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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과학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리처드 마우 外 지음, 캐서린 애플게이트 外 엮음, IVP 펴냄)

by 서음인 2019. 11. 29.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는 하나님과 성경을 확고하게 믿는 동시에 진화에 관한 과학적 결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신학자와 목회자, 과학자를 포함한 25명의 복음주의자들이, 진화와 신앙을 둘 다 포용하는 제 3의 길을 수용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고뇌와 탐구의 여정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를 모아 펴낸 책이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진화적 이해를 제시함으로서 과학과 성경적 신학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가 미국 IVP와 손잡고 출간하는 ‘과학과 기독교에 대한 바이오로고스의 책들’ 시리즈의 첫 번째인 이 책의 기고자들 중에는 제임스 스미스, 스캇 맥나이트, 데보라 하스마, 트렘퍼 롱맨 3세, 프란시스 콜린스, 톰 라이트, 리처드 마우같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다.
 
기고자들은 과학과 종교, 진화와 창조는 전쟁 중이며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통념에 반대하여, 성경의 권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복음주의 신앙을 견지하면서도 진화에 대한 압도적인 과학적 증거 역시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명백한 결론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흥미를 느끼는 분들을 위해 이 책의 기고자들이 공유하는 몇몇 결론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사실 이 책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너무 자명해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결론'들 보다는, 당대 최고의 석학을 포함하는 신학과 과학의 전문가들이 ‘진화 창조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이다. 반드시 책을 펼쳐 ‘창조적 진화’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가는 기고자들의 흥미로운 여정을 살피길 권유한다.
 


기고자들의 몇 가지 생각 

1.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과학과 기독교, 진화와 창조는 전쟁 중이며,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둘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에게 과학은 ‘문화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공고히 해줄 ‘무기’가 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으며, ‘창조 과학’은 자신이 생각한 결론과 반대되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유사 과학’ 혹은 ‘변증론’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겉보기 연대’같은 꼼수나 과학자들이 우매한 대중을 속이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야말로 하나님과 현대 과학을 의도적 기만자로 만드는 ‘거짓 증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 오직 성경의 증거에 기초하여 믿음을 세우는 복음주의의 방식은 과학적 방법의 해석학적 등가물이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신앙을 성경의 증거라는 기반 위에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면, 우주의 나이, 지구의 나이, 기원의 질문들에 대해서도 정직하고 공정하게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여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과학에는 숨은 의도가 없으며, 최상의 과학 연구는 증거에게 말하게 하고 증거에게 결정을 내리게 할 뿐이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은 우리 자신의 무오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자신의 해석을 맹목적으로 확신하는 것은 자신의 무오류성을 선언하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다.
 
3. 젊은 지구 창조론은 매우 최근에 등장한 성경해석 방식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장 칼뱅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전통이 성경을 읽어온 방식과 충격적으로 다른 근대의 해석학적 발명품이다. 역사성을 가진 기독교 신학은 결코 젊은 지구 창조론에서처럼 편협한 성경 해석을 요구하지 않으며, 젊은 지구 창조론 같이 새롭고 특수한 신학적 결론을 과도하게 부풀려서 정통성을 결정짓는 리트머스 시험지의 위치에 놓지 않는다. 우리는 편협한 신학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사람들의 어깨에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적이 없는 이런저런 짐을 신앙의 이름으로 지우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주의해야 한다.
 
4.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신앙이 침해받거나 희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의 신념 체계에 분명하고도 타협 불가능한 울타리를 치려는 경향이 있다. ‘젊은 지구’를 방어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방어하는 것은 복음주의 하위문화 안에서 느꼈던 안전감일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이나 ‘하위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길 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고하도록 부르셨음을 믿는 자이며, 신앙이 요구하는 것이 안전이나 보호가 아닌 정직임을 이해하는 자다.
 
5. 진화-창조 논쟁은 지극히 미국적인 현상이다. 스콥스 재판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창조 진화 논쟁은 문화를 가르는 주요 단층선에서 진행되었으며, 미국의 통치나 노예제도의 정당성, 미국 흑인들의 사회적 위상과 관련된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곪다가 과학 대 종교, 진화 대 성경의 논쟁 형태로 터져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논쟁이 그렇게 중요한 문화적 이슈나 정치적 함의를 갖지 못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진화론의 수용 여부가 기독교 신학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편협하고 위험하다.

6. 하나님은 자신의 계시를 담은 두 개의 책을 주셨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다. 신앙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셨다는 믿음을 촉구하지만 과학의 압도적인 증거는 그 기적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빅뱅과 진화를 이용하셨음을 보여 준다. 인간의 노력과 시도로 이루어지는 신학과 과학은 결함이 있기 마련이며 이러한 결함이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학문의 연구대상인 창조질서와 성경은 둘 다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연구의 결과는 모두 하나님의 진리이며 궁극적으로는 서로 조화로울 수밖에 없다.
 
7. 빅뱅이나 오랜 지구,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압도적이다. 이 증거들은 여러 인접 과학이나 다양한 형태의 측정법으로부터 나오며 한결같이 '오래된 지구'와 ‘진화’라는 동일한 결론을 가리킨다. 현대 생물학의 이론적 토대는 진화이며, 인간 게놈 프로잭트를 포함한 DNA 증거는 지구상의 모든 형태의 생명체들이 공통 조상을 갖는 계통수를 따라 진화로 엮여 있다는 것에 대한 풍부하고 확실한 증거를 제공한다. 과학계에는 진화에 대한 논쟁이 없고 진화와 경쟁하는 이론도 없으며,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모든 생명체의 관계에 관한 근본적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
 
8. ‘진화 창조론’이란 하나님을 세상의 창조자로 받아들이고 그 창조에 생물학적 진화가 이용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과학’이란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그분이 창조하신 진화를 포함하는 모든 자연적 과정에 대한 연구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빅뱅이나 진화를 포함한 현대 과학의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대체 과학’이라는 그들만의 하위 문화를 만들게 될 것이며, 그것은 천문학에서부터 생물학까지를 아우르는 거의 모든 현대 과학의 토대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과학의 다른 진보는 포용하면서 지구의 나이와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주류 과학계의 합의를 거절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9. 하나님은 우주를 생명체로 가득 채우고자 진화라는 우아한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지능을 갖고 옳고 그름을 분변하며 자유 의지를 갖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특별한 생명체를 만들기로 결정하셨다. 이 관점은 과학이 자연 세계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모든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며, 성경적 기독교와도 완전히 부합한다. 어떤 과학이론도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할 수는 없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언제나 믿음의 도약을 요구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통합을 통해 과학적 세계관과 영적 세계관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 주는 만족스럽고 풍성하며 일관성 있는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10. 창세기는 ‘어떻게’와 '얼마나'가 아니라 ‘누가’와 ‘왜’를 말하는 책이며, 진화론을 논박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누가 세계를 창조하였는지에 대한 고대 신화를 반박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고대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그들의 자연 이해를 고치는 대신 그들의 수준으로 몸을 낮추셔서 그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사용하셨다. 세상은 많은 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이신 주권적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며, 창조 세계는 좋은 것이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매우 좋은 존재라는 사실이 창세기의 주요 메시지다. 창세기의 진리는 인간의 정체성과 우주 안에서의 위치를 밝혀 주지만, ‘어떻게’와 ‘얼마나 오래’에 관한 질문들을 탐색하는 것은 과학의 몫이다.
 
11.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은 진화를 받아들이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한 쌍의 남녀가 아닌 수천의 개인들로 이루어진 인구 집단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누구도 정직한 연구의 결과 그런 결론에 도달한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이 부정된다 할지라도 성경 기자가 소통하고자 의도하는 메시지(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약화되지는 않는다.
 
12. 또 하나의 걸림돌은 진화의 무작위성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목적 없는 우연이라는 개념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주의 구조와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미시적 차원에서는 ‘무작위적’ 사건의 발생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 거시적 차원에서는 질서와 안정의 구성 요소일 수 있고, 하나님이 관찰자들이 우연이라고 정당하게 인지하는 사건들을 이용하여 그분이 의도하신 목적을 달성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존 폴킹혼의 책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
 
13. 또한 우주의 광대함에 대한 현대 과학의 발견은 인간의 무가치함과 삶의 허무에 대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확언하는 우리의 가치는 우리의 수명이나 우리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무관하며,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이 관계가 영원히 존속한다는 것에 있다.
 
14. 과학도 종교도 모든 답을 제시할 수 없다. 과학과 신학은 서로 대화해야 하며, 앎에 대한 인간의 시도가 잠정적이고 유한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옮음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문화 전쟁’의 당사자들은 싸움을 멀리하고 평화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서 과학을 도구화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세계’라는 두 권의 책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려운 주제에 대하여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15.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라는 두 권의 책은 우리를 경이와 경배로 이끌어야 한다. 우리의 지성과 호기심을 과학적 노력에 활용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상세한 과학적 논의로 채워져 있지 않으며 성경, 특히 창세기의 첫 두 장에서 넘쳐흐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한 경축과 찬양이다.
 
‘창조과학’에 대한 개인적 견해

(1)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와 진화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며 한 쪽을 선택하면 자동적으로 다른 쪽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지의 여부는 ‘왜’ 라는 질문과 관련된 세계관의 영역에 속한 것이며, 진화란 그와 다른 차원에 위치한 '어떻게' 에 대해 대답하는 과학이론이기에 둘을 대립개념으로 보는 것은 일종의 범주오류이며, 과학이론으로의 진화와 세계관으로서의 창조에 대한 믿음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아래 표 참조) 그러나 한국의 대다수 복음주의자들은 이 두 범주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이 논쟁을 신앙적 창조 대 불신앙적 진화의 대립이라는 구도로만 알고 있다면, 그는 아직 이 논쟁에 제대로 참여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확언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2) 과학자 사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창조과학자들은(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에 무슨 수로 입증하겠는가?) 주로 주류 과학계가 받아들이는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서 자신들의 이론을 정당화시키려는 전략을 취한다. 즉 생물진화나 빅뱅이론과 같은 기존의 과학이론이나 그 이론의 기초가 되는 몇 가지 방법(예를 들어 탄소연대측정)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젋은 지구 창조가 맞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진화나 빅뱅 이론이 틀렸다면 당연히 젋은 지구 창조론이 맞는 것인가?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빅뱅이나 생물학적 진화가 아닌 지적 설계자에 의한 직접 창조가 맞다면 그 신이 알라나 외계인이 아닌 여호와여아 할 필연적이고 과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비과학성을 떠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고 제국주의적이며 기독교 세계 바깥에서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서구 중심적 시각인지는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조차 없다.

(3) 대다수의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소위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무신론적 세계관과 동의어로 여기며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나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성립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요 작업가설이며,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존재나 개입여부와 같은 세계관적 질문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면 방법론적 자연주의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된 자연이라는 책은 특별계시의 개입 없이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 그리고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철 지난 제국주의 시대의 신학적 유물인 ‘전제주의’에 기대 놀라운 성취를 이뤄가고 있는 과학의 핵심적인 작업가설을 거부하면서, ‘과학'이라는 이름이 주는 권위의 달콤한 열매는 따먹겠다는 것은 일종의 지적 사기행위다.  

(4) 어떠한 과학이론이든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논문의 형태로 동료심사 (peer review) 라는 과정을 통과한 후 재현이나 관찰을 통해 과학자 사회에서 입증받아야 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연구실과 학회에서 일반 과학자들을 상대로 분투하는 ‘좁지만 바른 길’을 가기보다는 크리스찬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나 저술활동을 통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려는 ‘넓고 편한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과학적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미국의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과는 달리,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젋은 지구"가 과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받는 대항이론인 것처럼 활발히 선전하면서도, 동료 과학자 집단과는 자의든 타의든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대의 과학자 사회와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고 자신들끼리만 교류하는 자페증에 빠진 '과학'이론을 지칭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용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사과학이다.  

(5) 현대의 모든 학문 특히 과학은 세속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점령되어 있으며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 현대의 과학계와는 소통 자체가 어렵다고 불평하는 창조과학자들은 당대의 과학이론을 혁명적으로 뒤엎는 지동설이나 진화론과 같은 이론을 주장했던 학자들도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 속에서 심지어는 신변의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분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허접하고 부실한 근거만으로 현대과학의 모든 기초를 뿌리부터 흔드는 주장을 하는 용감한 단체가 그 정도의 비판과 어려움도 감수하지 못하겠노라고 불평한단 말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과학이란 원래 강연장이 아닌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과학적 진리란 대중을 상대로 한 이야기책이나 자신들의 리그에서나 통용되는 질 낮은 논문이 아닌 당대 과학자 사회와 소통이 가능한 수준있는 논문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탐난다면 자신의 빈약함과 초라함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목차
 
머리말 - 데보라 하스마
감사의 글
들어가는 글 - 캐서린 애플게이트, 짐 스텀프
1 문화 전쟁에서 공동의 증언으로 나아가다: 신앙과 과학의 순례 길 - 제임스 스미스
2 과학을 두려워하는 자 누구인가- - 스캇 맥나이트
3 필연적 귀결 - 켄 퐁
4 진화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배우다 - 데보라 하스마
5 창조를 예찬하는 구약학 교수 - 트렘퍼 롱맨 3세
6 생명의 주 - 제프 하딘
7 평화 - 스티븐 애슐리 블레이크
8 하나님의 언어를 배우다 - 프랜시스 콜린스
9 믿음, 진리, 신비 - 올리버 크리스프
10 경이로운 우주에 감탄하다 - 제니퍼 와이즈먼
11 끓는 주전자와 개조된 유인원 - 존 오트버그
12 지적 설계에서 진화적 창조로 방향을 전환하다 - 데니스 베니머
13 어느 과학자의 사색적 신앙으로의 여정 - 프러빈 셋후파티
14 더듬어 길을 찾는 여정 - 도로시 보오스
15 성경적으로 충족된 진화 창조론자 - 짐 스텀프
16 실재의 진실한 해석 - 대니얼 해럴
17 영국인이 본 미국의 진화 논쟁 - 톰 라이트
18 개인적 진화: 진화 과학과 기독교의 화해 - 저스틴 배럿
19 어느 진화 창조론자의 진화 - 데니스 래머로
20 별들의 가르침 - 로라 트루액스
21 그래서 진화를 믿는다는 겁니까- - 로드니 스콧
22 진화하는 창조 세계의 영: 오순절주의 신학자의 의견 - 아모스 용
23 두 권의 책 + 두 개의 눈 = 기독교 증거를 위한 필수 요소 네 가지 - 리처드 달스트롬
24 쉬운 답에 안주할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릴 것인가 - 캐서린 애플게이트
25 안전한 곳 - 리처드 마우
바이오로고스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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