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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세계/평화전쟁인권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카너 폴리 지음, 마티 펴냄)

by 서음인 2016. 5. 30.

1.전통적으로 적십자사와 같이 전쟁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에 개입해 구호활동을 벌이는 인도주의 NGO 들은 원활한 현장접근과 구호활동의 효율성을 위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의 원칙을 견지해 왔다. 이들은 특정 정치 경제체제를 지지하거나 자신들의 활동을 인권이나 체제개혁과 같은 다른 이슈와 연계시키지 않으며, 오직 긴급한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한시적으로 돕는 일에만 자신들의 역할을 한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1990년대 들어 여러 인도적 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전통적 중립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기 시작했으며, 서구적 인권개념을 인도주의 운동의 새로운 기틀로 여기는 소위 “정치적 인도주의” 라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전통적 구호단체와는 달리 이들 정치적 인도주의 단체들은 특정 국가가 국제적 인권기준을 이행하지 못할 때에는 유엔안보리를 비롯한 다른 구성체가 국가주권이라는 전통 관념보다 우위에 서서 직접 국제적인 인권보호에 나설 수 있다는 ‘보호책임’의 논리에 입각하여 국제사회의 무력개입을 지지하거나 심지어 군사개입을 촉구하는 로비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파병된 평화유지군들에게 자신의 안전을 맡기거나 그들과 적극적으로 연계해서 활동하기도 하며, 몇몇 분쟁국가에서는 보건, 교육, 복지행정까지 도맡는 등 거의 정부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2, 저자에 의하면 이렇듯 정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정치적 인도주의는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서방세계의 외교정책 수립이나 국제관계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 결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이른바 '복잡한 위기상황' 이 발생하면 특정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같은 로고가 그려진 자동차를 타고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 지원사업을 펼친다. 오늘날 대다수의 영, 미 구호기구는 자신들의 운영프로그램이 지원된 기금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상당 규모의 미디어 담당부서를 가지고 있으며, 구호기구에 고용된 언론 담당관들과 로비스트들은 특정 위기를 강조해 세인의 양심을 자극하고 군사적 개입을 포함한 행동을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몇몇 단체들은 위기를 과장해서 적극적으로 기금을 모으거나 무력개입을 촉구하기도 하며, 다른 단체의 노력과 중복되거나 심지어 자신의 단체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경우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규모 재해나 인도적 위기상황에 다투어 달려들기도 한다.

 

3. 그러나 엠네스티와 유엔난민기구를 포함한 다양한 인도주의기구에 근무하면서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우간다, 보스니아 등지에서 활동했던 저자는 인도적 목적을 명분으로 한 군사적 개입은 현행 국제법상 지지를 받지 못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First, do not harm)’는 인도주의의 제일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인도적 개입이 대규모로 이루어진 곳 가운데 회복이 성공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거의 예외 없이 통치력의 약화와 극심한 사회분열을 겪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인도주의 기구들은 무력개입을 요청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그 무력에 의존함으로서 중립성을 상실하고 현지 시민사회와의 연대 가능성도 잃고 말았으며, 구호활동이 군사적 개입의 구실로 이용되거나 인도주의활동이 군사작전의 보조기능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정치적 인도주의 단체들이 강조하는 ‘인권’ 개념은 서구인의 시각일 뿐 지역에 따라 사고방식은 크게 다를 수 있으며, 상대 국가의 주권과 문화적 특수성을 무시하는 인도주의 개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4. 따라서 저자는 정치적 인도주의의 주장과 달리 많은 예에서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인도주의적 목적의 군사개입은 금지되거나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하며, 인도주의 단체들은 구호활동에서 정치적 군사적 논리가 우선될 경우 이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인도주의 기구의 구호활동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국제 원칙은 인도주의 활동이 전통적으로 표방해 온 독립성 공정성 중립성뿐이며, 인도주의 기구가 생명 구제를 위한 구호활동이라는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국가건설의 책임을 떠맡거나 구호 제공에 인권 기반의 접근법을 채택하거나 구호를 평화구축 목적에 이용하기 시작하면 이 원칙들의 손상과 해당 단체의 신뢰성 하락이 불가피하며 결과적으로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저자는 서구 자유주의가 고안하고 정제해서 수출용으로 포장한 인권 개념만이 유일한 인권 개념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보편적인 인권 기준에 따른 책임 문제를 무리하게 강요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지역사회의 전통 지도자들과 협력하면서 관련 당사자들간의 신뢰 구축에 매진하는 것이 평화 구축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5. 구호는 구호일 뿐 인권이나 정의와 같은 가치와 연계되어서는 안되며, 인권과 평화와 같은 선한 목적을 위해 군사개입과 같은 폭력적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과 대량학살의 아비규환에 비추어 보자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구호단체들은 목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인권유린과 대량학살을 외면한 채 오직 피해자에 대한 구호에만 집중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인권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반대하거나, 심지어 북한의 인권을 이유삼아 전쟁불사론을 외치는 몇몇 강경론자들의 행태를 보면 정치적 인도주의가 쉽게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위한 레토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저자의 경고 역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구호단체들이 지고 가야 할 영원한 딜레마가 아닐까? 어쨌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이야기만 나오면 평소때는 별 관심도 없는 인권과 자유, 정의를 유난히 강조하는 몇몇 분들은 특별히 저자의 주장을 잘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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