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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모음/믿음을 묻는 딸에게 1

‘유교적 칼빈주의자’들의 세상 - 목사의 딸

by 서음인 2021. 1. 26.

2016년 한 권의 책이 기독교계에 꽤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개혁주의 신학자로 신구약 주석전집을 집필하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고 박윤선 목사의 딸인 박혜란 목사가 쓴 목사의 딸이라는 책이 일으킨 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의 추앙과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아버지에 대해 밝힌 내용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박윤선 목사는 저자의 어머니인 전처와 그 자녀들에게 지극히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종인 자신의 목회와 학문적 성취를 위해 가족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처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로는 그 소생들을 한때 고아원에 맡기려고 하는 등 방치하다시피 했으며, 자신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던 전처의 자녀들이 먼저 내민 화해의 손길조차 끝끝내 뿌리친 채 생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폭로하는 충격적인 진실은 도저히 하나님의 일을 위한 거룩한 희생이라는 말로 용납될 수준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가 전처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좋아해준 자녀가 자신이었기에 다른 형제들이 모두 아버지를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쉽게 그들에게 동의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1970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음악과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만난 스승들은 저자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훌륭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스승들이 학문이나 목회를 빌미로 가족을 등한히 하기는커녕 아내와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며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성경의 문자를 소중히 여기는 복음주의자들이면서도, 구체적인 본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완고한 문자주의 대신 융통성과 포용성을 발휘하는 모습도 저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저자가 겪어 온 인생의 수많은 질곡을 진심으로 아파하고 깊이 이해하며 구체적으로 돕는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자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의 인격과 신앙체계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고, 아버지에 대한 형제들의 원망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아버지인 박윤선 목사는 평생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만 알아온 나머지 마음 속 깊이 뿌리박힌 죄책감과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극도의 자기중심성이 혼재된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인성은 영 육의 잘못된 이중구조라는 신학적 뿌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아버지에게 영적인 일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일, 설교하는 일, 주석을 쓰는 일이었고,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고 가족을 돌보는 일은 육신의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유교의 남존여비 사상의 영향을 받아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했으며, 충효사상을 내면화해 신앙이란 죽을 힘을 다해 주군인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남존여비와 충효사상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에 복음의 메시지를 혼합시킨 박윤선 목사의 신앙을 "유교적 칼빈주의"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박윤선 목사와 "유교적 칼빈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권위주의적, 율법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냅니다.

 

당연히 이 책이 나오자마자 많은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목회자들로부터 나온 거친 비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박윤선 목사님은 그럴 분도 아니고 그랬을 리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저자를 사소한 섭섭함을 침소봉대하여 아버지의 명예를 흠집 내는 배은망덕한 자식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책과 저자에 관련된 여러 논란들을 살펴보던 저는 한국교회 목사들 중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유교적 충정으로 '스승'을 지키려는 '제자'들은 도처에 가득하지만, 상처받은 한 '영혼'을 이해하고 보듬고 위로하려는 성서가 가르치는 '목자'를 찾아보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동에서 보인 대다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태도야말로 저자가 말한 유교적 칼빈주의’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눈에는 그분들이 성서의 가르침대로 양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가 아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고 벌벌 떠는 '유교적 칼빈주의'儒生들로 보였습니다.

 

사실 이 책의 백미는 명성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고 그 아버지를 닮은 무섭고 정죄하는 하나님만 알았기에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저자가, 미국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음악과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어떻게 성서가 증거하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 참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그린 이 책의 후반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저자는 평생 음지에서 회한을 품은 채 아버지를 원망하고 이 원망을 정죄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악순환에 빠져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단순히 한 개인의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고백이나 폭로를 넘어, 평생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 몸부림쳤던 딸을 따뜻하게 품어 주신 진짜 '아버지'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기록으로 읽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어낼 수 있는지의 여부야말로 ‘참된 목자칼빈주의 유생’을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서야말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자 규범이라는 성경주의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복음주의자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의 보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성경주의, 수천 년 전 고대 근동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기록된 성서의 내용 중 유교적 칼빈주의라는 자신들의 독특한 기독교 하부 문화를 정당화해주는 구절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작동하는 선택적 문자주의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고대 근동의 문화(와 그와 코드가 맞는 자신들의 유교적 칼빈주의’)라는 목욕물을 버리다가 복음이라는 아기까지 잃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아기를 수호하기 위해 수백 년 수천 년씩 묵은 더러운 목욕물까지 복음의 본질이라고 강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해석학적 우상숭배)

 

기독교 저술가 레이첼 헬드 에반스는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에서 성서는 모두 구체적인 문화적 상황에 기록된 것이기에 특정한 편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과학적 객관성을 지닌 문서로 접근하는 근대적 읽기의 방식은, 사랑이라는 편견으로 본문에 접근하는 창조적인 해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한국교회에 유생말고 ‘목들이 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성서의 문자에 사로잡혀 자신과 타인을 정죄하고 차별하는 데 몰두하는 대신, 사랑이라는 위대한 편견으로 성서를 바라보고 이웃을 대하는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혜란, 목사의 딸, 아가페, 2016

레이첼 헬드 에반스,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 양혜진 옮김, 비아토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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