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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종교인류신화

순수와 위험 (메리 더글라스 지음, 문화과학사 펴냄),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지음, 한길사 펴냄)

by 서음인 2017. 12. 4.

드디어 영국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인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 1921~2007)의 대표작인 『순수와 위험』과, 미국 인류학계의 거장인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1929~ )가 지은 『문화의 수수께끼』를 다 읽었습니다. 전자는 구입한 지 약 15년 만에, 후자는 무려 30년 만에 완독한 셈이네요. 둘 다 구약성경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음식금기와 관련하여 잘 알려져 있는 책들입니다. 그러나 이 책들은 꼭 레위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상징인류학’과 ‘문화유물론’, 더 나아가서는 ‘해석’‘과학’이라는 문화인류학의 중요한 두 접근방식을 잘 보여주는, 해당 분야의 고전으로 꼽힐 만한 명저(名著)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전공자인 제가 이 두 권의 책을 이해하는 데는 한길사에서 나온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인류학의 거장들』 『금기의 수수께끼』같은 친절한 소개서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메리 더글라스는 “문화를 의미의 체계로 생각하여, 복잡하고 다양해 보이는 문화현상을 거기에 사용되는 상징의 의미를 해독하여 분석하는 방법”인 상징인류학을 대표하는 학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힙니다. 지식의 체계는 사회적 체계이며 그것을 규정하는 범주는 사회적 실체를 반영한다고 믿는 그녀는, “오물이란 제자리를 벗어난 사물로 일련의 질서정연한 관계와 그 관계의 위반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전제한다. 오물은 고립된 사물이 아니며, 사물의 체계적 정리와 분류의 부산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규정된 분류체계를 모호하게 하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 혹은 사람이 더럽거나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더럽거나 부정하다는 것은 특정 문화가 규정한 완전성을 구현하는 데 실패하거나 주어진 질서를 교란하고 경계를 침범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 혹은 상태를 지칭하며, 과학적이거나 위생적인 범주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의 가치체계를 반영하는 ‘사회적이고 상징적인 범주’라는 것입니다.

더글라스는 『순수와 위험』에서 이러한 관점을 적용하여 레위기 11장의 음식금기를 분석하면서 “거룩(혹은 정결)이란 '하나이고 완전한 신의 존재'와 '그 신에 의해 부여된 창조질서의 완전성'을 구현하고 있는 상태이며, 창조의 본래적 질서와 완전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들은 정결한 것으로, 각 종들 사이의 구별을 뒤섞거나 모호하게 하는 듯한 동물들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생각에 따르면 창조의 ‘완전성’을 구현하고 있는 육상동물은 소나 양과 같이 되새김질을 하고 굽이 갈라진 종들이었으며(레 11:3), 발굽은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돼지는 이 이 완전성에 미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동물이기에 부정하다고 여겨졌다는 것입니다(레 11:7). 또한 더글라스는 사람의 몸과 외부라는 두 구별된 범주의 '경계'부위에 있는 모든 ‘벌어진 곳(구멍)’은 위험한 곳이며, 이 '경계'를 통과(침범)해 몸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정액 ‧ 생리혈 ‧ 소변 ‧ 대변이나, 몸의 일부였으나 분리된 피부 ‧ 손톱 ‧ 머리카락 ‧ 이빨과 같은 것들은 더럽거나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마빈 해리스는 이와 달리 문화인류학에서 한 문화의 고유한 특성이나 상징체계, 심층구조와 같은 ‘관념적’인 주제들보다, 특정한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적 · 물질적 조건의 연구에 우선권을 두는 문화유물론(cultural materialism)을 발전시켰습니다. 해리스는 유사한 환경에 적용된 유사한 기술은 유사한 생산양식과 재생산양식(하부구조)를 낳고, 이는 다시 유사한 정치경제적 구조와 사회집단을 유발하며(구조), 이렇게 태어난 사회집단은 유사한 가치와 신념의 체계(상부구조)에 의해 그들의 활동을 합리화하고 조율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문화인류학자는 일차적으로 하부구조의 관점에서 현상을 설명한 후, 하부구조의 변화가 어떻게 구조와 상부구조를 개편하는지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해리스에게 문화인류학이란 메리 더글라스나 레비 스트로스처럼 특정한 문화에 내재된 심층구조나 상징체계를 ‘해석’해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유사한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공통적인 물질적 하부구조를 찾아내 그 인과관계를 법칙화하려는 ‘과학’에 가까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이상하고 불합리해 보이는 여러 문화적 현상에 대해 문화유물론이라는 자신의 방법을 능숙하게 적용해 흥미진진하게 설명해 나갑니다. 예를 들자면 힌두교도들이 암소를 숭배하는 것은 인도의 환경에서 소를 먹어 없애는 것보다 쟁기질에 사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생존에 훨씬 효과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며, 원시전쟁이나 포틀래치와 같이 야만적이거나 이상해 보이는 관습 또한 그들의 환경에서 지나친 인구증가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 부의 공정한 생산과 분배를 실현시키기 위한 일종의 평형장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고기에 대한 성서와 코란의 금기도, 땀을 흘리지 못해 체온조절 능력이 없고 섬유소가 아닌 곡식을 먹어 인간과 먹이 경쟁관계에 있으며 젖이나 가죽을 생산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일을 시키거나 원거리를 몰고 다닐 수도 없는 돼지를 사육하기에 부적절한 고대 근동의 기후와 환경을 고려해 볼 때, 매우 적절한 생태학적 전략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고대 근동에서 돼지고기는 왜 금기가 되었을까요? 과연 문화인류학은 특정 문화에 내재된 심층조구나 상징체계를 해독하는 ‘해석’의 학문일까요, 아니면 어떤 문화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하부구조를 찾아내기 위한 ‘과학’일까요? 해당 분야의 문외한인 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 꼭 하나의 답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고전적 기독교의 용어를 빌자면 "죄로 인해 타락한 불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은, 다른 모든 통찰과 대답들을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단 하나의 최종적이고 불변하는 ‘진리’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통찰들을 진실하게 반영하는 ‘일리’있는 견해들이 그렇게도 많다는 사실을 기뻐하면서 살아있는 ‘이해의 운동’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런 제 우유부단(?)함은 해당 분야의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일런지도 모릅니다. 저는 진리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정죄할 필요가 없는 아마추어가 좋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독서든 신앙이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계속 아마추어로 남을 것입니다. 아마추어여, 영원하라!

<문화의 수수께끼>와 <순수와 위험>

두 책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문화인류학 소개서들

<순수와 위험>

<문화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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