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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종교인류신화

메리 더글러스 (방원일 지음, 커뮤니케이션 북스 펴냄)

by 서음인 2018. 7. 13.

『메리 더글러스』는 영국의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 1921~2007)의 저작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과 그의 생각이 후대의 학계에 끼친 영향을 주로 종교 연구의 관점에서 열 개의 키워드로 추려 친절하고 알기 쉽게 정리한 간략한 소개서다. 아일랜드계 이주민으로 가톨릭 신자였으며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던 더글러스는 고전으로 평가받는『순수와 위험』이나 『자연 상징』와 같은 책으로 상징인류학을 대표하는 학자의 반열에 올랐으며, 특별히 구약을 공부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레위기의 음식 금기와 관련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매력적인 학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입문자들을 위한 좋은 소개서로뿐 아니라, 만만치 않은 그녀의 번역서 읽기에 도전하는 탐구자들을 위한 좋은 가이드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고 간단한 단상을 덧붙이기로 한다

 

정결과 부정 모든 문화는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분류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준인 ‘분류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깨끗함과 더러움(정결과 부정)이란 본능적이거나 위생적인 범주가 아니라 특정 문화의 고유한 분류체계에 의해 규정되는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범주다. 즉 깨끗함 혹은 정결이란 현대인들의 통념처럼 ‘위생’이라는 과학적인 기준을 만족시키는 상태가 아니고 특정 문화의 분류체계가 규정한 ‘적절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상태이며, 더럽거나 부정하다는 것은 그 분류체계가 규정한 ‘적절한 자리’를 벗어나 질서를 교란하거나 경계를 위협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깨끗함이라는 현대인의 위생관념은 ‘원시인’들의 주술 관념과 동일한 의례적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몸의 경계 이 분류체계는 문화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지만,  깨끗함과 더러움을 가르는 선이 ‘몸의 경계’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문화에서 일치한다. 사람들은 똥, 오줌, 침, 가래, 콧물, 땀, 정액, 구토물 등과 같이 ‘몸의 경계’를 통과해 몸 밖에 나온 물질을 더럽다고 인식한다. 이는 인간이 몸을 매개로 사회의 경계를 인식하기 때문이며, 인간은 몸이든 문화적 분류체계든 ‘나’와 ‘외부’의 경계를 교란하는 존재에 위협을 느낀다.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배설물은 몸의 경계를 자극함으로써 공포감을 조장하며, 동성애자를 공격할 때 항문 성교를 거론하는 이유는 몸의 경계를 건드려 ‘더럽다’는 혐오의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서다.

 

레위기의 음식금기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유대교의 음식금기는 <창세기>에 나타난 유대인의 세계관, 즉 우주 만물에 대한 분류 체계를 반영한다. 그들은 모든 생물을 육 ‧ 해 ‧ 공에 각각 귀속된 것으로 분류했고, 각자의 영역에 소속되어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 분류에 부합해 창조의 본래적 질서와 완전성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들은 정결한 것으로, 육 ‧ 해 ‧ 공의 분류 경계를 어지럽히거나 각 종들 사이의 구별을 뒤섞는 것처럼 보이는 생물은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음식 금기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음으로서 성결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의례 더글러스는 의례를 의미 없는 행위의 반복이거나 철폐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 아닌 소통의 매개이지 공동체의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상징 자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여러 연구를 통해 부족사회에 사는 사람은 더 의례적이고 문명사회에 사는 사람은 덜 의례적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의례에 대한 태도는 그가 속한 집단의 조직이나 소통 방식과 연결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례적 경향이 강한 아일랜드 가톨릭 출신인 더글러스는 의례나 규율을 과거의 속박으로 규정하던 당대의 흐름에 반대해 평신도들이 소중하게 품고 있던 의례들을 이해하는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격자와 집단 더글러스는 원시인과 현대인의 구분을 해체하고, 이들을 연속체 위에 놓고 공통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상징체계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공동체 성격의 상관관계에 따른 유형론인 ‘격자와 집단’모델이다. 이 모델은 특정 집단의 분류체계가 해당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를 ‘격자(grid)’로 개념화했고,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의 강도를 ‘집단(group)’으로 개념화한 후, 격자와 집단을 두 축으로 만들어진 사분면에서 위계형(강한 집단과 강한 격자), 독자세력형(강한 집단과 약한 격자), 고립형(약한 집단과 강한 격자), 개인형(약한 집단과 약한 격자)이라는 네 가지 문화의 유형을 제시한다(사진 2).

 

악의 문제 더글러스는 깨끗함과 부정과 관련된 금기 체계들이 종래에 이해되었듯이 윤리와 무관한 관습이 아니고 고등종교가 씨름해 온 쟁점인 ‘악의 문제’ 또는 신정론적 질문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주술 영역에도 인간의 실패에 대처하는 심오한 지적 노력이 존재하며, 악이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설명,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대한 고민은 깨끗함과 부정의 체계에서도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더글러스는 어떤 사회에서는 불의나 고통이 죄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성찰의 유무는 원시사회와 발전된 사회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 유형에 따른 차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원시종교와 고등 종교에 대한 우리의 구분을 무력화한다.

 

원시인과 현대인 이와 같이 더글러스는 원시인과 현대인이 질적으로 다른 인간이라는 우리의 뿌리 깊은 믿음에 경종을 울리려 노력했다. 그의 작업은 원시와 현대, 주술과 종교, 미신과 과학, 원시종교와 고등종교 등 그들과 우리를 갈라놓는 여러 이분법을 해체함으로서 우리의 편견에 도전한다. 이러한 더글러스의 생각은 동시대에 활동한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와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더글러스의 매력은 이러한 개념 작업을 바탕으로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공부하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울이 된다는 인류학의 기본 미덕을 넉넉하게 보여 준다는 데 있다.

 

혐오와 배제 우리가 가진 깨끗함과 더러움의 구분이 본능적이거나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사회적 ‧ 문화적 범주라는 더글러스의 통찰은, 요즘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타자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의 물결과 관련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경’을 앞세워 나와 다른 타자를 정죄하고 배제해야 한다고 앞장서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수천 년 전 고대 근동 사람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정결과 부정, 혐오와 배제의 ‘분류 체계’가 21세기 한국에서도 한 획의 틀림도 없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가? 그렇다면 창조질서를 교란하는 것으로 여겨 성경에서 엄히 금지하고 있는 작물 섞어심기와 직물의 혼방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창조질서를 교란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신 14:21) 치즈버거를 먹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위반하고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먹여 키운 미국제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사진 1) 방원일, <메리 더글러스>



(사진 2) 격자(행동준칙)과 집단



(사진 3) 메리 더글러스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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