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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지식을 만드는 지식 펴냄), 유한계급론 (원용진 지음, 살림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유한계급(leisure class)' 이나 ’과시적 소비‘와 같은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19세기 말 미국 자본주의 사회와 지배계급의 생활양식을 관찰하고 분석한 그의 책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Leisure Class) 을 통해 “살도 피도 없는 이론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고 유한계급의 ‘야만적 문화’를 신성화하려는 ‘존경받는 경제학’의 허점을 통박”했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 대입해 보아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이 위대한 괴짜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베블런은 문명시기의 모든 지배계층에게 ‘유한계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베블런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평화 애호적 미개시대에서 폭력적 약탈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고 폭력과 술책으로 잉여를 약탈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 자체를 명예롭고 위엄 있는 것으로 여기는 지배계층의 심정적 태도가 생겨났으며, 여기에서 유한계급의 제도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계보학적 기원을 가진 현대 유한계급은 물질적인 개선과 생산증대를 목적으로 제작본능을 발휘하여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산업계층과는 달리, 직접적인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는 것을 비천한 것으로 경멸하며, 생산적 노동에서 면제되어 다른 사람의 생산적 노동이 창출한 것을 폭력과 술책으로 약탈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을 명예로운 일로 간주하는 사고 습관을 지니고 있다고 베블런은 지적한다.

 

또한 베블런에 의하면 과거의 특정 시기에 사회를 지배한 사고습관과 관습의 산물인 현재의 제도는 바뀐 환경에 대해 새롭게 적응하려는 과정을 끊임 없이 지속해야 하지만, 유한계급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사고습관과 제도를 지속하려는 보수적 태도를 지니게 되며 결과적으로 사회를 보수화시키고 퇴행시키게 된다고 지적한다. 베블런의 말을 빌리자면 “자본주의는 유한계급의 영리와 약탈본능이 산업의 제작본능을 억제 또는 오염시키는 체제”이며, 유한계급의 제도는 “계보학적으로 야만문화의 유전인자가 격세유전하면서 이윤 획득과 약탈, 폭력과 속임수, 전통과 권위의존, 터부와 미신 등의 의례형식에 의존하여 사회를 끊임없이 보수화시키고 퇴행시키려는 사고습관” 이다.

 

베블런은 역사적으로 평화가 정착되어 타인에 대한 직접적 강탈행위가 쇠퇴하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명예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유재산과 부를 효과적으로 과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즉 유한계급이 그가 가진 재산에 대한 과시적 소비 혹은 낭비를 통해 부자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을 통해서, 그리고 생산을 위한 노동에 불참한다는 증거로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비생산적인 활동에 잉여시간을 소비하는 과시적 여가를 통해 부러움과 명성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하류계층은 과시적 소비에 적대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유한계급을 경쟁적으로 모방하려는 성향을 가지며, 그 결과 유한계급은 중하류계급의 소득과 가용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그들을 보수화시키게 된다고 베블런은 지적한다.

 

현대 자본주의와 그 핵심인 유한계급의 계보학적 뿌리가 야만적인 약탈문화라는 베블런의 지적은 오늘날 점점 극단화되어가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약탈적’ 양상을 볼 때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베블런은 이러한 ‘야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별로 할 말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과연 베블런이 꿈꾸었던 ‘합리’와 ‘과학’의 시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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