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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케인즈 & 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 게임 (박종현 지음, 김영사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1. 최근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화두는 무엇보다 “시장” 과 “경쟁” 인 것 같다. 시장이야말로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시장만능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고, 모든 영역에서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오늘날, 극단적이고 괴상한 주장을 하는 괴짜 늙은이쯤으로 치부되며 철저히 잊혀졌다가, 대처와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하여 신자유주의의 ‘성자’요 ‘제사장’으로 추앙받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프리드리리 폰 하이에크 (1899~1992) 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2. 하이에크는 사회주의란 사람들의 이성으로 사회의 집합적 결과를 측정하여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여러 버전 중 하나이며, 그것은 사회와 경제의 우발적이고 복잡한 성격을 간과한 채, 인간의 유한한 이성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잘못된 사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시장에 개입하려는 어떤 종류의 계획도 비효율적이고 퇴행적일 뿐만 아니라 자유를 파괴하고 결국 사람들을 ‘노예의 길’로 이끄는 치명적 오만이며, 시장에 대한 통제는 아무리 부분적인 것이라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서 결국에는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와 같이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기회의 평등 또는 출발점의 평등이라는 게임의 공정성이 잘 지켜질 수만 있다면, 시장이야말로 경쟁이라는 ‘추상적 원리의 강제’에 의거해 인간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유일한 제도이며, 시장이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를 증진시킴에 따라 정치적 자유도 동시에 증대되어,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자유와 정의를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최선의 사회형태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가는 경쟁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 외에 시장에 어떠한 개입도 해서는 안되며, 국가가 정당한 경쟁이 초래한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바로잡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시장에 개입하는 순간 그 사회는 전체주의로 가는 ‘노예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3. 우리는 유한한 지식과 이성을 가진 인간이 시장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치명적 오만’에 대한 하이에크의 우려와, 설령 아무리 선한 것이라고 해도 국가가 어떤 목표를 절대화하여 그것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면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경고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유, 그것도 경제적 자유라는 하나의 목표가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서, 자유지상주의라는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빠져 그 스스로 반대하는 ‘노예의 길’을 선택한 꼴이 되고 말았다. 유시민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국가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했지만 자유라는 이념과 시장이라는 비인격적 힘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한 셈이다”. 또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제적 효율의 측면에서는 가장 우월한 체계이지만 개인들의 경제적 욕망에 편승하고 이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는 극히 불쾌한 사회이며, 파시즘이나 나찌즘에서 드러났듯이 시장이 발달하고 경제적 자유가 확대된다고 해서 정치적 자유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실질적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에 불과한 경제적 자유가 목적으로 변질된다면 수익성의 논리가 사회의 모든 생활을 지배함으로서 사람들의 실질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는 하이에크의 맞수 존 메이너드 케인즈 (1883~1946) 의 통찰에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국제적인 투기 자본가라는 조지 소로스 마저도 “시장 메커니즘을 없애고 집단적 통제가 모든 경제활동을 지배한 공산주의가 과거의 근본주의였다면, 집단적 의사결정을 없애고 사회적 경제적 가치 대신 시장의 가치만을 강요하는 시장 근본주의가 인류의 안녕을 위협하고 있다” 고 우려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의 현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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