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말부터 펼쳐들었던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5개월여 만에 다 읽었습니다. 21세기 복음주의 진영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분인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기독교 신학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해 1993년도에 처음으로 펴낸 유명한 기독교 신학 개론서입니다. 1997년에 나온 2판은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역사 속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바 있으며, 복 있는 사람에서 2014년도에 펴낸 이 책은 2011년에 나온 5판의 번역본입니다. 개인적으로 젊은 시절 기독교서회 판을 읽은 바 있으니 이번이 옷을 바꿔입고 업그레이드 한 이 책과의 두 번째 만남이 되는 셈이네요.
2. 본문만 11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길라잡이 : 시대 주제 인물로 본 기독교 신학’이라는 제목의 1부는 신학史 혹은 기독교 사상사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2000년 기독교 신학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했던 주요 사조 및 인물들을 200여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후기자유주의나 급진 정통주의 같이 일반 신학사 책에서 잘 다루지 않는 최근의 흐름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퍽 유용합니다. 2부는 조직신학의 서론에 해당하며 ‘자료와 방법론’이라는 제목 아래 신학의 구조, 원천, 방법 및 철학 · 문화 · 과학과의 관계를 둘러싼 중요한 논의들을 역시 200여 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으로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본론격이라 할 수 있는 3부는 ‘기독교 신학’이라는 제목 아래 중요한 교리적 주제들을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신론에서 종말론에 이르는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어 있지만, ‘삼위일체론’이나 ‘기독교와 세계 종교들’ 같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중요성을 띠게 된 주제들은 따로 한 장씩 할애하여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3.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규범적’ 방식이 아닌 ‘서술적’인 방식으로 씌어졌고, 설득’이 아닌 ‘설명’을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즉 중요한 교리적 주제들에 대해 교파적 입장에서 체계적이고 단정적으로 서술하는 일반적인 조직신학서와 달리, 특정 주제에 대해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하다고 인정받는 다양한 견해와 그 장단점을 가능한 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해당 주제에 대해 신학뿐 아니라 철학 · 역사 · 과학과 같은 인접 학문의 맥락에서도 살핌으로서, 자신이 ‘신학’이라는 우물 안에서만 활개치는 개구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제까지의 입문서가 주로 교리에 대한 공시적이고 평면적인 설명에 치중하고 있었다면, 이 책은 이렇듯 역사적 문맥에 기대어 기독교 교리를 해설함으로서 기독교 신학을 좀 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서술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4. 그러나 저자는 필요한 경우에는 설명의 말미에 간단한 논평을 덧붙이는 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그 경우 자신이 복음주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주제를 다룰 때도 초대 교부들로부터 개혁자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거의 모든 기독교 전통의 견해에 대해 옹호와 존중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유독 계몽주의와 舊자유주의 기독교에 대해서만은 일관되게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그들의 신학이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칼 바르트 신학의 등장이나 삼위일체론의 부흥에서 알 수 있듯 서구에서 세계 대전 이후로 계몽주의 이전 ‘정통 기독교 신학’의 유산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이러한 저자의 내러티브는 그의 신학적 정체성이 복음주의 기독교임을 잘 보여줍니다.
5. 맥그래스는 기독교 신학이 순전히 지적인 면에서도 누구라도 공부하고 싶어할 만큼 큰 매력을 지닌 학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기독교 신학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독자를 전제하고 저술했다고 강조합니다. 과연 저자가 이 두툼한 책을 통해 펼쳐 보이는 기독교 신학의 세계는 그의 확신에 저절로 고개를 끄떡이게 될 만큼 풍성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소망과 달리 “기독교 사상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독자가 이 책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 사상을 스스로 탐험”해 나갈 수 있는지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이 책은 기독교 사상사나 조직신학에 대한 기본적 소양을 쌓은 독자가 자신의 교파적 우물을 떠나 2000년 기독교 신학의 더 큰 바다로 나아가기 전에 필수적으로 살펴야 할 ‘기독교 신학의 공시적 통시적 조감도’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6. 2000년 신학사를 폭넓게 조감하는 넓은 시야와 아무리 어려운 개념도 명료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은 과연 ‘요약과 정리의 왕’이라는 세간의 칭송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일반적인 조직신학 교과서가 정교하고 일관된 계획에 따라 모난 부분을 과감하게 제거하면서까지 오차 없는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 낸 장엄하고 거대한 대성당이라면, 이 책은 세월에 따른 증축의 흔적과 이로 인한 일부의 불균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그 때문에 오히려 더 풍요롭고 아름다와진 수도원 건물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네요. 맥그래스와 함께 했던 흥미진진한 여정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기독교 신학의 얼굴은 '숭고'와 '장엄'이 아닌 '풍성함'과 '아름다움'의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학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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