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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주석강해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성민 지음, 성서유니온 펴냄)

by 서음인 2021. 12. 11.

이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사사 시대가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의 시대”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삐걱거리며 출발했던 사사 시대는 곧 악화의 하향나선을 그리면서 전락을 거듭하다 급기야는 17-21장에 그려진 극한의 혼란과 폭력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사사들을 포함한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욕망을 추구하되 그 천박한 민낯을 드러내는 대신 신앙의 이름으로 능숙하게 포장하며,  이러한 표리부동이야말로 사사 시대의 영적 추락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저자는 사사기 내러티브에 대한 면밀한 문학적 분석을 통해, 신앙적 레토릭의 그늘 아래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욕망을 쫒아 살아갔던 인간들이 만들어낸 혼란하고 폭력적인 시대를 생생하게 재현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이 제시하는 중요한 해석적 통찰은 사사기를 ‘영웅전’이 아니라 ‘거울’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사기는 본받아야 할 원리나 모범을 담고 있는 영웅들의 이야기라기보다, 신앙적 언사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에 바쁜 한국교회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며, 사사기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부분은 사사들의 ‘말’과 ‘업적’이 아니라 그들의 ‘삶’와 ‘동기’다. 우리는 누군가가 실제로는 사적인 욕망을 추구하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용해 큰 일을 행하셨다고 해서 그의 삶 모두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 특별히 특별히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다 이제는 삼손처럼 무너지는 것만이 하나님의 이름을 세울 길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질문

 

사사기를 포함한 신명기 역사서 전체에서는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것 같다. 유명한 사사기 19-21장뿐 아니라 신명기 역사서 자체가 “text of terror”로 느껴질 정도다. 과연 하나님은 “전쟁을 가르치시는” 분이신가? 폭력과 전쟁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오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형성되거나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인가? 과연 모든 생명체를 모조리 살륙하는 ‘헤렘’은 하나님이 명하셨다는 이유 때문에 적어도 그 시기에는 무조건 정당했던 것으로 인정되어야 하는가? 이 학살의 본문들을 문자적으로 ‘숭배’하는 대신, ‘더 나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한때 우리와 같이 피와 살을 지니고 살아갔지만 마치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헤렘’의 이름으로 학살당했던 가나안 족속들의 삶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들은 인간이 아닌 뿔달린 괴물이었는가? 과연 그리스도는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삭제'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지옥불을  뜨겁게 덥힐 불쏘시개의 용도로 창조되었는가? 기독교 신학 가운데 그들을 향한 공감과 연민이 차지할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가? 다원주의 사회라는 오늘날 우리 삶의 정황 속에서 사사기를 '배제'와 '폭력'이라는 키워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는 것은 가능한가?

 

# 사족을 하나 달자면 나는 내가 속한 신앙 전통에서 거룩과 주권, 선택과 유기, 은혜와 심판, 제한 속죄, 구속사적 과정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여 제 질문에 대해 제시하는 표준적인 답변을 모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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