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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수사학 (키케로 지음, 도서출판 길 펴냄), 연설가에 대하여 (키케로 지음, 민지사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1.『수사학』과『연설가에 대하여』는 만인의 키케로(Cicero omnium) 라 불리며 사랑받았던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요, 당대 최고의 변론가이자 라틴 문학의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는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106 〜 B.C.43) 가 대중을 설득하는 변론의 기술, 즉 수사학에 관해 쓴 책이다. 오늘날 “수사학”이라는 말은 주로 대중이 거짓과 선동에 현혹되기 쉬운 어리석은 존재라고 생각한 나머지 수사학을 경멸했던 플라톤의 영향으로 ‘궤변’ 혹은 ‘거짓’과 동의어로 여겨지고 있으나, 자유시민들의 공동체로서 설득과 토론을 통해 정치적 혹은 법정적 영역에서의 중요한 판단이 내려졌던 고대 그리스 로마사회에서는 자유시민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 혹은 교양의 하나였다. 『수사학』이 주로 수사학의 이론적 ‧ 기술적 측면을 서술하고 있다면, 『연설가에 대하여』는 말하는 사람 즉 변론가(혹은 연설가 orator)에 관심을 집중한다.


2. 수사학이 진리 없이 말재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궤변론에 불과하다는 철학자들의 비난에 대해 키케로는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증의 기술이 아닌 변론가 자신이라고 응수한다. 키케로에 의하면 변론가는 수사학자와 철학자의 장점을 두루 갖춘 사람 즉 이상적 연설가 (orator perfectus) 가 되어야 한다.

(1) 키케로에 의하면 변론가는 수사학의 기술이나 특정 분야에 대한 식견 뿐 아니라 삶과 학문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광범위하고 총체적인 지식을 소유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주제로 연설을 하든지 관련 분야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변론의 탁월함은 궁극적으로는 말재주가 아닌 내용의 진실함과 풍부함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삶과 학문에 통달하지 못한 사람이 훌륭한 변론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키케로가 변론가에게 요구했던 지식 혹은 교양은 수사학(문학), 철학(자연학, 논리학, 윤리학), 역사, 법학에 대한 지식에서부터 산수, 음악, 천문학, 기마술, 사냥술, 그리고 부모와 친구에 대한 예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이었으며, 결국 그가 강조했던 이상적 연설가란 단순히 수사학적 기술에 통달한 ‘말만 잘하는 사람' 이 아니라 학예(human arts) 혹은 인문학적 소양(humanitas) 을 두루 갖춘 교양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그리스의 인문학적 토양 위에 뿌리를 내리고 로마 시대에 이르러 키케로 수사학의 이상적 연설가(orator perfectus)像을 통해 구체화된 인문학적 교양 혹은 교양인의 모델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사회의 교양교육을 위한 모범으로 계속 이어져 왔다.

(2) 수사학이란 주어진 상황과 주제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연설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상적 변론가(혹은 연설가) 는 각각의 연설 내용을 상황과 청중에 따라 알맞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변론가는 ① 먼저 이야기할 것을 발견하고(발견 inventio), ② 발견한 것을 규칙대로 나열하고 중요성에 따라서 정확하게 배치하며(배치 dispositio), ③ 그것을 잘 다듬어 수식하고(표현 elocutio), ④ 기억에 따라서 굳게 한 후(기억 memoria), ⑤ 마지막으로 위엄과 우아함을 갖추어 이야기해야 한다(발음 및 연기 actio). 이러한 키케로 수사학의 가르침과 전통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역사학자 이광주의 말을 빌자면 “유럽에서 인문학적 교양이란 무엇보다 말과 대화, 편지와 글을 잘 쓰는 교양이었으며, 그 기본 텍스트는 키케로의 저작이었다.” 키케로야말로 유럽적 교양의 창시자요 그 최고 정초자라 할 수 있다.

(3) 키케로는 인간은 공동체와 국가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공동체의 일원이 될 때에만 참으로 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이 공동체의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것처럼 중요한 의무(officium) 는 없으며, 말과 언어의 힘을 통한 설득 즉 변론이야말로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고 복리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요 무기이기에, 수사학은 결코 폄하되거나 무시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공공의 삶이나 정치에 참가하는 것이 인문학적 교양(humanitas) 의 중요한 의무 또는 권리라고 주장함으로서, 키케로는 골방에 박혀 학문을 위한 학문에만 몰두하는 철학자들을 비판하면서 공공선을 위한 실천적 학문인 수사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수사학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일찍부터 정치의 일부로 여겨지고 언론자유와 민주정치에 이바지했으며, 로마 시대에 이르러서는 말의 무대였던 민회, 원로원, 법정을 통해 공화정치의 진전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총칼을 앞세운 무력의 힘이나 절대진리를 주장하는 도그마의 권위가 아닌 말과 설득이라는 수사학의 방법을 통해서 공공선을 실현하고자 했던 키케로의 이상이야말로 현대 민주주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3. 당신은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철인 왕이 다스리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칼빈이 설교자로 봉사하던 기독교 도시 제네바에? 자신과 생각이 다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닥치는 대로 ‘목을 쳐라’ 를 외치는, 인문학적 교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패션의 여왕 혹은 공주가 다스리는 ‘이상한 나라’에? 아니면 시끄러운 말과 설득이 난무하며 어리석은 우중이 가끔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키케로의 시민 공동체에? 나는 일단 하나의 진리, 더 정확하게는 진리에 대한 단 하나의 ‘국정화된' 해석만이 모든 사람에게 강요되는 앞의 세 나라에는 단 1초도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소 혼란스럽고 가끔 잘못된 길로 갈지라도 “요란하고 유쾌한 차이로 가득 차 있고, 그 차이가 삶의 당연한 조건으로 즐겁게 받아들여지는 세계" 그리고 “물리적 힘과 폭력 혹은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도그마가 아닌 말과 토론과 상식과 교양이 지배하는 세계" 가 주님 오셔서 당신의 나라를 완성시켜 유일하고 완전한 진리를 친히 보여주시기 전까지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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