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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68운동 (이성재 지음, 책세상 펴냄)

by 서음인 2016. 5. 28.

1. 이 책은 1960년대 후반 유럽, 아메리카, 동유럽, 일본 등지에서 권위주의 타파, 기성 질서에 대한 거부 그리고 상상력의 확대라는 구호를 내걸고 주로 학생들에 의해 주도된 역사적 사건인 68 운동의 역사와 전개과정 그리고 그 결과와 영향을 간략히 다룬 소개서다. 


2. 68 운동의 주역들은 무엇보다도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으며,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과 소련 공산주의를 동시에 비판했을 뿐 아니라 성 해방과 토론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했다. 또한 그들의 운동방식은 중앙의 통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존의 저항운동과는 달리 자율적이고 탈중심적이며 무정부주의적인 특성을 띠었다. 이러한 68 운동은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파괴의 열정은 창조적 희열이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경찰을 없애야 한다’ 등의 다양한 구호로 잘 표현되었으며, 이후 서구사회에서 사람들이 행동하고 관계 맺는 모든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개인의 상상력이나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3. 저자에 의하면 이 운동은 (1) 대학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교육방식에 대한 불만 (2) 물질적 풍요에 만족하던 기성세대와 정신적 지적 자유를 요구하던 신세대간의 갈등 (3) 좌우파를 막론하고 권위적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정치계에 대한 환멸과 같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유발되엇으며 ,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학과 사회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반대와 흑인 민권운동으로, 체코 유고 폴란드에서는 스탈린의 권위주의 체제와 좌파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일본에서는 등록금투쟁과 반전운동으로 나타났다. 


4. 그리고 이들 모두는 "정치는 거리에 있다. 바리케이트는 거리를 막지만 길을 열어준다" 는 구호아래 학교가 아닌 거리에서 기성 정치와 체제전반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며 (1) 그간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구호와 주장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기존 전통이 파괴되고 참여한 사람들이 해방감을 만끽했던 지속적인 축제 (2) 좌파와 우파의 권위적이고 교조적인 이념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중앙 집권적인 조직도 거부한 무정부주의 (3) 대학과 남성 (가부장주의) 강대국 자본가 구좌파를 막론하고 모든 종류의 권위를 거부하고 비판하는 반권위주의 (4)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는 모든 규칙과 전통을 거부하며 성 해방과 같은 자유로운 욕망의 분출만이 진보를 위한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욕망과 상상력의 해방 (5) 부와 소비의 증대라는 이상이 역사 진보와 인간 해방이라는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소비사회에 대한 반대와 같은 특성들을 공유했다.

 

5. 이러한 68운동의 결과는 서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서구사회의 모든 영역에 심원한 변화를 유발했다. 교육의 영역에서는 학생들의 참여와 자치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되었고,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고 공장 내에서의 권위적 위계적 질서가 사라졌으며, 권위가 아닌 자율과 자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적 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가부장제의 유산이 사라지면서 여성들이 양육권과 상속권 그리고 낙태권과 같은 새로운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삶의 즐거움과 다양성 그리고 개성이 찬양되면서 재즈나 락음악과 같은 반문화 혹은 대항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6. 이러한 68 운동을 (1) 국가전복을 위한 좌파의 음모로 보는 보수 우파의 시각이나 (2) 독점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으로 이해한 정통 좌파의 시각은 공히 이 운동의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는 데 실패했으며 (3) 이 운동을 억압적인 사회, 영혼없는 문명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정신적 반란이라고 보는 모리스 클라벨이나 자크 마리탱 (4) 반권위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인 대항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문화적 차원의 사회 운동인 신문화운동이라고 주장한 알렌 투렌 (5) 미국의 헤게모니 상실과 소련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탈위성국가화라는 조건이 맞물려 일어난 세계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세계체제론에 근거한 임마누엘 윌러스타인의  이론도 이 운동의 특성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7.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집회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다양한 저항의 목소리가 분출되었고, 기성 정당이나 이데올로기의 조직적 틀을 거부했으며, 거리토론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확인했고, 시위와 축제가 결합되었다는 점 등에서 68운동과 유사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좌파의 선동에 의하지 않은) 시민의 자발적 저항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만한 상상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우둔한  기득권세력과 엄숙하고 진지한 직업적 혁명가가 어리석은 군중을 계도해야 한다는 구세대적 생각에 젖은 교조적인 운동세력들은 이 희한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군중들 앞에서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서구의 68 운동이 그랬듯이 2008년의 촛불집회도 결국 소기의 정치적 성과를 거두는 데는 실패한 채 사그러들고 말았지만, 자율성과 상상력 그리고 탈권위적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촛불의 정신만은 아직도 권위주의와 이데올로기의 강고한 틀에 갇힌 우리사회의 곳곳에 깊이 뿌리내려 사회변혁을 위한 긍정적 에너지로 치환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S 과거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른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를 대표하는 바보 포레스트 검프의 ‘성공’ 과 68 세대에 속하는 똑똑하고 진보적인 검프의 첫사랑 제니의 비극적인 ‘죽음’ 은 이 영화의 정치적 지향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성공한 검프가 다름 아닌 ‘바보’라는 것, 심지어는 그가 ‘바보’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이 영화가 '주입하고' ‘강요하려는’ 교훈이 아닐까? 아니면 '바보였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이 메시지가  (심지어는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사실은 이 영화가 우리 시대를 향하여 감추고 있었던 날카로운 비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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