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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청춘의 독서 (유시민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by 서음인 2016. 5. 28.

1. 자타가 공인하는 탁월한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젊은 시절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고전을 골라 다시 읽고 대화하며 새로이 탐색한 결과를 이 책 <청춘의 독서> 에 담았다. 민주화운동가, 칼럼니스트, 방송인, 정당인, 국회의원, 장관과 같은 수많은 직업을 거친 끝에 다시 ‘읽고 쓰는 사람’ 으로 돌아온 저자는 이 책이 “문명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던 위대한 책들과 그 책을 남긴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이자 “그 책에 기대어 나름의 행로를 걸었던 내 자신과 그 과정에서 내가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책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게 해주는 위대한 고전들을 만나고 싶은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위대한 지성이 인류에게 남겨준 유산을 함께 나누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 이 책을 읽다 보면 최근의 유시민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지식을 맛깔나게 가공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지식소매상’ 을 넘어 그 지식을 체화하여 얻어진 지혜를 설파하는 ‘현자’ 혹은 ‘멘토’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의 ‘지혜’ 는 일신의 평안이나 세속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허접한 자기계발類 와는 거리가 멀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마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는 자세, 그리고 도그마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파우스트적 태도가 그가 설파하는 ‘지혜’의 얼굴에  가까울 것이다. 누군가가 유시민에 대해 “그렇게 옳은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든 사정을 꿰뚫고 권력과 물질, 명예까지 모두 소유한 나머지 더 이상 어떠한 진리의 가르침도 필요치 않게 된 ‘싸가지로 충만한’ 이 사회의 주류들보다, 현실 속에서의 성패와 공과를 떠나 이상과 진리를 추구했기에 필연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었고 불온하고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패배자 유시민이 더 사람다운 삶을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본문 읽기 

 

 “..... <죄와 벌>의 주요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건강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반듯한 가치관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는 라스꼴리니코프의 여동생 두냐는 두드러진다 ..... 라스꼴리니코프의 ‘초인론’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 체제로 현실화되었다.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 이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완전한 권리를 행사한 전체주의 체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에게 동등한 인권과 참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의사 결정권을 제한적으로 위임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있다.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수없이 많은 소냐와 두냐들이 인류를 구원한 것이다 .....”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中)

 

“...... 유사 이래 인간이 만든 모든 권력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제약했다. 지금 두려움 없이 <공산당 선언>을 읽는 나는 행복하다. 거기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류를 담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사회적 연대 의식과 사명감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더러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만으로는 살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할지라도 영원히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이기적 욕망 추구를 부정하고 자유로운 개성의 발현을 억압하는 사회는 오래 지속되기 어려우며, 지속된다 할지라도 좋은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 그러나 마르크스가 모든 점에서 틀렸던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자본주의 비판 이론으로서의 가치와 생명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록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할지라도 언제나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라고 말한다. 어찌 고맙고 귀하지 아니한가 .....” (청춘을 뒤흔드는 혁명의 매력 :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 선언> 中)

 

“...... 유방과 한신은 야수적 탐욕이 판치는 정치 사회적 혼란과 전쟁의 한복판에 몸을 던졌다. 때로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고 때로 스스로 야수가 되어 싸운 끝에, 탐욕이 지배하는 혼란의 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냈다.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민중의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창과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게 했다. 이것은 공자와 맹자 같은 고귀한 성인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일이었다 ......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한신과 유방이 빛을 쫒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한 본능에 이끌려 투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인의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비록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한 덕성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때로 맹목적 시기심에 휘둘렸다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과 능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었지 않은가 .....” (정치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 사마천, <사기> 中)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처음 읽은 후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세상의 변화를 다 견디고 내 마음 속에 남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결국 남은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에서 얻는 감명이 25년 세월을 견디고 내 마음에 남아 있음을, 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 언어가 있다는 것, 문자를 쓴다는 것,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있다는 것, 솔제니친과 같은 작가가 있다는 것,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다 .......” (고통도 힘이 될 수 있을까 :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中)

 

“...... 다윈의 진화론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렇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을 노출시켰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기적 동물이다.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동물임을 과소평가하면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또한 이타주의와 자기희생이라는 고귀한 도덕적 재능을 진화시켜온 존재임을 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벌거벗은 탐욕과 아귀다툼이 판치는 살벌한 야만으로 몰고 갈 위험에 빠진다 ....... 현실의 이해타산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고결한 이상주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이 너무 비천할 것 같다. 누구나 다윈만큼만 인간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이타주의에 공감한다면, 세상은 훨씬 살 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 ”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中)

 

“ .... 독일의 실증사학자인 랑케를 추종하면 인생이 무척 편안해진다. 역사에 진보는 없으며 모든 시대는 동동한 가치를 가진다. 굳이 새 시대를 열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사는 시대가 다른 모든 시대와 역사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그 시대를 그대로 인정하고 살면 그만이다. 그러나 E. H. 카를 읽고 난 후 나는 랑케와 작별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는 암운이 드리웠다 ..... 사회적 진보가 생물학적 진화와 달리 획득된 것의 전승에 의해 일어난다는 카의 견해는 대한민국 사회도 경험의 축적과 전승을 통해 영국과 독일이 이룬 것 같은 민주주의와 문화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유신체제라는 사악한 제도의 전제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인간의 결의가 있어야 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결론을 진지하게 읽고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한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이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이 될 필요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 ” (사회는 진보하는가 : 카, <역사란 무엇인가> 中)

 

목차

 

머리말 - 오래된 지도를 꺼내들다

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2. 권력의 유혹에 무엇으로 맞서야 하는가 :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3. 청춘을 뒤흔드는 혁명의 매력 :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 선언>

4. 불평등은 원래 자연의 법칙인가 : 맬서스, <인구론>

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시킨, <대위의 딸>

6.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 맹자, <맹자>

7.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 최인훈, <광장>

8. 정치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 사마천, <사기>

9. 고통도 힘이 될 수 있을까 :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0.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 베블런 <유한계급론>

12. 왜 가난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 조지, <진보와 빈곤>

13.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진짜 나’인가 :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4. 사회는 진보하는가 : 카, <역사란 무엇인가>

후기 - 위대한 유산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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