가장 유다교적인 복음서이다. 마태오복음은 창세기 1장을 모방했음을 암시하는 단어(genesis)로 시작하고, 예수를 새롭게 등장한 더 뛰어난 모세로 묘사하며, 예수의 말이나 행동을 경전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할 뿐 아니라, 예수가 유다교의 율법을 더 엄중한 태도로 지키고 내면화하기를 요구함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더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그린다. 또한 마태오는 예수가 생전에 의식적으로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는 예수를 따라 유다교 경전으로부터 옛 것을 꺼내면서 새 것즉 그 자신의 해석과 가르침도 덧붙이는 스승과 율법학자의 공동체라고 말한다(15:32).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들은 위협과 처벌과 박해에 처하게 될 것이고, 그 때 그들의 대응은 예수의 본보기대로 위험 앞에서 물러나지만’, 다른 곳에서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태오는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들도 음식규례와 할례를 포함한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서 이스라엘에 연계된 채로 남아야 하는 교회에서 복음서를 쓰고 있으며, 박해에 직면한 공동체를 향해 예수를 교회의 설립자요 스승이자 모범으로 제시하며 위로와 격려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토마의 복음서     토마의 복음서는 정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교적 덜 알려진 초기 그리스도교 문서 중 가장 유명한 것이고, 신약에서 드러난 것과 다른 종류의 그리스도교를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교회에서 인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복음서의 존재는 고대의 저자들을 통해 알려져 있었지만, 그 실제 본문이 전해진 것은 1945년에 발견된 나그함마다 문서를 통해서였다. 토마의 복음서는 서사 없이 말씀만 모아놓은 어록집이며, 때로는 정전 복음서에 나오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원시적인 예수의 말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초기 그리스도교 연구와 역사적 예수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이 문서의 말씀들은 나중에 영지주의자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세계관과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악한 물질적 세상을 거부하고 세상에서 벗어나 신성한 존재로 되돌아가기 위해 영지’(gnosis), 즉 비밀스러운 지식을 추구하며, 예수를 이미 영적 존재가 되어 철저하게 비종말적이고 현세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춰진 지식을 전달하는 영적 스승으로 여긴다.  



그리스도교의 전파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 주제와 구조     두 권으로 된 하나의 하나의 작품인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는 마르코나 Q자료를 포함한 여러 원천자료들을 활용하여 예수의 활동과 복음이 어떻게 유다인에게 배척받고 이방인에게 전파되었는지 그 경위를 주도면밀하게 그려낸다. 루가복음의 서사는 예수의 활동이 시작된 갈릴래아에서의 사역에서 시작해 예루살렘을 향한 긴 여정을 거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와 죽음과 부활이라는 절정으로 이어지며, 사도행전은 그 서사를 이어받아 예루살렘의 유다인들 사이에서 시작된 예수운동이 사마리아와 안디옥을 거쳐 이방 세계의 중심인 로마까지 확장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의도적으로 확장하며, 부활한 예수의 현현 역시 예루살렘 주변으로 제한한다.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세상 지위의 역전, 유다교에 대한 예수의 신앙, 배척당한 예언자-순교자라는 예수의 역할, 승천한 예수를 대신한 성령의 사역과 같은 주제를 강조하며, 스스로의 주장(1:3)과 달리 자신의 주제와 신학적 목표에 맞춰 원천자료인 마르코 복음 서사의 시간적 순서를 바꾸거나 내용을 재구성한다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편집하다     사도행전은 초기 예수운동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유다 - 사마리아 - 지중해 동부 - 로마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이고 도식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그린다(1:8, 사진 3). 그러나 본문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실제로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과정은 사도행전이 그려낸 것보다 더 불규칙적이고 지리멸렬했으며, 저자가 자신의 신학적 관심사를 위해 원천자료에 나오는 사건의 역사적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놓았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8:4-11:19에 모아놓은 일련의 이야기에서 유다교에서 시작된 복음이 이방인에게 옮겨 간 것이 처음부터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강조하면서 가장 중요한 사도였던 베드로를 최초로 이방인에게 전도한 인물로 그리지만, 실제로는 그리스어를 쓰는 이름 모를 유다인 추종자들(11:20)에게 그 영예가 돌아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작은 묵시록을 편집한 방식을 포함한 사도행전 전체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저자가 유다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에 복음서를 썼으며, 모세의 율법을 유다인에게는 정당하나 이방인 개종자들에게는 구속력이 없는 특정 민족의 관습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한의 복음서     요한의 복음서는 문체와 신학에서 공관복음서와 뚜렷이 구별된다반복이 많고 대화가 길며추상적이고 철학적 느낌이 나는 논의와 진술이 자주 등장하고대부분의 이야기가 대적들과의 실패한 대화 후 예수의 긴 설명이 뒤따르는 형식을 취하는 등 요한복음의 문체와 구성은 공관복음서와는 사뭇 다르다. 또한 요한복음은 예수와 상호작용하는 인물들의 개성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성전 정화 사건이 사역의 초기에 나타날 뿐 아니라 예수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와 유다를 여러 차례 오가며, 주의 만찬을 제정하는 이야기가 없으면서 예수가 유월절 준비일에 처형되고, ‘사랑하는 제자가 주요 인물로 그려지는 등 서사에서도 공관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신학적으로는 빛과 어둠 올라감과 내려옴 보는 것과 아는 것과 같은 독특한 주제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예수가 행하는 기적을 믿음으로 다가가는 정당한 방식인 징조로 제시하며, 예수를 선재하고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존재로 그리는 높은 그리스도론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복음서는 높은 그리스도론으로 인해 다른 유다인들과 세상으로부터 끊어져 나온 종파로부터 나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요한의 세 편지와 그리스도교의 전파      죄를 대속하며 희생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마르코복음의 그리스도론과 모범적인 순교자-예언자라는 루가복음의 그리스도론과 달리, 요한복음과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되풀이되는 높은그리스도론에 따르면 예수는 처음부터 완전한 하느님이었으며 과월절 양을 잡는 시간에 죽임을 당하는 어린 양이다. 요한복음과 요한이 쓴 세 편의 편지는 예수의 완전한 신성과 인간성을 주장하며 다른 그리스도교 집단들과 대립하던 요한 공동체의 각기 다른 네 시기에 기록된 문헌일 가능성이 있다. 요한복음이 기록된 당시 이 공동체는 예수에게 완전한 신성을 부여하려 하지 않는 유다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맞서 자신들의 높은 그리스도론을 장려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 1서는 예수의 완전한 인간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요한 종파의 일부와 분열을 경험한 후 기록된 좀 더 후기의 저작이다. 이 공동체에 속한 한 원로가 다시 특정 교회에 편지를 써 분열분자들을 받아들이지 말도록 부탁했으나(요한 2), 그 교회의 지도자는 오히려 원로의 친구들을 거부했고 요한 3서는 이 사건 이후 원로가 교회가 그 지역의 지인에게 보낸 서신이다.  


역사적 예수     신약의 어떤 서사들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일관된 전체 그림 속에 맞춰놓을 수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원천자료에 오늘날의 역사 연구 방법을 적용하면 역사적 예수를 구성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따르는 중요한 원칙에는 (1) 어떤 사건이나 말씀을 독립적인 둘 이상의 증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역사적 예수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는 복수의 증언’ (2) 본문의 신학적 성향과 상이한 자료가 역사적으로 더 정확할 기능성이 높다는 상이성 기준이 있으며, 그밖에도 (3) ‘사회 역사적 맥락(4) ‘일관성이라는 기준도 사용된다. 최근에는 (5)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천자료에서 가장 많이 증언되어 있는 부분을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모든 재구성은 잠정적이고 불완전하며,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신앙의 그리스도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저자가 재구성한 역사적 예수      예수는 당대의 유다교적 묵시사상의 영향을 받은 유다인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여행을 다니며 치료하고 마귀를 쫒아내며 하늘에서 보낸 사람의 아들이라는 대리자가 현재의 정치질서를 뒤엎고 하느님이 친히 지배하는 나라가 곧 닥칠 것이라고 가르친 스승이었다. 그는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의 하류계층 유다인이었고, 요한이라는 한 묵시적 유다인 예언자의 제자로 공생애를 시작했으며, 정치선동이라는 죄목에 의해 로마인들의 손에 처형당했다. 그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여성들을 포함한 여러 추종자들을 주변에 모았고, 그들은 예수가 처형된 후 묵시적 기대가 주입된 공동체에 존속했다. 그는 유다교 율법을 배척하거나 폐기하라고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율법이나 유다교의 전통 중 많은 부분을 더 진보적으로 또는 관대하게 해석하도록 가르쳤다. 예수는 그리스도교라 불리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구세주라고 여겼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  



바울로와 바울로 서신

 


*역사적 바울로    신약과 그 밖의 글에는 사도 바울로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 일부는 서로 모순적이다. 그리스도교 역사 전체에 걸쳐 바울로는 수많은 사람에게서 여러 다른 역할을 떠안았으며, 일반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교회 최초의 신학자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바울로는 무엇보다도 최초의 위대한 순교자였으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마르틴 루터가 본 바울로는 죄책감 때문에 근심하고 발버둥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번민하는 영혼이었다. 바울의 편지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역사적 바울로는 사도행전의 진술과는 달리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또는 한 종파에서 다른 종파로 개종한 적이 없었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형태의 숭배를 세계만방에 가져가라는 예언자적 부름을 받은 디아스포라 바리사이파 유다인이었다바울은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먼저 자신이 일하며 살 수 있는 곳을 찾았고, 일하는 동안 또는 알음알음으로 주변의 그리스인이나 그리스도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민족 집단들에게 그의 메시지를 전했다.

 

선교사 바울로 :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바울로가 쓴 최초의 편지인 데살로니카 1서는 바울로의 활동 방식과 최초의 개종자들에게 가르친 전형적 내용을 보여준다. 바울은 데살로니카에서 사도행전의 내용과 달리 이방인들만 개종시킨 것으로 보이며, 그리스어를 쓰는 이방인 남성 노동자들로 구성된 데살로니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1)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유일한 살아계신 참 하느님이시다. (2) 하느님은 이 세상이 죄를 짓고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화가 났다. (3) 십자가에 달렸으나 부활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하느님의 진노로부터 파루시아 전에 죽은 사람들을 포함한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 (4) 따라서 사람들은 이제까지 섬기던 전통적인 신들을 거부하고, 성과 관련된 포르네이아를 그만두고 자기 아내와만 잠자리에 들어야 하며,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그의 대리자인 예수만 숭배해야 한다. (5)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이제 곧 닥칠 새 나라의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이며, 노동자 신세에서 벗어나 부유해지고 유명해질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묵시적인 메시지는 몇 년 만에 제국의 동부의 몇몇 지역에서 작은 교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목회자 바울로 : 필레몬과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들은 목회자바울로가 제도적 뒷받침이나 공인된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설립한 교회에 발생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보여준다. 바울로는 아직 공식적인 사제나 교회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가정교회에 보낸 편지인 필레몬서에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도망노예인 오네시모를 돕기 위해 강압적 명령이 아닌 능숙한 수사법을 동원한 신중한 설득을 사용한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고 파벌이 존재할 만큼 성장한 고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인 고린토 1서에서 바울로는 사회적 지위와 관련되었을 몇 가지 논란에 대해 염려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육체의 부활을 비웃었을 교육받은 그리스인 개종자들에게 부활한 몸은 정제된 형태의 질료인 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하며, 주의 만찬이나 우상에 바친 음식에 대한 논쟁에서는 십자가에 달린 구세주의 논리에 따라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지위기 낮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자신의 이익과 특권을 포기하라고 가르친다. 고린토 2서에서 이런 문제점 중 몇 가지가 해결된 듯 보이지만, 바울로는 별도의 편지로 보이는 고린토 210~13장에서 고린토 교회에 새로 침투한 특출나다는 사도들에 대항해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유다교 신학자 바울로 : 갈라디아인과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바울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유다인의 율법을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에 미혹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방인인 그들이 할례를 포함해 어떤 율법이든 받아들인다면 우상숭배나 스토이케이아의 노예 신세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질책한다. 율법은 죄가 많아지게 하기 위해 천사에 의해 구원 역사의 중간에 슬쩍 주어진 가혹한 감시병일 뿐, 구원을 주는 약속이나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로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율법이 악한 것이거나 죄는 아니고 한 때 하느님의 구원계획에서 좋은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리스도가 온 후 역사에서 가졌던 제한적인 쓸모가 끝났다고 말함으로서 율법 폐기론자라는 비난에 대해 신중하게 자신을 변호한다. 바울로가 이 문제에 대해 미묘한 태도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방인 교회들이 보내는 의연금을 가져갈 때 예루살렘 교회가 교회일치의 정신에 입각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바울로의 선교는 개개인의 구원이나 이신칭의 같은 교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종말의 때 이스라엘 안에서 온 세상과 민족이 구원받는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최초의 그리스도인 신학자가 아니라 가장 과격한 유다교 신학자였다.  

   

골로사이인들과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는 낱말과 구문을 포함하여 문체의 모든 부분에서 바울로와 매우 다르며, 하느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위계가 있음을 암시하는 바울의 낮은 그리스도론과 달리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본질그 자체로 보는 높은 그리스도론을 견지한다. 또한 골로사이서의 저자는 독자들이 세례를 통해 하늘에 있는 모든 세력의 무장을 해제시킨 그리스도와 연합해 이미 구원의 모든 이점을 가진 승리자들이며, 따라서 더 이상 이런 세력들을 달래기 위해 축일, 안식일, 천사 숭배에 관한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확언한다. 이러한 저자의 실현된 종말론은 바울 신학의 특징인 유보된 종말론과는 다르다. 에페소서는 골로사이서를 원천자료로 삼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며, 특정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기보다는 교리와 도덕적 가르침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 바울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일반 논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전혀 다른 문체나 실현된 종말론높은 그리스도론이라는 신학의 차이로 볼때,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는 바울로의 이름을 빌어 쓰여진 차명편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달라지는 그리스도교 : 그리스도론, 믿음, 행위     초기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론이나 믿음과 행위의 관계 측면에서 커다란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들 중 나중에 정통이 된 사람들이 내린 결정은 예수가 원래부터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의 일은 단순히 정통이 승리한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고 여기는 대신, 왜 그 중 하나가 정통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역사적 요인만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교육수준이 높은 유다인으로 유다교 지혜문학의 전통에 따라 주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말씀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행위와는 별개로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바울로의 생각에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행위란 할례나 음식법 같은 모세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일반적인 도덕과 윤리, 그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사람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가 믿음에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는 부자들이 자신이 고용한 가난한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하는 기본적인 정의를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야고보서는 에페소서에 나타나는 종류의 바울로 사상을 동일한 성경구절을 인용해가며 공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의 다양성을 증명한다



여성과 집안



친집안적 바울로 : 목회서신    바울로는 그리스의 민정체제인 폴리스의 에클레시아민회를 모델로 교회를 조직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인이 모두 자기처럼 독신을 유지하기를 권장했으며, 결혼은 정욕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허용했다. 또한 결혼에 관한 바울로의 가르침은 상호적이었으며, 여성은 그의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바울로가 아닌 것이 확실한 목회서신의 저자는 결혼과 전통적 도덕성을 옹호하면서 교회의 구조를 바울의 평등주의적인 민회에서 파테르파밀리아스 아래서 위계에 따라 각각의 구성원이 종속적 역할을 담당하는 로마의 전통적인 집안으로 바꾼다(하느님의 집안, 딤전 3:15). 그는 보수적인 당대 그리스 로마의 이념에 따라 교회가 남성이 권한을 행사하는 직책을 맡고 여성은 아이를 낳고 주부의 일을 하는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구조에 따라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혼과 결혼의 틀 안에서 자식을 낳기 위한 성관계를 권장한다. 이렇게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를 거쳐 목회서신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강해지는 친 가족적이며 반 금욕적인 메시지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점차 예수와 바울의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집안적 바울로 : 바울로와 데클라 행전    바울로와 데클라 행전의 서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로망스 소설과 매우 비슷하다. 데클라가 바울로에게 매료되고, 두 사람은 함께 수많은 모험에 나선다. 그러나 이 행전은 데클라가 선교사가 되어 금욕적 복음을 전하러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음으로서, 구원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조차도 성을 완전히 회피하는 극단적인 순결과 금욕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가부장적 집안대신 금욕주의를 택함으로서 고대 세계에서는 너무나 명확하던 순환의 고리, 즉 성관계에 이어 태어나고 죽고 썩는 고리에서 벗어나야 생명과 부활을 얻을 수 있다는 금욕적, 반결혼적, 반가족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 이야기에서 바울로는 하느님의 사람이지만 전적으로 긍정적이지는 않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 반해, 데클라야말로 고문과 처형의 위협 앞에서도 끝끝내 신앙을 지킨 위대한 신앙고백자요 진정한 영웅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이 지배하는 집안이라는 덫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여성적특성을 벗겨내고 남성적특성을 취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행전을 페미니즘문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관계와 결혼과 가족에 대한 바울로와 목회서신과 데클라 행전의 서로 다른 서로 다른 초대 그리스도교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성서 해석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성서 해석      예수나 고대 그리스도인들의 성서 해석은 오늘날 역사비평의 눈으로 보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이상해 보인다. 고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유다인들의 경전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예가 바로 히브리서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훌륭한 수사학자가 수준 높은 그리스어로 쓴 히브리서는 편지라기보다 격려사 혹은 잘 짜여진 설교에 가까우며, 그 중심적인 논제는 새 것인 예수의 전례(leitourgia)와 사제직이 옛 것인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나오는 모세와 성막의 전례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신크리시스 설교). 저자는 이 논지를 증명하기 위해 설교에 인용한 모든 유다교 경전을 그리스도라는 안경을 통해 읽으며, ‘옛 것새 것의 비교를 위해 더 높은 실체와 하위에 있는 그림자라는 플라톤적 개념을 차용한다. ‘실체인 그리스도의 계약이 하위에 있는 모세의 계약을 완전히 대치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음식규정이나 할례와 같은 유다의 율법을 받아들이려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행위는 더 우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계약으로 대치된 하위의 계약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현대 이전의 성서 해석     지금까지 이 책에서 신약을 해석해온 방법은 주로 현대의 역사비평이다. 성서 본문을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해석하는 데 적용되는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본문의 의미는 고대의 저자가 의도한 바로 그 뜻이다. (2) 본문의 원래 대상이 되는 독자들이 그 본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도 중요하다. (3) 당대인들이 살았던 세계와 현대 세계의 거리를 이해하기 위해 그 본문이 쓰인 시대언어를 연구한다. (4) 성서의 여러 문서를 조화시키는 대신 개개 문서를 그 자체로 연구한다. (5) 원천자료 분석을 통해 편집 과정과 저자의 의도를 찾아낸다. (6) 저자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7) ‘해석해 넣기(eisegesis)'가 아닌 해석해 내기(exegesis)'를 통해 시대착오를 피한다. 그렇지만 오리게네스나 아우구스티누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와 같은 현대 이전의 해석자들은 역사보다는 신학적 질문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본문을 마음대로 우화로 풀어 해석했으며, 종교개혁을 비롯한 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겪은 뒤에야 역사비평적 방법이 서구사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해석 방법이 되었다. 그러나 역사비평은 성서를 읽는 여러 가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뿐 모든 경우에 유일하게 옳거나 우월한 방법은 아니며, 심지어 성서를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해석할 때는 부적합하다.



묵시시상과 정치관

 


묵시사상과 저항      요한의 묵시록은 윤리적, 공간적, 시간적 이원론에 따라 선과 악, 지상의 사건과 하늘의 사건, 현재와 미래를 대비시키며, 마지막 날에 일어날 사건을 시간 순으로 나열한 직선 구조가 아니라 비슷한 사건이 반복해서 순환하는 정교한 나선 구조로 되어 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와 하느님의 옥좌가 있는 환상을 지나면 일곱 봉인 - 일곱 나팔 - 일곱 천사로 이어지는 세 개의 커다란 순환이 나오며, 각각의 순환은 반복되면서 정도를 높여가는 일련의 재앙사이에 잠시 동안의 격려와 평안이 주어지는 막간이 이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 후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로마가 파멸하고(17-19), 선과 악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며(19:11-20), 하느님의 적들이 갇히고 결국 파멸한 후(20), 평화와 새 예루살렘이 세워진다(21-22). 성적 금욕주의자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위해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로마 제국과 사탄의 영역을 동일시하면서 로마의 지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부유한 예수의 추종자들을 비난한다. 그리고 고난당한 어린 양이 고난 받는 자신들의 공동체에게 구원과 평화,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가져올 것이라고 약속함으로서 위로와 소망을 제공하는 묵시적 저항문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묵시사상과 순응    요한의 묵시록은 로마를 적대시하는 혁명적인 정치관을 보여주지만,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묵인했고 또 다른 일부는 지배자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가르쳤다. 바울로는 로마서 13장의 유명한 구절에서 정부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가르쳤으나, 고린토 1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로마인 지배자들에 대한 호감이 거의 없었으며 로마가 결국 파멸할 것이라고 암시한다. 차명으로 쓰여진 데살로나카 2서는 로마 황제를 악한 자를 붙들고 있는 힘으로 여김으로서 로마에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부여된 나름의 목적이 있다고 보는 보수적인 정치관을 담고 있으며, 베드로 1서 역시 그리스도인들이 말썽꾼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당대의 정치권력과 사회 위계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서 명백한 정치적 순응주의를 보여 준다. 흥미롭게도 이 편지들에서 묵시사상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도와주기보다, 오히려 저자들의 정치적 보수주의를 더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이용된다. 2세기에 쓰인 편지로 보이는 베드로 2서에서는 더 이상 임박한 종말이라는 기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종말은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정통교리의 한 부분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발달

 


교회 기관의 발달 이그나티오스와 <디다케>      교회의 공식 기구나 직책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살았던 바울로는 자신이 설립한 가정교회에 영향력이나 통제력을 행사하려 할 때 설득력과 개인적 권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카리스마적지도자였다. 그러나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순교자 이그나티오스가 쓴 편지를 살펴보면 초기 그리스도교가 제도화하기 시작한 증거가 담겨 있다. 이그나티오스는 주교, 장로, 부제라는 세 가지 성직을 언급하며, 이러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교회 내에서 교리나 전례, 성서 해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서기 100년경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도교의 초기 문서인 <디다케>에는 세례 주의 기도 성찬례 등과 같은 예식의 전례와 예식과 관련된 지침이 담겨 있으며, 이그나티오스의 편지에 묘사된 것보다 덜 발달된 형태의 성직 제도가 발견된다. 이런 문서는 모두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이 나자렛 예수라는 묵시적 예언자를 따른 극소수의 무리나 비교적 형식이 갖춰지지 않은 바울로의 카리스마적 가정교회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더 커다란 교회 구조와 제도를 향해 변화해나간 양상을 담고 있다.

 

후기 : 신약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예수에서부터 2세기 초 그리스도교의 전개까지를 살피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초기 그리스도교 집단의 다양성이다. (1) 예수를 묵시적 예언자로 보는 견해로부터 하느님과 동등한 신성한 지위를 가진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그리스도론이 발달했다. (2) 예수의 제자들이 꼼꼼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마태오의 견해에서부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율법을 지켜서는 안된다는 바울로의 주장에 이르기까지 모세의 율법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다양했다. (3) 여성이 가부장적 집안과 교회 내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예수나 바울의 친여성적이고 반집안적인 견해에서 점차 목회서신에 나타난 것처럼 반여성적이고 친집안적인 견해로 바뀌는 경향이 있었다. (4) 종말에 대해서도 예수운동 초기의 강렬한 묵시적 기대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쇠퇴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2세기와 3세기에 걸쳐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운동이 철학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리스도교 금욕주의가 두드러지게 되며, 로마 정부의 제도와 흡사한 제도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나중에 신경, 공의회, 대부분의 교파에서 확립된 교리 등에서 표현되는 정통그리스도교는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며, 완전한 발달까지는 여러 세기가 걸렸다.  




사진 1 그리스 로마의 가부장적 '집안'



사진 2. '후견인-피후견인 체제'의 파테르파밀리아스인 황제



사진 3. 사도행전의 지리적 구조 - 직선적 도식적 전파




목차


머리말과 감사의 말씀 지도

 

1. 서론: 왜 신약을 연구하는가

 

신약 연구를 위한 고대의 맥락과 학술적 맥락


2. 정전의 발달

3. 그리스로마 세계

4. 고대 유다교

5. 사료로 보는 신약: 사도행전과 바울로의 편지 비교

 

복음서


6. 마르코의 복음서

7. 마태오의 복음서

8. 토마의 복음서

 

그리스도교의 전파


9.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1. 구조와 주제

10.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2.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편집하다

11. 요한의 복음서

12. 요한의 세 편지와 그리스도교의 전파

13. 역사적 예수

 

바울로와 바울로 사상


14. 선교사 바울로: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5. 목회자 바울로: 필레몬과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둘째 편지

16. 유다교 신학자 바울로: 갈라디아인들과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7. 골로사이인들과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8. 달라지는 그리스도교: 그리스도론, 믿음, 행위

 

여성과 집안


19. 친집안적 바울로: 목회서신

20. 반집안적 바울로: 바울로와 데클라 행전

 

성서 해석


21.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성서 해석

22. 현대 이전의 성서 해석

 

묵시사상과 정치관


23. 묵시사상과 저항

24. 묵시사상과 순응

 

발달


25. 교회 기관의 발달: 이그나티오스와 디다케

 

후기: 신약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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