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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세계/평화전쟁인권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돌베게 펴냄)

by 서음인 2016. 5. 28.

2013년 10월 22일의 리뷰  이 책은 민족적으로는 조선인이고 국적은 한국이지만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조선인 2세로, 그 어디에도 자신의 확고한 뿌리를 가지지 못한 채 살아왔던 저자가 스스로의 존재조건이기도 한 현대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유래와 의의를 런던, 잘츠부르크, 카셀, 광주 등 디아스포라들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탐색해 온 여정의 기록이다. 


저자에 의하면 현대의 디아스포라는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사람들을 국민으로 편성하며 식민지배와 세계분할을 강행했던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이유로 근대 국민국가의 틀에서 내던져진 채 유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저자는 그의 여정 속에서 칼 마르크스, 장 아메리, 펠릭스 누스바움, 스테판 츠바이크와 같이 비교적 잘 알려진 사람들부터 우리에게 생소한 재일조선인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근대적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현대의 디아스포라들의 삶의 흔적과 작품을 만나고, 그들의 시선으로 근대를 다시 보며, ‘근대 이후’의 인간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저자는 내셔널리즘이란 초월과 연속성을 보장하던 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근대인들이 운명의 불연속성을 연속성으로, 우연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근대적 상상력의 소산으로, 국민을 하나의 불멸의 유기적인 신체로 상상하고 끊임없이 타자를 만들어 그들을 배제함으로서, 지속적으로 영생하는 ‘우리’라는 일체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가 몸소 체험했고 만나 왔던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다수자들이 근대적 삶을 지탱해 주는 고정되고 안정된 바탕이자 지지대라고 믿는 국민국가, 민족, 모국어와 같은 관념이 실제로는 지극히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근대 국민국가라는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들이야말로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양식을 미리 체현한 존재들이며, 디아스포라들의 조국이란 국경에 둘러싸인 영역이나 혈통과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닌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지 않는 곳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디아스포라들의 진정한 조국은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저편에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조국’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험난한 길을 거쳐야만 할 것인지, 심지어는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 것인지 자문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근대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의 강고한 벽 앞에서 이 세상 어디에도 디아스포라들이 뿌리내릴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가 몸소 체험해 온 냉엄한 현실이 이러한 비관적 결론의 근거일 것이다. 


이처럼  차안의 세계에 뿌리내릴 '조국'을 갖지 못한 채  '나그네와 디아스포라'로 방황하며 살아가도록 저주받은 저자의 모습과, 피안의 ‘조국’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 가운데서 '나그네요 디아스포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가르치는 자신들의 종교를 기꺼이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의 수호자로 둔갑시킨 채 이 세상의 주인이기를 열망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상념일까? 


2015년 1월 16일의 리뷰  <고뇌의 원근법>과 <나의 서양음악 순례>에 이어 2013년에 만났던 이 책까지 저자와 세 번의 만남을 가진 셈입니다만, 재일조선인 2세로서 겪어야 했던 체험에서 우러난 뿌리없음과 절망, 체념과 죽음의 냄새가 짙게 베어 있는 서경식 교수의 글을 접하는 것은 언제나 힘겹습니다. 모든 세상의 인연과 기억으로부터 철저히 추방된 채 나치의 가스실에서 죽어간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의 그림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 이야말로 바로 저자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과연 이 세상 가운데 뿌리내릴 '조국'을 갖지 못한 채 '나그네와 디아스포라'로 방황하며 살아가도록 저주받은, 저자를 포함한 현대의 디아스포라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낯선 세상을 '나그네와 디아스포라’로 그들과 함께 유리하는,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하는 '차안' 의 조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일까요? (히 11) 혹시 자신들의 종교를 기꺼이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의 수호자로 둔갑시킨 채 세상의 모든 나그네와 디아스포라들을 학대하고 추방하면서 이 세상의 주인이기를 열망하는 자들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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