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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철학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도서출판 b), 발터 벤야민 (몸베 브로더젠, 인물과사상사), 그리고 팝 아트,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키치

by 서음인 2017. 7. 1.

아우라의 몰락   1940년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나치의 포위망을 피해 스페인 국경을 넘다 발각되자 자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사후에 출간된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짦은 논문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작품이 기술적으로 복제 가능하게 된 시대에 힘을 잃어가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다”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말하는 예술작품의 ‘아우라(Aura)’란 “예술작품이 지금-여기, 즉 그것이 존재해 있는 특정 시간과 장소에 유일무이하게 현존해 있다”는 물질적 특성(원본성-진품성-일회성)과 그것이 유발하는 심리적 효과에서 기인하는, 가까이 있어도 멀게 느껴지는 ‘거리감’ 혹은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복제시대를 맞아 예술작품의 정교한 대량복제가 가능해지고 사진이나 영화와 같이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불가능한 새로운 예술의 형식이 등장하면서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예술작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이 훨씬 용이해졌고, 이는 제의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예술작품이 즐거운 감상이나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제의가치에서 전시가치로의 전환) 이렇게 접근 가능성이 보장되고 전시가치를 가진 예술작품의 출현이야말로 기술복제시대의 특징이며, 벤야민은 이를 예술작품의 “아우라의 몰락”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아우라의 몰락으로부터 “예술의 정치화”라는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재아우라화 I  그러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이 아우라라는 제의적 속성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철저히 “정치화”되기를 바랐던 벤야민의 예언은 오늘날 그다지 성공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에 실린 심혜련의 글에 따르면 오늘날 아우라가 사라져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예술작품들이 다른 작가들의 창작의 모티프가 되는 일이 빈번하며, 이렇게 창작된 작품들이 다시 원본으로서의 아우라를 획득하는 소위 ‘재아우라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페르난도 보테로 (Fernando Botero)나 장 미셸 바스키야 (Jean-Michel Basquiat)의 "모나리자"처럼 '아우라를 지닌' 고전적인 미술작품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들 뿐 아니라,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대중스타나 유명 상품의 이미지를 대량으로 ‘재생산’ 해낸 앤디 워홀(Andy Warhol)이나 잘 알려진 광고나 만화의 장면을 독창적 화법으로 변주해 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과 같이 '원래는 아우라가 없었던'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들을 작품에 차용하는 팝 아트(pop art) 작가들의 작품들도 포함됩니다. 

재아우라화 II  그뿐 아니라 후기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의 예술은 자신의 ‘공장(factory)’에서 기술복제를 통해 하나의 원본이 아닌 여러 개의 원본을 대량으로 생산해 “전시가치 위에 상품가치를 추가한” 앤디 워홀(Andy Warhol)이나, ‘키치’라는 이름을 가진 천박하고 달콤하며 “오직 상품이 되는 예술 혹은 유사 예술에만 헌신한 제프 쿤스(Jeff Koons)의 모습에서 잘 나타나듯, 원본성이나 독창성이 아닌 부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후광으로 자신을 ‘재아우라화’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것에 자신의 아우라를 씌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압도적인 맘몬의 힘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우라의 몰락”을 예언한 벤야민은 거짓 선지자가 되고 만 것일까요? 벤야민이 이 모습을 본다면 과연 어떻게 평가하게 될 지 궁금해집니다.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여러 책들 .....

네권의 예쁜 미술책

장 미셸 바스키야의 <모나리자>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익사하는 여자>

앤디 워홀의 <마릴린 몬로>

제프 쿤스의 <Made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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