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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종교인류신화

희생양 (르네 지라르 지음, 민음사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모방 욕망” “희생양 메커니즘”과 같은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저자 르네 지라르는 이 책에서 모든 인류 사회는 그 성원들의 모방 욕망으로 인한 갈등과 폭력이라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그 사회의 경계에 위치한 무고한 약자나 소수자 집단(들)을 - 예를 들면 전쟁포로, 어린아이, 유대인, 장애인 등 - 희생양으로 삼아 위기의 책임을 전가한 후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해함으로 위기를 벗어나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에는 반대로 이 희생양을 신격화하거나 전지전능한 조작자로 만들어 제의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이야말로 유사 이래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보편적인 원칙이었으며, 인류의 모든 신화와 설화는 무고한 희생양에 대한 집단 폭력과 살해의 기억을 은폐한 채 박해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박해의 텍스트”라고 강조한다. 즉 신화와 설화의 목적은 희생양에 대한 집단 살해를 은폐하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신화와 설화는 필연적으로 박해자의 시각에서 쓰인, 특징적인 왜곡이 들어 있는 종종 집단적으로 행해지던 실제의 폭력에 대한 기록인 “박해의 텍스트”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죄 없는 그리스도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십자가에 못박는 복음서의 수난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 자체로는 별로 특이할 것이 없는 흔한 박해의 기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복음서는 박해자의 시각이 아닌 희생양의 시각에서 기록된 유일한 텍스트이며, 박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여 감추어진 폭력과 집단살해를 드러냄으로서 희생양을 정당하게 복권시키고, 희생양 메커니즘 자체를 해체하고 있는 독특한 텍스트이다.

 

저자는 사탄이란 희생양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게끔 희생양의 유죄를 모든 공동체의 성원들에게 믿게 하여 집단 살해에 가담하게 하는 힘이자 행사되는 폭력 그 자체이며,  성령은 역사 속에서 예수가 이미 폭로했던 모방 욕망의 메커니즘을 현실 속에서 드러냄으로서 폭력이라는 사탄의 힘을 풀어주는 것을 통해 사탄에 대한 추방과 심판을 완성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박해의 기록을 비난하고 우리를 가두는 모방적 폭력에 저항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성경 텍스트에서 얻을 수 있으며, 따라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희생양 제의를 해체하기 시작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은 우리사회를 이해하는 매우 유용한 틀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학교나 군대, 직장에서의 왕따 문제에서부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과거 특정 지역 사람들에 대한 차별, 최근에 문제되는 외국인 근로자나 탈북자에 대한 차별, 이번 대선에서 그 강고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좌파, 빨갱이 논란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의 거의 모든 성원들은 주류의 일원이 되어 나와 다른 희생양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박해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성경에 따라 살아간다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겠다. 성경의 가르침과 성령의 사역을 통해 희생양 메커니즘을 해체하고 소수자요 약자인 희생양들을 변호하기는커녕, 언제나 새로운 박해자를 찾아 율법의 이름으로 그들을 정죄하고 그들에게 “영적전쟁”을 선포하며 그러한 희생양들을 통해서 자신의 정당성과 자기 의를 확인하려는 일부 한국교회의 모습이야말로 르네 지라르가 말한 사탄의 모습에 다름아니지 않는가? 박해의 기록에 서 있는 세상(혹은 교회)은 필연적으로 예수를 믿지 않거나 제대로 믿지 않는다는 르네 지라르의 말을 한국교회는 한번쯤 되새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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