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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사회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최경환 지음, 도서출판 100 펴냄)

by 서음인 2020. 4. 28.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은 백석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남아프리카의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한 저자가 쓴 공공신학 소개서다. 저자는 공공신학이 성서나 기독교 교리로부터 공공성의 원리를 뽑아내 현실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이슈들이 기독교 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치학 철학, 사회학과 같은 인접 학문과의 대화를 통해 귀납적으로 살피는 일종의 응용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 공공신학의 기원과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강조한다. 관심이 많은 분야여서 특별히 반가웠던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간략한 단상을 덧붙이기로 한다.



시작하며 : 공공신학 지도 만들기


많은 이들이 신뢰의 위기에 빠진 기독교의 회복을 위한 방편으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 회복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신학적 노력의 하나인 공공신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남아공의 공공신학자 더키 스미트가 제시한 공공신학의 여섯 가지 기원에 이론적 설명과 역사적 사례를 덧붙여 공공신학을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소개하려는 시도다. 1장에서는 그동안 소개된 다양한 공공신학의 중요한 개념과 전체적 맥락들을 소개하며, 2장부터 7장까지는 스미트의 여섯 가지 기원을 순서대로 복기한다. 2장은 시민종교를 다루고, 3장에서는 신학이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논의하며, 4장에서는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과 그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소개한다. 5장에서는 공공신학과 해방신학의 관계를, 6장에 세계화와 공공신학을, 7장에서는 최근 이루어지는 종교의 귀환에 대한 논의를 다루며, 마지막 8장에서는 낸시 프레이저의 삼차원적 정의를 통해 공공신학의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1. 공공신학 다시 정의하기


공공신학은 여전히 형성 중에 있는 일천한 역사를 가진 신학으로 다양성과 다원성을 그 특징으로 지니며, 아직까지 뚜렷하게 정리된 하나의 입장이나 통일된 신학 체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공공성이란 시민들이 외부의 강제 없이 비판적인 논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적 삶이자 자발적으로 여론이나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공공신학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사회적 조건 속에서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공적 삶에 어떻게 건설적이고 비판적으로 참여해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다.

 

공공신학은 해방신학이나 정치신학과 달리 국가나 사회를 향해 일방적 선포나 혁명적변혁을 요구하지 않으며, 공론장의 규범적이고 합리적인 소통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질서와 원리를 존중한다. 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며, 이는 공공신학이 가지는 다원성 · 다양성 · 모호성이 오히려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기독교 신학은 근대화 이후 자신들의 목소리가 주변부로 밀려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며, 통합된 이야기나 교리에 집착하는 대신 새로운 파편으로 기존의 질서에 틈을 내고 깨뜨리는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2. 첫 번째 길 - 시민종교와 벌거벗은 공론장


시민사회가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종교나 공유하는 의례 및 민족성을 신성화한 시민종교가 필요하며, 공공신학이란 이러한 시민종교의 한 형식일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중시하는 도구화된 근대적 자유주의만으로 부족하며, 종교가 벌거벗은 공론장에 참여하여 옮음과 그름 · 정의와 평등 · 공정성 같은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약한 시민권으로는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다. 우리가 강한 시민권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뻔뻔스러움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민주주의가 중요하게 여기는 공공성과 시민성을 제대로 학습하거나 체화하지 못한 나머지, 타자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감수성과 사회적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감능력, 그리고 공론장의 비판을 견디면서 합리적 절차와 과정을 거쳐 세상과 소통해 사회적 연대를 이끌 수 있는 마음의 습관이 결핍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민으로 공론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최선의 가치도 부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겸손하게 주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민사회 속에서 공공신학은 낯선 이들을 환대하고 그들과 함께 공적 의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포용의 공간이 되어야 하며, 비통한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공론장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공간을 창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3. 두 번째 길 : 공적 담론으로서의 신학


공공신학의 과제는 기독교 신앙과 윤리적 지침들이 교회 공동체의 가르침과 전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보편적인 담론 속에 편입될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1) 복음의 보편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시카고 학파에 따르면 공공신학은 공적 영역에서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슈를 다룸으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기독교 신학은 세상의 언어와 문법으로 번역 가능해야 하며, 공통의 근거와 토대를 활용해서 기독교의 진리체계를 효과적으로 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이에 반해 복음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강조하는 예일 학파의 대표인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윤리는 바로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신앙의 전통적인 가치들에 따라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면서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을 신실하게 증언하는 것이야말로 신자 공동체가 세상을 섬기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제임스 거스탑슨은 기독교 사회윤리의 기본적인 유형을 예언적 담론 - 서사 담론 - 윤리적 기술적 담론 - 정책 담론의 네 가지로 분류하면서 기독교 담론의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제시했다. 나이젤 비거는 칼 바르트의 신학을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자연법이나 자연 은총을 강조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을 사용해 공공신학을 전개한다. 그는 기독교 신학이 가지고 있는 전체 이야기 혹은 거대 서사만으로도 충분히 윤리학에서 요구하는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모든 인간이 공통의 윤리적 기초와 선에 대한 공통의 개념을 공유하기 때문에 공통 감각이나 비신학적 통찰을 충분히 수용하고 인정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시적 교회는 자신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공간을 개방해야 하며,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환대의 공동체, 경계선에 선 공동체로 다시 등장해야 한다.


 

4. 세 번째 길 : 기독교와 공론장의 구조 변동


하버마스는 공공성이란 사회의 규범적인 비전에 대한 공적인 의견을 만들기 위한 공적 영역 또는 공적 실천이며, 이를 위해서는 서로 경쟁하는 결사체들과 생활형식들이 비판과 수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합의를 도출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개성접근 가능성이라는 공론장의 두 가지 특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생활세계이며, 이러한 생활세계에서 공공성을 도출하는 원리는 실재가 의사소통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상호이해 및 대화와 실천을 통해 구성된다는 의사소통 합리성이라고 강조했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을 통해 기대했던 것은 자본과 권력으로 대표되는 체제명령이 생활세계 안으로 식민적으로 침범하는 것을 민주적으로 저지함으로서정치적 저항과 해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초기에 하버마스는 공적 대화가 가능하려면 순수한 절차적 정의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도덕적 신념이나 종교적 언어는 합리적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기 하버마스는 종교가 단지 사적인 고백의 차원을 벗어나 사회적 해방이나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공공의 사명을 위해 연대할 수 있고 자신의 주장을 모든 사람이 수용 가능한 합리적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종교의 타당성 주장이 공론장에서 수용 가능할 뿐 아니라 공동선과 공적 삶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하버마스의 주장은 종교의 다양한 면 중 합리적인 부분만을 인정함으로서 종교에 대한 얇은이해를 보여준다. 교회나 신학이 공공성을 증진하고 효과적인 공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의를 위한 신학이나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신학보다 오히려 돌봄과 배려의 신학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5. 네 번째 길 ; 공적 분노와 해방신학의 재구성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합의와 협력을 통해 공적인 가치를 만들어가는 공공신학과 달리, 정치신학과 해방신학은 신학이 갈등이나 투쟁과 관련되어 있다고 간주한다. 80년대 후반 제3 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민주화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해방신학의 유효기간이 끝났으며 이제는 공공신학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해방신학이 가난한 자들의 우선적 선택이라는 의제를 재설정하거나 확장해야 하며, 단순한 비판과 투쟁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학제적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교회의 사명이 투쟁과 갈등이 아닌 새로운 인간성 회복과 민족들의 재건에 있으며, 이를 위해 공동체의 연대와 개인적 성취를 동시에 이루는 긍정의 신학인 재건 신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제3세계의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서구 부르주아 중산층의 기획인 공공신학이 아니라 새롭게 구성된 반제국주의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아직까지는 공공신학이 해방신학을 대체해서는 안되고 해방신학과 함께 상호보완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은 이전의 해방신학자들이 문제삼았던 속박과 종속의 문제를 더욱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제국은 해방신학을 지역적인 신학에서 중심부와 주변부 모두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루는 보편적 상황신학으로 만들고 있다. 공공신학은 공적 분노를 품고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자들과 함꼐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투쟁해야 하고, 차이와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연대와 연합의 정치체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공신학은 민주화, 근대화 ,세계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담론들과 대결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신실하게 증언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6. 다섯 번째 길 : 세계화와 대항적 공공신학


점차 증가하는 세계화에 관한 인식은 공공신학이 다루고 있는 주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공공신학 안에는 세계화와 이로 인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기독교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로 평가하는 입장과 기독교와 세계화는 상호보완적이고 동반자적인 관계이며 교회는 세계화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공존한다. 레베카 페터스는 세계화의 네 가지 모델 중 신고전주의 경제학으로부터 나온 신자유주의 모델과 개발주의 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파산한 이론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대안으로 환경주의 모델과 탈식민주의 모델을 제시한다. 스택하우스는 세계화는 제국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존재하지만 세계화에 기독교의 핵심적 원리를 반영하여 그 전체 프로잭트를 바꾸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공공신학의 책임 있는 소명이라고 말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결합된 결과 탄생한 제국이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히 탈근대 담론들이 쏟아내는 해방의 전략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특정한 민족 국가의 영토에 국한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영역에 현존하는 전방위적인 권력 장치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톰 라이트는 예수의 사역과 부활은 온유하고 겸손한 반정치적 방식으로 제국의 권력이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것임을 드러냈다고 주장하며, 데이비드 보쉬는 아나뱁티스트의 모델을 통해 교회가 제국의 방식이 아닌 평화와 상호공존의 방식으로 신학을 수행하는 대안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가 그러했듯 깨어지고 분열된 이 세상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자들을 환대하고 그 필요를 공급해 주는 것이야말로 공공신학이 제시하는 교회의 자리이자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다.

 


7장 여섯 번째 길 : 종교의 공적 귀환


그동안 자유주의 공론장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로부터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되었지만, 다양한 인정욕구야말로 정치의 근원적인 의지이자 뿌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종교적 가치와 신념이 다시금 공론장으로 귀환하고 있다.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은 예외 상태를 결정하고 적과 친구를 결정하는 주체의 판단에서 비롯되며 주권자의 결정이야말로 궁극적인 권위이자 법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함으로서, 현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세속화된 신학 개념임을 밝혀냈다. 또한 보편성의 정치에 반대하여 차이와 인정의 정치학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정치철학은 개인 또는 집단의 차이에 따라 평등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차이에 따른 구별된 대우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리스 영은 교육을 받지 못해 합리적 토론이 지배하는 공론장에서 배제되고 제외된 피지배 계층도 사용할 수 있는 감성의 언어, 감정의 언어를 통해 공론장을 흔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롤스가 시민 각자가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교리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했던 중첩적 합의는, 기독교가 지닌 고유한 신념 체계와 다원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적 개념을 연결할 수 있는 좋은 이론적 기초가 될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연합과 합의만을 강조하고, 근대적 합리성만을 소통의 방식으로 인정하며, 서로의 차이를 숨긴 채 공허하고 형식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근대적 공론장 대신, 제한과 제약이 없는 대화, 새로운 형태의 소통과 대화가 가능한 공간, 단순히 재화의 분배만이 아니라 문화와 감정과 지위기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이 요청되고 있다. 종교는 종말의 비전을 선취하는 공동체로서 기존의 통치체제와 가치를 전복시킬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 종교가 공론장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공론장의 경계를 계속 확장시켜 급진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공론장에서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기존의 틀과 형식을 계속 흔드는 것이다.

 


8- 누구를 위한 어떤 공공신학인가?


한국교회는 공공신학을 통해 다양한 의견들을 비판, 견제, 수용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배워야 하며, 이를 위해 공론장에서 모든 사람이 이해할 만한 방식으로 신앙의 확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고 이러한 논증이 정합성, 일관성, 논리적 합리성이라는 테스트를 통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공공신학은 다양성을 수용하고 모든 대화 당사자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호혜의 공간이자, 의사소통 합리성이라는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까지 감싸 안을 수 있는 유연하고도 넉넉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공론장에서 만나는 낯선 자들은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게 해주며,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개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공신학의 궁극적 지향점은 누구를 위한 어떤 공공신학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낸시 프레이저는 '인정투쟁'의 과제를 특정 집단의 정체성 인정이 아닌 집단의 개별 구성원이 겪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해악의 제거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신학은 불편부당한 중립성을 고수하기보다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편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감으로서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보여주어야 하며, 이를 위한 가장 적절한 신학적 패러다임은 공적 이성에 근거한 대화나 토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에 의한 공동선의 실현을 강조하는 환대모델이다. 로고스의 폭력에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시켜 주고 타자를 맞아들이기 위해 내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에 근거한 환대의 실천이자 공공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몇 가지 단상

 

1. 이 두껍지 않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저자 탓은 아니다. 저자는 이 분야에 관심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전혀 선이해가 없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친절하고 명쾌하게 글을 썼다. 문제는 공공신학 자체였다. 정의 자체가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이슈들이 기독교 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치학, 철학, 사회학과 같은 인접 학문과의 대화를 통해 귀납적으로 살피는 응용신학이라지 않는가? 이 책은 신학이라는 제목을 내건 책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한 성서적, 교리적 개념들을 찾아보기 힘들뿐 아니라, 스탠리 하우어워스나 틈 라이트, 데이비드 보쉬 정도를 빼면 비교적 잘 알려진 신학자들의 이름을 발견하기도 힘들다. 데이비드 트레이시나 맥스 스택하우스 · 제임스 거스탑슨 · 나이젤 비거 · 폰 시너 · 빌라-비센치오와 같은 이름들도 생소하지만 이들은 신학자니까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로버트 벨라 · 로버트 퍼트넘 · 파커 파머 · 위르겐 하버마스 · 존 롤스 · 칼 슈미트 · 네그리-하트 · 아이리스 영 · 낸시 프레이저의 담론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복음주의권 신학이라니!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 담긴 이름과 담론들이 흥분과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신학이라는 책 제목에서 익숙한 성서적 · 교리적 개념들의 향연을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이 책이 꽤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전자에 속했고, 내게는 이 책이 충분히 흥미롭고 만족스러웠다.    


2.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공공신학의 정의와 방법론”, 그리고 현대 공공신학의 지형도를 깔끔하게 요약해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말만 무성했지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던 공공신학, 기독교적 가치로 삶의 모든 영역을 기독교화하겠다는 기독교 세계관이나 악으로 점철된 자본제국의 마수에서 급진적 방식으로 세상을 해방하겠다는 해방신학과 달리, 민주주의라는 정치사회적 조건 속에서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 채 공론장의 규범적이고 합리적인 소통 과정에 참여해 공적 삶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충분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의 결여와 사회와의 소통에 대한 철저한 무능이라는 자신의 처참한 민낯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만 한국교회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더 선명한 복음이나 더 정통적인 신학이나 더 열정적인 제자도나 더 순수한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게토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스스로의 존재와 생각을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삶의 방식으로 번역해 겸손하게 세상과의 대화와 소통에 참여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키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일을 위해 가장 긴급하고 적실한 도구는 바로 이 책이 소개하는 공공신학이 아니겠는가?  


3. 이 책은 주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 공공신학의 기원과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는 것에 주력하지만, 저자는 결코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감추는 객관적인 공공신학 해설가가 아니다. 저자는 이데올로기나 종교가 배제되고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 합리성이 지배하는 공론장이라는 근대적 자유주의의 전제에 회의적이며, 다원화된 사회인 현대에는 의사소통 합리성의 범주에서 배제된 다양한 문화와 종교, 감정과 지위의 인정욕구들까지 넉넉히 품을 수 있는 새로운 공론장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론장에서 공공신학은 낯선 이들을 환대하면서 그들과 함께 공적 의제를 풀어가야 하며, 비통한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공론장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소 존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에 공감하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 의사소통 합리성이 지배하는 근대적 공론장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지만, 공론장에서 공공신학의 역할이 낯설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환대편애여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에는 깊이 공감한다. 과연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강변해 온 한국교회가, 낯설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환대와 편애야말로 공공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여야 한다는 저자의 불온한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에서 공공신학은 꽤 오랫동안 좁은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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