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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김영민의 공부론 (김영민 지음, 샘터 刊)

by 서음인 2016. 6. 1.

철학자로서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동무와 연인(한겨레 출판) 등의 저서로 나와는 구면인 저자는 이 책에서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압축적인 문체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 즉 功夫論을 펼치고 있다. 수험생들이나 고시생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책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저자는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신의  시선 속에 갇힌 남들이 모두 체계 속에 닮은 채 엉겨 있지만 나만은 체계 밖에서 남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자기 생각의 표상으로만 의미를 지니며”, 타자는 언제나 자신의 기존관념을 정당화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의 특징인 세상에 대한 냉소와 지적 허영은 “타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존재에 깊이 관여하는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며, 인문학의 공부란 결국 자신의 생각이 결코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스스로 내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기실 “복수적 타자가 나에게 설치한 프로그램” (강명관, 공부의 즐거움) 일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正常의 평화와 나태에 의해 폐색된 사유의 통로를 낯설게 하기의 실험을 통해 뚫어내고”,  “허물어지기나 무너지기를 통해서 기존의 배움의 바탕과 구조를 반성하고, 타성 속에 굳어진 편견을 굽어볼 수 있는 메타적 시선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쳐 타자와의 대면 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자기 생각의 순환 속에서 굳어지는 공부의 지옥”을 벗어나는 참된 공부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타자와의 대면이란 반드시 '나'에 대한 타자의 폭력적 개입을 동반하는 것이며, 따라서 참된 공부란 “학같이 긴 다리로 물가를 노닐면서 물고기만 쪼아 먹는” 영리한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타자의) 물속에 몸을 너무 깊이 잠근 나머지 혹간 몸에 지느러미가 돋고 아기미가 생기기도 하는” 현명한 인간의 몫이며, “익사의 공포를 뚫고 범람하는 타자의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지며 피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일본의 유명한 무사인 미야모토 무사시의 “준비자세가 있으면서 자세가 없다” 는 말을 인용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의 참된 태도는 몸의 기질과 성향, 그리고 버릇과 운용방식을 바꾸어 생활과 공부, 삶과 앎,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문 결과, “생활이 공부가 되고, 의식과 무의식이 공명하며, 몸이 곧 펜이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좋은 몸을 가진”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쓰고, 언제 어디서나 읽고, 언제 어디서나 말(대면)하고, 언제 어디서나 행동(버릇) 하고, 언제 어디서나(욕망과 자본의 체제를 벗어난) 희망을 조형할 것이며,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주변을 바꾸는 위험한 사람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실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저자가 의미하는"공부"를 삶 가운데 가장 잘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사도바울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이 하나님이라는 타자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폭력적으로" 개입하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가졌던 생각이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스스로 내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기실 “복수적 타자가 나에게 설치한 프로그램” 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며,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 감에 따라  생활과 신앙, 삷과 앏, 심지어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움직이면 움직이는대로 주변을 바꾸는 위험한 사람,  즉 그리스도를 닯은(Immitatio Christi) 사람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아가미가 생길 정도로' 하나님께 몸을 담그기보다는,  물 바깥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은혜만 쪼아 먹는 학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이렇게 외쳐야 하지 않을까? ”공부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거나“(고미숙,  공부의 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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