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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리버 지음, 돌베게 펴냄)

by 서음인 2016. 6. 1.

같은 책을 여러 권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책을 왜 샀는지 그 근거와 이유를 댈 수 있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가? 사놓고 전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추억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땅 속에 묻거나, 심지어 그것을 먹음으로서 책과 하나되는  사람은 또 어떠한가? 집에 불이 났다고 알리러 온 하인에게 "그런 것은 아내에게 말하거라. 내가 가정사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라고 말한 후 계속 책을 읽었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책은 스스로 책 중독자라고 고백하는 저자가  (1) 책 중독의 일반적인 증상과 단계, (2) 수집광이나 식서가, 책 도취증과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괴상한 책중독들 (3)  책 구입이나 그들이 상상하는 책방의 모습, 책읽는 방법, 정리와 보관 등 책 중독자들만의 온갖 엽기적인 양태들에 대해 적어놓은 책이다. 저자는 이 심각한 질병의 치유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심한 곤경에 빠져 다시는 책을 사고 싶지 않을 때까지 책을 사는 것" 이라는 황당한 결론으로 이  웃기는 책을 마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옮긴이도 "뒷방에 숨어들어 책이나 읽으며 살아버릴 테다" 라는 치유불능의 책중독자적인 생각을 품었으나 다행히 재활의 길을 걸어 출판 및 기획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원.....

 

이 책을 읽은 후 드는 첫 번째 생각은  나는 책중독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다. 가끔 같은 책을 두권씩 사기는 하지만 적어도 여러권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책장을 하나 더 짜면 지금 있는 책들을 충분히 다 넣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항상 빗나가기는 하지만 수납공간이 부족해서 집이나 사무실을 또 마련할 정도는 아니니까. 책을 살때마다 뭔가 뿌듯하고 심지어는 숭고한 느낌을 가지지만, 적어도 그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며 매번 책사는 것을 부인하거나 숨기지는 않으니까. 그렇긴 한데 100% 아니라고 안도하기에는 뭔가 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저자의 책중독 test 에 의하면 나는 '책중독이라는 깊고 비참한 나락' 의 협곡  벽에 비명소리를 울리며 공중에 떠 있는 거라나 뭐라나....

 

사실 알고보면 책중독의 역사는 책의 역사만큼이나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닐까? 르네상스 시대에  당대의 온갖 어리석음을 풍자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세바스티안 브란트의 유명한 책 바보들의 배에 등장하는 첫번째 바보가 바로 읽지도 못하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책들을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사람, 곧 장서광이다! 그러나 그는 책을 송충이나 지렁이 대하듯 하는 사람보다는 얼마나 훌륭한 바보인가!!  책이라는 '물리적 대상물' 을 보고, 만지고, 냄새맡고, 읽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삶이란.... 문득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 이라고 말한  소설가 보르헤스 의 말이 떠오른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세바스티안 브란티트의 <바보배>에 나오는 장서광

"도서관의 모습을 한"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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