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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베스트셀러 30년 (한기호 지음, 교보문고 펴냄)

by 서음인 2016. 5. 30.

비록 고수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은 없다고 자부하는 내가 책읽기에 관해 유지하고 있는 원칙 중 하나는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최소 1년 이상 묵힌 시점에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구입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30년 가까이 책값으로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해가며 배운 지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서점에서 신간코너나 관심분야의 서가를 기웃거릴 뿐 베스트셀러쪽은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란 책의 내재적 가치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사회학적 현상이며, 당대의 꿈과 욕망의 지향점을 가리키는 나침반과도 같다. 따라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책으로 읽는 사상가들 시리즈를 포함해 책읽기에 관한 몇 권의 좋은 책으로 이미 나와 만났다) 의 소장이자 출판 평론가인 저자가 1981년부터 30년간 교보문교에서 집계한 베스트셀러 목록 중 매년 10권씩을 골라 총 300권의 베스트셀러에 대해 그 책의 사진과 간단한 리뷰를 덧붙인 이 책은 1981년부터 3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꿈과 욕망, 그리고 위안과 희망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출판과 책읽기의 전문가인 저자의 혜안과 통찰이 책의 가치를 빛나게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에 의하면 군사독제 체제하의 암울했던 80년대에 역사와 사회과학, 시와 대하소설 분야가 출판의 주조를 이루었다면, 일정 수준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90년대에는 이념 지향의 책들이 퇴조하고 여행서나 어학서, 자기 계발서 혹은 페미니즘 소설과 같이 ‘개인’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등장했다. 또한 저자가 절대고독의 여정이 발견되는 시대로 표현한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와 위안을 제공하는 실용서나 실용창작동화와 같은 분야와 역사추리소설이나 인터넷 소설과 같은 분야가 약진했다. 결국 베스트셀러의 역사는 군사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같은 우리 삶의 모습과 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다루는 시대가 나의 10대 중반부터와 겹치기 시작하니 결과적으로 이 책은 철든 후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한 셈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300권이 좀 못되는 베스트셀러 중 고등학교 시절의 필독서(?) 였던 ‘어둠의 자식들’이나 ‘꼬방동네 사람들’ 로부터 김훈의 ‘남한산성’,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독서의 여정에서 내가 만난 책들을 세어보니 총 39권이다. 대학시절 이후 1년에 적으면 50여권 많을 때는 100여권이 넘는 책들을 읽어 왔으니 그다지 많은 숫자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다’ 는 내 원칙을 잘 지켜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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