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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모음/믿음을 묻는 딸에게 1

왜 비전케어인가

by 서음인 2021. 1. 26.

2008년 비전케어라는 단체가 주관해 외래진료와 백내장 수술을 시행하는 해외 안과의료봉사인 비전아이캠프에 호기심 반 공명심 반으로 따라나선 일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한 번의 선택은 지금까지 13년간 11개 나라에서 열린 열아홉 차례의 캠프에 참가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중간에 단순 참가자에서 이사로 신분이 바뀌면서 단체의 운영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할 기회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어 한 마디도 입 밖에 내기를 두려워하고 간단한 입출국 수속조차 힘겨워하던 소심한 시골안과 원장은 봉사의 현장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베테랑이 되었습니다.

 

2002년 안과의사인 김동해 이사장이 창설한 비전케어는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안과와 관련된 장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국제실명구호단체입니다. 비전케어를 대표하는 사역인 비전아이캠프는 의사와 간호사, 안경사 및 일반인들로 구성된 10-15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나라를 방문한 후 현지의 보건당국 및 의료진과 협력해 외래진료와 안경나눔, 백내장 수술을 진행하는 단기 안과 의료봉사입니다. 보통 1주일 정도 진행되는 한 차례의 아이캠프에서 500-100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하고 70-120건 정도의 백내장 수술을 시행하게 되며, 현재까지 330여 차례의 아이캠프를 통해 18만여 명의 환자가 진료를 받았고 27,000건 정도의 개안수술을 통해 빛을 잃은 세계의 이웃들에게 빛을 선사해 왔습니다. 1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비전케어라는 단체와 비전아이캠프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효율성입니다. 외국에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한 세대 전만 해도 해외의료봉사란 위인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거나 우리와 멀리 떨어진 선진국 이야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해외의료봉사 붐이 일어나면서 대형교회의 경우에는 각 과별로 구색을 갖추어 매년 대규모 봉사팀을 해외로 파견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아무리 거창한 팀을 꾸린 경우도 실제 가서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각 과별로 준비해온 약을 나눠 주거나 간단한 처지를 시행하는 것 정도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시간과 비용을 생각해 본다면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비전아이캠프는 진료 뿐 아니라 백내장 수술을 시행함으로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실명 내지는 저시력 환자에게 새로운 빛을 선사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형태의 의료봉사입니다. 그리고 수술 후 회복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한 다른 수술들과 달리 대부분 다음날 늦어도 며칠 내로 말 그대로 심봉사가 눈뜨는극적인 시력개선의 효과가 나타나며, 안약을 잘 점안하고 일정 기간 수술부위를 잘 보호하는 것 외에 특별한 수술 후 처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수술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모두 모이는 아이캠프의 마지막 날은 언제나 시력을 되찾은 환자들과 봉사자들의 기쁨과 감사로 가득한 축제의 현장이 됩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눈에 보이는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효율적인 봉사라는 사실이야말로 제가 이 캠프를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협력입니다. 비전아이캠프는 환자진료와 개안수술을 위주로 진행되기에 의료진, 그중에서 특히 의사의 역할이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연히 의사가 이 캠프의 주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참가하는 캠프가 늘어갈수록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수고하시는 봉사자들이 눈에 띠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수술실과 검안실에서 수고하는 간호사와 안경사들, 때로는 섭씨 40도가 넘는 뜨거운 야외에서 때로는 수술을 기다리며 불안에 떨고 있는 환자들 옆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수고하는 일반 자원봉사자들, 자신들의 생업을 잠시 미루고 기꺼이 봉사의 땀방울을 흘려 주시는 수많은 현지 교민들, 본부 사무실 책상 앞에서 한 번의 캠프를 성사시키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넘어가며 분투중인 행정간사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실제 아이캠프를 이끌어가는 분들은 이분들이었고, 저와 같은 의료진들은 그분들이 다 그려 놓은 멋진 용 그림에 단지 눈을 찍는역할만을 맡아온 것이라는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명확해졌습니다. 이렇게 의료진뿐 아니라 많은 봉사자들의 수고가 합쳐질 때에만 많은 분들에게 광명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가 이 캠프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기적입니다. 한 번의 캠프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봉사자들끼리의 협력 뿐 아니라 현지의 세관, 보건당국, 의료진과 스텝,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기관과 사람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중에 단 하나의 관계만 어긋나도 캠프가 제대로 진행되기 힘듭니다. 실제로 진행 과정에서 여러 난관을 넘지 못해 출발 전에 결국 취소되는 캠프도 가끔 발생하며, 심지어는 현지에 도착해서 현지 보건당국과 의료진이 말을 바꾸는 바람에 예정되었던 캠프가 취소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지금까지 비전케어의 이름으로 300여 차례가 넘게 진행된 거의 모든 캠프에서 이 협력이 이루어졌고, 모든 관련자들이 합심해서 어둠에 처한 사람들에게 빛을 선사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국적과 인종과 종교와 언어와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를 뿐 아니라 과거에는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선한 목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모습은 사랑의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이었습니다. 캠프 때마다 목도하게 되는 이 사랑의 기적이 주는 놀라운 감동이 저를 매번 비전아이캠프로 이끄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이렇게 비전케어가 수많은 분들의 도움과 협력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단체라는 사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 국내와 해외의 여러 분들이나 단체들과 기꺼이 협력하며 선을 이루는 기적을 일구어 왔다는 사실이 제가 지금까지 비전케어를 좋아하며 지속적으로 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서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Unsung Heros)이 만들어 온 협력과 사랑의 기적. 이것이 제가 알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원하는 비전케어의 모습입니다.  

 

유엔 새천년개발목표 특별자문관으로 세계 빈곤의 퇴치를 위해 앞장서 왔던 제프리 삭스는 빈곤의 종말에서 빈곤을 극복하고 테러와 전쟁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대랑구제무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갈등과 전쟁의 소문으로 가득하고 '대량살상무기'기 세상의 평화를 지킨다는 '구원하는 폭력'의 신화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빛과 희망을 잃은 채 암흑의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세계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안약과 안경, 그리고 백내장 수술이라는 대량구제무기를 통해 평화의 사랑이라는 기적의 새 빛을 선사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것이 제 작은 소망입니다.

 

 

제프리 삭스, 빈곤의 종말, 김현구 옮김, 21세기 북스, 2006

김동해, 눈을 떠요, 아프리카, 홍성사, 2017

이명근, 『NGO와 함께하는 선교』, 쿰란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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