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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문학

서유기 1-10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서유기 -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 (나선희 지음, 살림 펴냄), 어른의 서유기 (성태용 지음, 정신세계사 펴냄)

by 서음인 2020. 9. 1.

서유기는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로 삼장법사가 요괴 출신인 세 제자와 함께 불경을 가지러 천축으로 여행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마침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정과(正果)를 얻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재미있게 그린 이야기다. 이 소설은 당나라 시대의 구법승이었던 현장이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까지 여행했던 역사적 사실을 그 출발점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역사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 신괴(神怪) 혹은 신마(神魔) 소설이라는 새롭고 독창적인 장르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난 완전한 창작물이다. 서유기를 판타지 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나선희의 서유기 -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 서유기를 불교의 구도 과정을 묘사한 우화로 해설하는 성태용의 어른의 서유기 - 철들고 다시 읽는, 원숭이가 부처 되는 기똥찬 이야기, 그리고 서유기10권의 말미에 붙은 2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작품해설인 서유기의 탄생과 변천 과정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1. 100회로 이루어진 서유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7회 까지는 손오공의 탄생과 수련 그리고 천상에서의 난동을 다루고, 8~12회까지는 현장법사의 이야기이며, 13~100회까지는 손오공과 삼장 그리고 여러 제자들이 만나서 경을 가지로 떠나는 여행의 이야기다


2. 『서유기가 탄생한 명나라 시대는 도시와 수공업의 발달로 상인과 시민계급이 등장했고, 평등한 질서에 대한 염원을 담은 해방적 사상인 양명학(陽明學)이 유행했으며, 인쇄업과 출판업의 발전으로 일반에게 판매하기 위한 찍어낸 서적인 방각본(坊刻本)이 유행하던 시기였다사회적으로 볼 때 서유기 손오공을 대표로 하는 신흥 진보세력과신불(神佛)을 대표로 하는 전통적 봉건 세력그리고 요마들을 대료로 하는 사회적 반동 세력간의 모순과 상호 의존그리고 갈등과 대립이 그 배경에 놓여 있다.


3. 이러한 시대에 등장한 서유기는 대체적으로 당대의 봉건 지배층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수탈과 민중을 호도하는 타락한 종교세력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으며, 저자는 이를 서천으로 가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신마 세계와 요괴, 그리고 타락한 종교집단과 국가들에 대한 묘사에 담아 통렬하게 고발한다. 또한 주인공인 손오공은 옥황상제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독립심과 반항기질의 소유자로 그려지, 용궁으로 쳐들어가고 명부(冥府)와 천계(天界)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요괴 마귀를 휩쓸어버리는 손오공의 담력과 저항정신 그리고 역량이야말로 현실의 개혁을 요구하는 당대 백성들의 정서와 요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서유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불교와 도교의 세계상을 기반으로 한 당대인들의 상상력을 집약해 다채롭고 입체적인 '사이버' 세계를 새로이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손오공은 지상과 천계와 명부에 존재하는 모든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존재이며, 그에게 삼장을 모시고 여행하는 지상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를 중심으로 해서 요마의 세계나 천상과 지하의 세계가 겹쳐지고 있는 통합적 세계’였다. 그리고 이는 흥미롭게도 영화 매트릭스요한계시록에 에서 보이는 겹쳐진 공간이라는 기본 모티프와 일치한다. 이러한 서유기의 복합적 세계 안에서는 부처 · 신선 · 요마 · 인간 · 동물과  같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들 간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삼장은 석가여래의 제자인 금선자의 환생이고, 그의 세 제자는 죄를 지어 인간계로 귀양온 천계의 신선들이다. 또한 요마의 정체는 대개 신선도를 닦은 동물이거나 여러 이유로 천계로부터 내려온 존재들이며, 이들은 때때로 불법에 귀의하거나 천계로 복귀하기도 한다.   

 

5. 서유기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절대선과 절대악을 대표하는 전형적 존재들이 아니라, 개성이 뚜렷하고 다면적인 성격을 가진 재미있고 통합적인 인물들이다. 삼장은 나약한 겁쟁이에 항상 선악을 오판하고 바른 판단을 내리는 손오공에게 유독 가혹한 어리석은 인물로 그려지며, 주인공인 손오공은 공명심이 강하고 자비심이 부족할 뿐 아니라 불가에 귀의해서도 삼장이나 관음보살에 대해서조차 절대적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 또한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악독한 요마들은 알고 보면 천계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엮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의 가족이나 자식에 대해서는 각별한 사랑을 보여주기도 한다심지어 천상의 존재인 관음보살이나 태상노군, 옥황상제도 위엄이나 자비의 화신으로 나타나는 대신, 화를 내거나  허둥대거나 무능하거나 옹졸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또한 천계와 명계 그리고 도교의 선경과 불교의 성지 역시 공평무사함과는 거리가 멀며, 인간 세계의 타락과 추악함을 동일하게 지닌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렇게 신()과 마()의 경계가 명확치 않은 입체적인 인물 묘사와 반전 있는 사건전개, 그리고 현실 사회에 대한 통쾌한 풍자와 날카로운 비판은 이 소설의 재미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6. 삼장과 함께 경을 구하러 가는 세 제자와 용마는 인간과 동물과 신선의 특징을 조금씩 가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로, 원래는 천계의 신선이었으나 모두 천상이나 용궁에서 죄를 짓고 속죄의 일환으로 삼장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는았다.

 

(1) 삼장은 경을 가지러 가겠다는 강한 목표의식과 굳센 믿음을 가진 경건한 불교도로, 색과 권세와 부귀영화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선량하고 동정심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나약하고 무능한 겁쟁이이고 언제나 선악의 대상을 구분하는 데 실패해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사태를 올바로 파악해 단호하게 대처하려는 지혜롭고 유능한 제자 손오공에게 유독 가혹하게 대한다. 그는 맹목적으로 황제를 숭상하고 유교적 봉건질서를 준수하는 나약하고 용렬한 가부장적 인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2) 손오공은 원숭이의 활동성을 닮아 용감하고 낙천적이며 수평/수직의 모든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혜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옳고 그름을 명백히 가려내 악을 뿌리뽑으려는 마음이 충만하다. 또한 불문에 귀의한 후에도 심지어 고비때마다 일행을 돕는 관음보살에게조차 완전히 복종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독립된 의지와 인격을 굳게 유지하며, 이는 봉건세력의 속박을 타파하려는 신흥 시민사회 세력의 갈망과 욕구를 잘 드러낸다. 그는 참된 인간의 전형이었으나 시대의 한계는 그를 원숭이로 표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며, 그를 속박하는 긴고주는 기존의 질서와 종교에 대한 통렬한 야유의 상징믈이 되었다.

 

(3) 저팔계는 이 소설의 지닌 예술적 품격인 해학과 풍자, 골계와 유머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돼지로서의 내적 속성을 가진 저팔계는 욕망, 그중에서도 식욕과 성욕의 화신이었으며, 결점과 약점을 두드러지게 지녔지만 결코 밉지는 않은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교활하면서도 솔직무던하고, 게으르면서도 근면하며, 난관을 두려워하면서도 경을 가지러 가겠다는 의지는 확고부동하고, 이기적이고 사리사욕을 탐내면서도 대의를 잃지 않는 이율배반성을 보이며, 이러한 저팔계의 모든 품성은 고통스러운 노동에 종사하며 잠시의 쉼과 작은 행복을 소망하는 하층 노동자와 소농의 심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4) 사오정은 개성이 뚜렷한 손오공과 저팔계와 달리 이야기의 전개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과묵하고 신중하며 강인한 외유내강형의 인물이었으며한눈을 팔지 않은 채 불법만 추구하고, 오로지 스승의 뜻만을 충실히 받들며, 화목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바른 길만 추구한 고행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이미지는 규정을 잘 지키며 열심히 근무하는 성실한 관리에 비견될 수 있다.


7. 어른의 서유기 는 건국대 철학과 교수와 문과대 학장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재가불자운동을 펼쳤던 성태용 교수가 쓴 서유기 해설서다. 저자는 서유기가 불교를 중심으로 하고 도교가 가미된 인간의 수행 과정을 묘사하는 우화적 소설이며,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마왕이나 요괴도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장애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서유기의 각 주인공은 열반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마음의 다섯 가지 힘(五力) - 삼장은 믿음의 힘(信力), 용마는 정진의 힘(精進力), 바른 생각의 힘(念力), 사오정은 바른 선정의 힘(定力), 손오공은 지혜의 힘(慧力) - 을 상징하며, 삼장 법사 일행이 여행길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여섯 도둑은 수행을 방해하는 여섯 감각의 유혹을 상징한다고 강조한다. 한 마디로 철학을 전공한 개혁적 재가불자(在家佛子)인 저자가 쉽게 재밌게 써낸, 서유기를 통해 살펴보는 불교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주 재밌게 읽었으며, 그중에서도 저자가 설명하는 연기론(緣起論) 같은 불교 사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8. 결론적으로 서유기는 통합적인 질서를 관통하는 손오공의 시선, 즉 모든 권위의 이면을 꿰똟어보는 관찰자적 시선과 선/악이라는 기존의 윤리 관념을 해체한 통합적 인물을 적절히 구현함으로서 명나라 시대의 변화된 시대정신을 성공적으로 집약해 냈을 뿐 아니라삶의 진실과 종교적 구도의 과정을 재미 있는 이야기 안에 잘 녹여냄으로서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소설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9.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삼국지보다 서유기를 훨씬 좋아했다. 그리고 이번에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10권짜리 완역본과 몇 권의 해설서를 읽으며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요마라는 비주류에서 불법(佛法)’ 이라는 주류로 진입했지만, 독립된 인격과 굳센 의지 그리고 진실을 꿰뚫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그를 둘러싼 어떤 세상에도 100% 동화되기를 거부한 채 끝끝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손오공의 자유정신이었던 것 같다. 바로 평생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았고(concedo nulli) 늘 자기 자신만을 대표했던(Erasmus est homo pro se) 진정한 자유인 에라스뮈스의 정신! 과연 평생 편안한 종속보다 불편한 자유를 선택하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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