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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엔트로피 (제러미 리프킨 지음, 세종연구원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1. 전에 “육식의 종말” 로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저자와 이 책으로 다시 만났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읽고 있었던 책도 그의 “유러피언 드림” 이었다고 한다. 경력을 살펴보자면 그는 미국의, 아니 현대문명의 주류에 속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서 한국의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입에서 나왔다면 당장 “좌파”로 매도되었을 만한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나오는 것이 가끔은 놀라울 때가 있다.

 

2. 현대인은 400년전 형성된 Newton 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그 요체는 우주에는 정밀한 수학적 질서가 있으며,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이 질서를 지구에 도입하여 무질서한 자연을 인간의 물질적 이익이 증대되도록 재배열한다면 인류의 물질적 풍요가 증대될 것이고 이는 결국 더 좋은 세계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한 마디로 “진보” 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으며, 여기에는 (1) 과학기술은 자연에 존재했던 최초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2) 미래는 물리적 제약 없이 무한히 뻗어나갈 것이며 인간의 진보에 한계란 없다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3.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의 가정들은 잘못된 것이며, 엔트로피의 법칙에 근거한 세계관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이란 물질과 에너지는 창조될 수 없으며,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즉 과학과 기술은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할 없으며, 과학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란 기실 주변환경의 더 큰 무질서를 만드는 댓가로 얻어진 일시적인 “질서의 섬”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기계론적 세계관이 만들어 낸 더 질서 있고 편리한 세계는 그보다 더 큰 무질서(엔트로피) 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며, 그 결과 인류에게 주어진 사용가능한 자원과 에너지는 점점 감소하여 언젠가는 소진될 수밖에 없다.

 

4.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즉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원을 발견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인류는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뉴턴의 세계관이야말로 수량화 계측화가 가능한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원을 효과적으로 착취하는 데 안성맞춤인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하면 폐쇄계인 지구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으며, 결국 언젠가는 고갈되게 된다. 이미 인구의 증가로 인해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와 자원의 기반에는 상상을 초월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으며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를 값싸게 얻을 수 있는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어떤 기술도 이 엔트로피 법칙의 해결책이 될 수는 수 없다.


5.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명이 화석연료와 같이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원이 아닌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에 기반하도록 변혁되어야 하며, 이것은 무한한 진보를 가정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유한한 자원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를 둔 엔트로피 세계관으로 문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지금부터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대량을 줄이면서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에너지가 좀더 균등하게 분배되며, 소비재를 제외한 사유재산을 제한하고, 도시보다는 농촌 공업보다는 농업 첨단기술보다는 소규모 기술을 선호하는 등 재생가능한 태양 에너지에 기반을 둔 저엔트로피 시대의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한 저에너지, 저엔트로피의 삶이야말로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일관되게 가르친 바이기도 하고, 청지기 정신에 입각한 기독교의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결론내리고 있다.

 

6. 이 박식하고 통찰력에 가득한 책을 덮으면서 드는 의문은 단 한 가지이다. 과연 고에너지 문명의 달디 단 열매를 맛본 사람들이 저엔트로피 사회로 회귀할 수 있을까? 기계론적 세계관이 만들어낸 과학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 온 우리들이 당장 내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인류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편리함과 기득권을 지금 여기서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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