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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모음/믿음을 묻는 딸에게 1

종교 간 대화와 종교 내 대화

by 서음인 2021. 1. 20.

한국 기독교인들의 배타성과 공격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훼불사건이나 사찰 방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2018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1993년부터 2017년까지 24년간 기독교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훼불사건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도 총 407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국 기독교의 주류는 성서가 일점일획의 틀림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문자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믿을 정도로 근본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은 오직 보수 정통 기독교에만 존재하며 타종교나 세상을 통해서는 신의 목소리나 구원의 방편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배타주의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이 전체 인구의 20%에 가까운 한국에서 종교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해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인 손봉호 교수는 한국이 모범적인 종교 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 불교가 포용적이고 점잖아서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기독교의 배타주의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었던 사례는 서울 기독대학교에 재직중인 손원영 교수 사건입니다. 손교수는 2016년 한 기독교 광신도에 의해 벌어진 김천 개운사 대웅전 훼불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온라인을 통해 이를 복구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이에 그가 재직하던 서울 기독대학교는 2017년 2월 “그리스도의 교회 신앙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일삼는 등 교원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어 손교수를 파면했습니다. 손원영 교수는 3년여에 걸친 지난한 파면무효 확인소송을 거쳐 2019년 최종적으로 승소했고, 2020년에는 이사회의 복직 승인까지 얻어냈습니다. 그러나 학교측은 아직까지도 “학교의 정체성에 어긋난다”라든지 “불교로 가라”는 망언을 일삼으며 그의 복직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과 공격성이 사라질까요. 어떤 사람들은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인 우리의 상황에서는 종교‘간’의 관계나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종교 간의 관계를 다루는 기독교 신학의 한 분과인 종교신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종교신학 안에서도 종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종교‘간’ 관계에 못지않게 종교‘내’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남’과 대화하기 전에 먼저 ‘내 안의 남’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치는 정재현 교수가 『종교신학 강의』에서 펼치는 주장입니다.

 

종교신학의 뼈대인 ‘종교 간 관계’의 기본 방식은 크게 보자면 배타주의 · 포괄주의 · 다원주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배타주의(exclusivism)는 ‘다른’ 것은 ‘틀린’ 것이고, 옳고 그름의 기준은 ‘나와 같은가’이며, ‘옳은’ 종교인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것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포괄주의(inclusivism)는 다른 종교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보다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며, 배제가 아닌 포섭과 선교를 통해 그리스도교와 같은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합니다. 다원주의(pluralism)는 그리스도교는 구원에 이르는 여러 길 중 하나일 뿐, 결코 유일한 구원의 방편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재현 교수는 이러한 세 태도는 모두 한 이름의 종교나 종교인은 다른 종교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단 하나의 자기동일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자기동일성이란 기존의 종교신학이 전제하듯 불변하는 고정적 실체가 아니라 타자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구성적 상대성’이며, 이러한 ‘구성적 상대성’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다종교적 체험’이야말로 우리의 종교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방식이라고 강조합니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종교인의 신앙을 분석해 보면 자신의 종교 뿐 아니라 아니라 여러 이웃 종교에서 온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혼합주의를 극도로 경계하는 대다수 한국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경악할 만한 이야기지요.

 

정재현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기독교인의 문화적 심성을 살펴보면 무교(巫敎)가 50% , 유교가 30%를 차지하며, 기독교적 요소는 20%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를 30%, 40%, 50%로 어떻게 확대해 나갈지 고민해야 하는데 ‘기독교인’ 이라는 명칭으로 이런 성분 분석을 가려버리고 있다”며 “20% 기독교인이 스스로를 100% 기독교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김용규 박사는 이에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는 『신-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에서 기독교가 헬레니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헤브라이즘 문명의 유산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기독교의 "신" 개념이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신 개념’과 그리스인들의 '존재론적 신 개념’을 종합해가며 발전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 자체가 그 태생부터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혼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나 철학적 사조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기독교란 사실상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이념형"에 불과하며, 우리의 종교는 ‘구성적 상대성’에 따른 ‘다종교적 체험’ 또는 ‘문화적 혼합’의 결과인 ‘혼종’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특정 시대 특정 지역에서 유일한 진리나 정통으로 여겨진 교리나 믿음의 체계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성과 적실성을 지닐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자신들의 도그마와 종교문화야말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순수하고 보편적인 진리 그 자체라는 한국 기독교 주류의 믿음이야말로, ‘정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장 위험한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자인 레이문도 파니카는 우리가 종교간 대화에 임할 때 개종(엄밀하게 말하면 자신의 자신의 종교에 다른 종교가 섞이는 가종(加宗))의 가능성에 진지하게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종 불가라는 틀에 묶인 채 기계적으로 자신이 소속된 종교에 투신하는 것은 타자를 통해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존의 믿음을 믿는 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곳은 인간의 모든 종교적 윤리적 업적의 꼭대기가 아니고 밑바닥이기에 그리스도인들 역시 다른 종교를 믿는 신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아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믿음에 심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하는 동시에 성령께서 대화를 이용해서 상대방이 예수님을 믿도록 회심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또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버마스 - 진리의 상호성(논쟁으로 읽는 사회학)

정재현 교수는 기독교인들이 타종교인과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 안에 있는 ‘다름’을 만나고 ‘그름’을 보아야 하며, 다름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름을 고치면서 서로를 올곧게 벼려내는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야말로 다종교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참된 믿음의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은 타종교인이나 소수자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지은 후 그들을 정죄하고 혐오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순수성과 열정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먼저 내 안에 거하며 내 일부가 된 ‘타자’를 발견하고, 우리의 신앙이 구성적 상대성에 따른 다종교적 체험의 결과인 혼종임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변화의 위험까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야말로 다종교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원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요?

 

 

 

 

 

 

정재현, 『종교신학 강의』, 비아, 2017

레이문도 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김승철 옮김, 서광사, 1992

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 『연꽃 십자가』, 모시는 사람들, 2020

김용규, 『신』, IVP, 2018

레슬리 뉴비긴, 『오픈 시크릿』, 홍병룡 옮김, 복있는사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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