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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모음/믿음을 묻는 딸에게 1

왜 해외봉사인가

by 서음인 2021. 1. 21.

해외의료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분에 넘치는 칭찬의 말로 격려해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끔 왜 꼭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해외에까지 가야 하는가라고 질문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의외로 보수적이고 완고하신 분들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의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 중에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구조적인 빈곤의 문제가 산적해 있고 우리의 이웃을 도울 역량조차 충분히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왜 굳이 세계의 오지에서 일어나는 가난과 분쟁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일견 꽤 설득력 있고 타당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현재 고등학생의 경우 위화감을 조성하고 입시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해외봉사 참여를 수시모집의 봉사경력에 포함시켜주지 않은지가 꽤 됐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더 이상 우리끼리만 잘 살면 되는 아시아의 변방국가가 아닙니다. 한국은 2019년 국민 총생산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며, 수출과 수입을 합친 무역규모로는 세계 7위에 해당하는 무역대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재 세계 4개국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고 있으며, 과거 원조를 받던 나라 중에서는 유일하게 다른 나라에 도움을 제공하는 23개국 중 하나로 발돋움했습니다. 2018년을 기준으로 한국이 국제개발협력을 위해 사용한 비용은 약 3조원, 국민총소득의 0.16%에 달합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우리는 소말리아 해적단에 우리 어선이 피랍되고 해외 무장세력에게 우리 국민이 살해되며 머나 먼 아덴만에서 우리 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긴박한 군사작전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마이니치 신문의 요하네스버그 특파원을 역임한 시라토 게이치는 오늘날 아프리카에 만연해 있는 빈곤과 폭력이 과거의 서구 식민주의나 현재 부국들의 자원개발 열풍 등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아프리카의 이러한 혼란이 범죄나 테러, 해적 행위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되어 부메랑처럼 세계 각지로 날아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지구 저편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가난과 폭력과 전쟁은 750만 명의 동포가 세계 곳곳에 퍼져 살고 있으며 세계 6위의 세계여행객 숫자를 가진 우리에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계의 고통과 가난에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러나 설령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 우리의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한 실천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인간성과 문명을 잃고 괴물로 퇴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으로 나치의 압제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정치절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1급 전범인 아이히만에 대한 세기의 재판을 취재하고 나서, 일견 너무도 평범하고 성실한 생활인처럼 보였던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의 본질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부재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의 결여였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야기할 고통에 대해 사유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대신, ‘무개념 · 무사고 · 비공감의 편안함에 안주한 채 단지 자신의 임무에만 몰두하는 성실한인간들이야말로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모판이었음을 간파한 것입니다.

 

나치 시대 노동자들의 일상을 연구했던 역사가 데틀레트 포이케르트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작가 프리모 레비는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던 유대인 대량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평온한 일상이 유지될 수만 있다면 처참한 홀로코스트를 얼마든지 외면하거나 방조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던 대다수 독일 국민들은 결과적으로 단순히 나치의 피해자나 동반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공범자였다고 주장합니다. 동료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에 공감하기를 거부하거나 공감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는, 결국 폭력에 둔감한 야만으로 퇴행하거나 전쟁을 숭배하는 전체주의로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치 독일의 역사는 잘 보여줍니다. 우리들이 우리가 아닌 타자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나와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당연한 정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매년 18백만 명이라는 소중한 생명이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이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가 내가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너도 남에게 행하라는 황금율의 정신에 따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중대한 의무라는 사실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그는 한 행위로 발생하는 내 이익의 양보다 그것이 야기하는 타자의 고통의 양이 더 크다면 그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명제를 바탕으로, 우리가 기부를 통해 막을 수 있는 악만큼 중요한 뭔가를 희생하게 되기 전까지는 기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느끼는 세 번째 이유는 기독교인이자 세계 시민으로서 인류의 보편적인 윤리적 유산인 황금률의 정신과  이에 대한 피터 싱어의 구체적 적용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세계는 왜 싸우는가의 서문에서 오래전 비엔나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국제정세에 대한 여러 나라 청년들의 열띤 대화에 끼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모여 맥주만 마시던 한국 대학생들을 만났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오직 수능과 입시에만 관심을 빼앗긴 채 우물 안 개구리로 자라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시야를 열어 타인의 고통에 함께 공감하고 세상에 만연한 폭력과 전쟁의 해결책을 고민하는 세계 시민으로 커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러한 김 PD의 소망이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그 열매를 마음껏 누리면서도 왜 우리 문제도 산적해 있는데 다른 나라까지 도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한스 로슬링이 팩트풀니스에서 지적한 것처럼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으며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빠른 속도로 좋아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안락한 방 안에서 팩트풀니스를 읽으며 세상이 그렇게 좋아졌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동안에, 누군가가 때로 너무 느려서 전혀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주 작은 진전을 이루기 위해 당신 대신 기꺼이 지갑을 열고 열악한 현장에서 땀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지갑이 세상을 향해 기꺼이 열리기 전까지 세상은 절대 저절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김영미, 세계는 왜 싸우는가, 김영사, 2019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의 말,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6

피터 싱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함규진 옮김, 산책자, 2009

시라토 게이치, 오늘의 아프리카, 이정은 옮김, 현암사, 2011 

한스 로슬링 외, 팩트풀니스』,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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