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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프리드리히 엥겔스, 계명대학교 출판부)

by 서음인 2016. 5. 27.

1.『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칼뱅주의 개혁파의 명망 있는 사업가 가문 출신으로 여우사냥을 즐기는 최상류층 부르주아였으면서도 마르크스의 사상적 동지로 평생 공산주의 운동에 헌신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95)의 대표작으로, ‘사적소유’와 ‘계급투쟁’이 세계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는 “사적 유물론”을 명확하게 제시한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일 뿐 아니라, 성차별과 여성억압의 사회경제적 토대에 대한 체계적 설명을 시도함으로서 인류학과 여성학 분야에서도 고전적 저술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미국의 인류학자 루이스 모건(Lewis Henry Morgan 1818-1881)의 유명한 책『고대사회』의 주요 논지를 인용하여 가족제도는 불변하거나 정태적인 실체가 아니라 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며 발전해 왔으며, 현존하는 가부장제와 일부일처제 역시 ‘사적소유’라는 경제적 조건에 따라 태어난 제도라고 주장한다.

 

2. 엥겔스는 이 책에서 모건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여 인류사회는 생산력의 진보에 발맞춰 (1) 보조도구의 도움을 받아 수렵과 채취로 생활하는 야만시대(savagery)에서 (2) 목축과 경작을 도입하고 인간의 활동에 의해 자연물 공급의 증대 방법을 습득하는 미개시대(barbarism)를 거쳐 (3) 공업 및 기술이 발달하고 소유와 권력이 발생하는 문명시대(civilization)로 진보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형태의 변화에 상응하여 가족의 형태 역시 진화를 거듭해 왔다고 강조한다. 즉 (1) 공동소유를 기초로 하는 평등한 원시공산사회이자 모계상속이 이루어지는 모권제 사회였던 야만시대에는 한 종족 내에서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어떠한 제한도 없이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가지는 군혼제가 지배적 가족 형태였으나 (2) 남성이 목축이나 농경을 통해 잉여소득을 생산하고 그 소유권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여성이 남편의 실질적인 가내 노비이자 출산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야만시대에는 가족형태 역시 부계상속이 가능한 배타적인 결혼형태인 대우혼으로 변화되었으며 (3) 사유재산 제도가 확립되고 계급적 성적 억압이 강화되는 문명시대로 접어들면 가족 내에서의 남편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남편의 재산을 상속해야 할 확실한 자식을 확인해야 할 필요에 따라 일부일처제가 지배적인 가족 형태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일처제하에서 배우자에 대한 정조를 요구받는 것은 여성뿐이며, 남성은 실제로 간통과 매음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난혼상태에 있다고 엥겔스는 강조한다.

 

3. 이렇듯 엥겔스는 오늘날 지배적인 가족유형인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생물학적 조건이나 근대적인 개인적 성애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사유재산제’라는 경제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 가족형태로, 한 남성이 획득한 재화를 그 남성의 자식에게 상속하려는 욕망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잉여소득과 사유재산이 발생하면서 원시공산주의의 모권제 사회에서 일종의 사회적 활동이었던 가사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상실하고 사적인 활동으로 격하된 것이 현재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억압의 이유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만약 (1) 사유재산제를 철폐하여 상속할 수 있는 항구적인 재화나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로 만들고 (2) 사회적 생산과 무관한 가사노동에만 종사하던 여성을 사회적 노동에 광범위하게 복귀시키며 (3) 성별분업에 기초한 여성들의 사적인 가사노동을 사회적 산업으로 만듦으로서 양성관계에서 남성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사회적 조건을 철폐할 수 있다면, 그 때에야 진정한 여성해방이 가능해질 것이며 개인적 성애만이 결혼의 조건이 되는 완전한 형태의 일부일처제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엥겔스는 강조한다.

 

4. 이와 같이 ‘소유관계의 철폐’와 ‘여성의 노동참여’, 그리고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여성해방의 전제조건이라는 엥겔스의 주장은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여성정책의 근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해방의 물질적 토대를 강조하는 서구 여성주의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론의 토대가 되었던 혼인과 가족의 진화에 대한 모건의 설명이 현대 인류학의 실증적 연구에 의해 폐기되고 현실사회주의의 거대한 실험이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실패로 끝남에 따라 이 책의 주장은 이제 적실성과 영향력을 상실한  낡은 이론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개인적 성애로 결합된 두 사람의 부부와 그 자녀들로 구성된 일부일처제의 가부장제 핵가족이라는 현재의 지배적인 가족개념이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자연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사적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체제의 영향으로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가족형태라는 엥겔스의 통찰은 여전히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5. 만약 오늘날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족 형태를 성서시대의 사람들이나, 기독교세계(Christendom)에 속했던 중세 혹은 근대의 서구인들이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매우 독특하고 기이한 제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혜택을 누리며 개인적 성애에 근거한 핵가족제도의 신봉자로 살아가는 나는 이렇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절대 다수 그리스도인들이 당연시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 가족형태는 과연 ‘성경적’인 것일까, ‘자본주의적’인 것일까? 만약 오늘날의 가족제도가 가장 ‘성경적’인 형태의 가족이라면 서양의 중세나 근대보다 우리 시대가 더 ‘성경적’인 시대라는 말인가? 혹시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성찰과 공부 없이 가족제도를 포함하여 자신들에게 익숙한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체제나 제도들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당연하고 영구불변한 실체로 간주하면서, ‘종교’의 이름으로 그들을 합리화하며 세례를 베풀어 왔고 지금도 베풀고 있는 것은 아닐가?

 

 

P.S.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류학의 고전 중 하나인 모건의『고대사회』의 주장을 저술의 근간으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레슬리 화이트나 마빈 해리스, 엘리너 리콕과 같이 신진화론 혹은 유물론적 관점에 서 있는 후대의 문화인류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 이 책을 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좋은 문화인류학 개론서 세 권을 함께 함께 읽었다. 『인류학의 거장들』이 커다란 족적을 남긴 학자들과 그 업적을 중심으로 인류학을 소개하는 책이라면, 『문화인류학의 20가지 이론』은 20가지의 중요한 인류학 이론과 주제들을 공시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개서이며,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은 역사적 순서에 따라 인류학의 중요한 이론과 인물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는 개설서라 할 수 있다. 저자들에 의하면 인류학의 이론은 대체적으로 진화론이나 전파론 같은 통시적 관점에서 기능주의나 구조주의와 같은 공시적 관점을 거쳐 상징인류학이나 해석인류학으로 대표되는 상호작용론적 접근으로, 그리고 사회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문화를 강조하는 관점으로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본 이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한길사에서 나온『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에 포함된 홍찬숙의 글 ‘여성 억압의 물적 토대를 찾다’ 가 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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