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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모음/믿음을 묻는 딸에게 1

편견과 고정 관념을 버려라

by 서음인 2021. 1. 28.

많은 봉사자들은 대개 특별한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자신이 봉사하려는 나라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현지에서 겪은 일부 경험을 일반화시켜 우리와 다른 그들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강화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예는 특히 이슬람 국가들을 방문하는 봉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슬림들이 우리와 달리 광신적 종교에 메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무슬림 여성들은 모두 시커먼 부르카를 쓰고 가부장 문화를 당연시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무슬림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단 한 종류의 정형화된 무슬림이 아니라, 여러 문화와 다른 생각과 다양한 종교성을 지닌 수많은 무슬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슬림이라고 하면 아랍 지역에 거주하면서 꾸란의 언어인 아랍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사실 아랍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전체 무슬림 인구의 1/4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가 거주하는 여섯 개 국가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터키, 이란 중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거나 아랍어와 비슷하기라도 한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습니다. 제 봉사의 여정은 바로 제 관념 속에 깊이 뿌리박힌 '그들'에 대한 오해가 피와 살을 가진 진짜 '그들'을 만나면서 점차 깨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이슬람 국가를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새벽부터 하루 다섯 차례씩 때만 되면 찌렁찌렁 울리는 아잔(무슬림들에게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기도하러 나가는 현지 봉사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처음으로 목격한 저는 충격을 받았고, 그 모습이야말로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기독교인들이 배워야 할 진실한 믿음의 모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서운 종교성을 가진 무슬림들이 서구 세계와 우리나라를 이슬람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중이라는 몇몇 사람들의 경고가 타당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을 돕는 현지 교민들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신실해 보이던 봉사자들의 대부분이 평소 때는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음에도 그들이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들이 우리 앞에서 유난히 열심히 기도했을지 물으니, 아마 외국인, 그것도 기독교이라고 생각되는 외국인인 우리를 의식하고 자신들의 종교성을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일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현지의 종교 지도자들인 이맘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서구문물에 물들어 종교에 통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근심하더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국가의 공식명칭에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가는 서남 아시의 P국에 봉사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차로 이동하던 도중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1200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의 퇴근길은 러시아워로 매우 혼잡했습니다. 그런데 차들이 거의 서있다시피 한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서 웬 여성들이 차문을 두드리며 호객행위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띠었습니다.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분명히 여장을 했지만 꼭 남자처럼 보였습니다.

 

깜짝 놀라 같은 차에 동승했던 현지 교민에게 물으니 그 사람들이 여장남자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여성의 성 정체성을 가진 그들은 결혼식이나 출산파티 같은 곳에서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우는 일을 하면서 자신들끼리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슬람 국가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물으니, 현지인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전통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명예살인까지 벌어지는 나라에서 이런 일을 목격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에서 만났던 품위 있는 모로코 여성은 한국 교민인 원양어선 선장님과 결혼해 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그 지역 유력자의 딸이었습니다. 함께 봉사하러 갔던 아내가 그 여성에게 당신은 왜 이 지역 유력자의 아내이면서도 외국인인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신분과 인종을 뛰어넘는 멋진 로맨스를 기대했을 아내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한국 남성들이 한 명의 아내와만 결혼하기 때문에 그 선장님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뿐 아니라 요즘 젊은 여성들은 누구도 일부다처제에 동의하지 않으며 결코 누군가의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에서 통역 봉사자로 만난 젊은 여성은 그 나라의 최고 명문대 학생이었고 국비로 미국 연수까지 경험했던 매우 총명한 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SNS에 올리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여성의 권리와 그 나라의 억압적인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매우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많은 분들이 이 여성이 혹시 서구적 삶이나 기독교에 대해 동경하거나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놀랍게도 제가 만났던 어떤 현지인 남성들보다 훨씬 더 독실한 무슬림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자각과 독실한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어떠한 어색함도 없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아랍권 이슬람 국가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김동문 선교사는 이슬람 세계는 결코 하나의 범주로 묶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할 뿐 아니라 특별한 중심이나 구심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은 세계를 이슬람화하기 위한 거룩한 목적으로 똘똘 뭉친 종교 연합체가 아니라, 그들 상호간에도 다양한 이해관계로 뒤엉켜 있는 국가’ - 자국과 국민의 이익을 위한 조직 - 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종교적 수사들로 치장되어 있는 경우에도 그들이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정치권력과 경제적 이권이며,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모든 전쟁들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원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김동문 선교사의 말에 따르면 무슬림이 된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특정한 신념이나 신앙의 체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무슬림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 무슬림이라는 사회적 · 법적 신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는 이슬람 세계 안에 종교행위에 무관심한 명목상의 무슬림에서부터 정기적으로 사원에 출석하는 종교적인 무슬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아랍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보수적이고 반서구적인 기성세대 무슬림에서 상대적으로 서구화된 자유롭고 유연한 젊은 세대 무슬림까지, 다양한 무슬림들이 있을 뿐 하나의 범주로 고정할 수 있는 전형적인 무슬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 종교행위에 참여하는 종교적무슬림은 특히 젊은 층일수록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며, 한 통계에 의하면 무슬림 인구의 5~10%만이 정기적인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파키스탄의 아잔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만, 얼마 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아잔 소리를 규제한다는 소문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큰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타지키스탄의 포르노 싱게티의 코카콜라였습니다.  윌러스타인의 세계체제, 하비의 영토지리학 - 우리가 이슬람의 침입을 염려하는 것의 몇 배를 이슬람이 서구 자본주의의 침입에 대해 느끼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신약성서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이 곧 길이요 빛이요 진리라고 선언할 뿐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인 성령을 진리의 영으로 지칭합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사람을 모든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진리의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심각한 편견에 사로잡히고 가장 허황된 음모론을 맹신하며 가장 많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집단은 바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과 진리 자체인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일상에서나 봉사의 현장에서나 맹신과 편견에 기초해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할 권리를 믿음의 이름으로 당연시하는 가짜 신자말고, 눈에 덮인 편견의 비늘을 과감하게 제거하며 지구촌의 이웃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을 내밀 줄 아는 참된 제자의 존재가 절실합니다.

 

 

 

김동문, 중동선교의 시작과 끝을 묻다, 대장간, 2017

김동문,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선율, 2017

김동문, 기독교와 이슬람, 그 만남이 빛어낸 공존과 갈등, 세창출판사, 2011

패트릭 존스톤, 세계교회의 미래, 정옥배·한화룡 옮김, IVP,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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