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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모음/믿음을 묻는 딸에게 1

죄의식과 수치심

by 서음인 2021. 1. 28.

의료봉사를 위해 중앙 아시아의 한 국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이 나라에서 진행된 캠프는 시종일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현지 보건당국이나 의료진들을 포함한 병원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으며, 몇몇 나라에서 그렇듯 병원 사용료나 직원들의 수고비를 요구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체계적인 전문의 수련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 아니라 의대 졸업후 본인이 원하는 과를 정해 스스로 진료하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형태였고, 현지에 있던 안과 진료 및 수술용 장비나 기구들은 전부 고장나 있거나 너무 오래되어 거의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현지의 안과 의사들이 백내장 수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수술 장비가 제대로 갖춰진 개인병원에서 고가의 돈을 지불하고 따로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근무하던 안과 선생님들은 수술에 관심이 많았고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백내장 수술은 수술 현미경을 써야 하고 양손 양발을 모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에 하루아침에 배울수도 없거니와 배운다 하더라도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지 의사들의 열심에 감동한 동료 원장님 한 분이 그들에게 수술을 가르쳐 보기로 했습니다. 능숙한 수술자인 그 원장님이 오전부터 수술을 가르치기로 한 첫날, 외래진료 후 오후에 수술방에 들어가 보니 웬일인지 언제나 수술현미경 옆에서 열심히 지켜보던 현지 의사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통역자가 잠시 수술을 중단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의사들이 갑자기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의 수술에 제동을 건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행히 수술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왜 한순간에 그렇게 분위기가 바뀌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왜 갑자기 그들의 태도가 바뀌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스탭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한 가지 짚이는 부분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현지 안과의사가 백내장 수술을 시행하면서 실수로 환자의 눈에 큰 손상을 줄 뻔했고, 수술을 가르치기 위해 옆에서 지켜보던 원장님이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큰 소리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손을 바꾸어 동료 원장님이 그 수술의 나머지 부분을 무사히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난 후 현지 의료진들이 수술방을 나가더니 갑자기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현지에서 오래 살았던 교민은 의료진들이 이 상황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인 수치를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봉사자가 겪었던 실수담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처음으로 봉사에 참여한 그분은 병원에 찾은 환자들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나이든 남성들인 그 지역의 유력자들이 순서를 무시하고 병원 안으로 들어오거나, 심지어 자신의 일가친척까지 함께 데려와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일을 빈번하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서구식 정의 관념에 익숙했던 그분은 당장 나가서 줄을 서라고 호통치면서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모두 병원 밖으로 쫓아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한 지역 유지들은 그때부터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으며 캠프의 진행을 심각하게 방해했고, 그들에게 새치기를 당한 일반인들조차 그의 정의에 대해 그대지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다음 해부터 그 팀은 그 지역에서 더 이상 봉사를 위한 허가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인류학에는 이런 종류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효과적인 틀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국무부로부터 일본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아 쓴 고전적 저술인 국화와 칼에서 제시한 수치의 문화죄의식의 문화라는 구분입니다. 이 구분에 따르면 죄의식의 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의 내면에 위치한 도덕의 규준과 양심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반면, 수치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타인과의 관계가 어긋나거나 타인 앞에서 체면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네딕트는 미국의 문화는 죄의식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수치의 문화는 일본 고유의 특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약 성서를 연구하는 학자인 크리스터 스텐달은 죄의식의 문화와 이에 기초한 자기 성찰적 양심은 통념과 달리 서구 문화의 뿌리인 1세기의 성서 저자들과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에게도 생소했다고 말합니다. 오직 근대 이후의 서구 세계만 개인주의적인 무죄/유죄 문화를 가질 뿐, 고대 세계와 현대의 비서구 세계는 모두 공동체적인 명예/수치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봉사자는 가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전형적인 수치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이런 일들을 겪으며 특히 의료와 같은 영역에서는 우리도 급격히 서구적인 죄의식의 문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가 수치/명예 문화권에 속한 지역에서 봉사할 때 현지 의사가 체면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환자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방치해야 할까요? 과연 공정이라는 화두에 익숙해져버린 우리가 현지의 지역 유지들이 수치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새치기나 특혜를 적당히 묵인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요?

 

제 잠정적인 결론은 특히 단기 봉사자들이 그들의 문화를 무리하게 우리의 기준에 맞추어 바꾸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봉사라는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리 우리의 정의감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문화와 어느 정도의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문화는 그 문화를 떠받치는 사회경제적 토대에 변화가 있을 때에야, 그것도 그 변화보다 훨씬 천천히 변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떄로는 그 사회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문화가 그들의 문화보다 항상 더 우월하거나 효과적이라고 확실히 장담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기 봉사자는 가능하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신들의 어설픈 정의감으로 봉사라는 더 큰 대의를 망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프란츠 보아스를 따라 문화 상대주의자가 될 필요까지 없겠지만 그가 제시한 대로 현지인들의 시각을 얻고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봉사자들이 명백히 부정의하거나 불공정해 보이는 현지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정의의 잣대를 우리에게 먼저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 모습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의사의 체면보다 환자의 안녕이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 현지인들에 대한 진료와 수술을 일관되게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뿐 아니라, 봉사가 끝나 돌아온 후에도 연락이나 재방문 등의 방법으로 환자의 상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책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 만약 그들에게 특혜 없는 정의를 보여주고 싶다면 먼저 봉사팀내에서 윗사람이 모든 특혜를 포기하고 기끼이 아랫사람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 즉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제자됨이란 권력을 휘두르고 부를 과시하며 지식을 자랑하는 형태가 아니라, 낮아지고 봉사하며 모범을 보이는 방식을 통해 드러납니다. 저는 이 방식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다른 문화와 언어와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전파하는 행위인 선교의 유일하게 가능한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루스 베네딕트, 국화의 칼, 박규태 옮김, 문예출판사, 2008

제리 무어, 인류학의 거장들, 김우영 옮김, 한길사, 2016

랜돌프 리처즈브랜든 오브라이언, 성경과 편견, 홍병룡 옮김, 성서유니온, 2016

브루스 말리나, 신약의 세계, 심상법 옮김, 솔로몬, 2011

폴 히버트, 선교와 문화인류학, 김동화 옮김, 죠이선교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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