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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돌베게 펴냄)

by 서음인 2016. 5. 27.

1.젊은 시절 접했던 항소이유서를 시작으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과 같은 좋은 글과 책을 통해 나와 만나 왔던 탁월한 “지식소매상” 유시민은 누구도 국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없으며 훌륭한 국가 없이는 시민들의 훌륭한 삶도 있을 수 없기에, 우리는 국가란 무엇이며 어떤 국가가 훌륭한 국가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면서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과거 국가에 대해 고민했던 수많은 스승들의 생각을 검토하고 때로는 비판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간다.


2. 저자에 의하면 국가가 무엇인지, 그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해명하는 철학과 이론은 크게 보자면 국가주의적 국가론,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목적론적 국가론 등으로 나뉠 수 있다.


1)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으로 대표되는 국가주의적 국가론에 따르면 국가란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침략의 위험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합법적 주체이자 세속의 신이며, 이러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치를 희생할 수 있고 어떤 수단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전체주의를 그 본질로 지닌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국가론은 폭력이나 무질서에 대한 대중의 본능적 두려움이 정서적 기반이기에 언제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며, 현재 한국의 주류인 이념형 보수가 신봉하는 국가론이기도 하다.


2) 로크나 존 스튜어트 밀, 루소의 사상을 그 바탕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국가론에 의하면 국가의 역할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적 자유와 인권을 지닌 개인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기보다는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만약 법치와 민주의 원칙에서 일탈하는 경우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며 이 경우 국민은 복종의 의무가 없다. 이 국가관은 오늘날 법치주의와 주권재민 사상을 기초로 하는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 구현되어 있으며, 그 보수화된 형태는 아담 스미스나 하이에크를 따라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강조하며 국가의 시장에 어떠한 대한 개입도 거부하는 시장형 보수(자유지상주의)의 국가관으로 구현되었다.


3) 마르크스에 의하면 국가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형성된 법률적 정치적 상부구조이자,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해 배타적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폭력기구일 뿐이며, 역사적 필연적 법칙에 의한 사회혁명에 의해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면 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근본적인 사회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정치란 아무 의미 없는 권력투쟁에 불과하며, 필연적으로 오고야 말 공산주의 혁명의 정당성을 대중에게 선전 선동하는 전술적 행위일 때만 의의를 가진다.


4) 플라톤이나 맹자처럼 국가의 목적(텔로스)를 이루기 위해 누가 다스려야 하는지의 문제에 집중했던 목적론적 국가론의 입장과는 달리, 저자는 자유주의자인 포퍼를 따라 누가 다스리느냐의 문제보다는 무능한 지배자가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제도를 조직하느냐의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하거나 무능한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것이며, 이 제도를 잘 지키는 것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느냐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3. 자유주의 철학자 칼 포퍼는 그가 유토피아적 공학이라고 명명한, 목적론적 국가관에 입각한 유토피아주의(와 그에 따른 사회혁명)는 비타협적 급진주의와 전체주의로 귀결되어 결국 혁명 이전보다 더 악한 사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그가 점진적 공학이라고 부른 사회개량의 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포퍼에 의하면 점진적 공학이란 최대의 선을 이룩하기 위해서가 아닌 최대의 악과 긴급한 악을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이며, 기회의 균등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인민의 권리를 통해 제한 없는 경제적 자유를 법적,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민주적 간섭주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저자는  포퍼를 따라 이와 같은 지속적인 사회개량이야말로 혁명의 불길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4. 저자는 라인홀트 니버의 견해를 따라 개인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심이지만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이며, 국가의 정의란 각자에게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유권적, 사회권적 기본권을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고, 정당한 경쟁(선거)을 통해 공직을 배분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스미스나 하이에크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의 시장은 욕망을 충족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자유로운 시장은 반드시 사회정의를 위협한다고 강조한다.


5. 저자에 의하면 진보란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며, 진보정치란 “국가로 하여금 (진보 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의와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국가의 이상은 자유주의적 국가론과 목적론적 국가론이 결합한 것으로 현실 속에서는 복지국가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으며, 그 목적론적 특성으로 인해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북유럽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의 원칙이 확립된 곳에서는 실제로 그럴 염려가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한 진보적 자유주의자는 자유와 정의 어떤 한 가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거나 무시해서는 안되며,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로 무장하고, 민주주의를 통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사회적 개량을 시도해 나가야 한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6. 저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 국민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는 국가”야말로 그가 살기를 원하는 국가라고 말한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그리고 나 역시 상당 부분 공감하는 “좋은” 국가의 가장 근사한 모델을 현실 속에서 찾는다면 아마도 북유럽의 복지국가들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저자는 좋은 국가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며,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 시민, 공공선을 위해 행동하고 연대할 줄 아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과연 우리는 훌륭한 국가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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