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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종교인류신화

야생의 사고 (레비 스트로스 지음, 한길사 펴냄)

by 서음인 2016. 5. 30.

 

1.구조주의로 알려진 거대한 지적 흐름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 및 사회문화적 현상들의 이면에는 이원적 대립의 체계라는 인간 정신의 보편적 구조가 존재하며, 이와 같은 인간정신의 무의식적 구조가 대상세계에 논리적 형식을 부여한 것이 토템적 분류체계, 친족이론, 신화체계, 요리문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무의식적 구조가 모든 개별적 정신에 선행하고 개개인의 의식에 외재하면서 인간의 존재조건을 규정하고 있으며, 인간은 이와 같은 사회적 무의식의 소산인 상징체계에 의하여 구성되고 이에 종속되는 존재이기에, 데카르트 이후 서구철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의식적 주체’란 결국 심층구조의 효과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서 ‘근대적 주체의 해체’를 시도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신화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2. 레비 스트로스는 이 책에서 (과학적이고 추상적인 현대인의 사고와 대비되는 미개인들의 사고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구체적, 주술적, 신화적인 사고를 통칭하는 표현인 ‘야생의 사고’ 란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관심의 차이에서 과학과 구별될 뿐, 이원적 대립의 체계라는 무의식적 구조에 따라 훌륭하게 구축된 하나의 체계를 통해 혼돈을 피하고 질서를 파악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과학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야생의 사고는 모든 인간에 공통된 선험적이고 보편적 사고구조이기에 여기에 주술이나 마술이라는 이름을 붙여 과학과 대립시키고 불합리하다고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야생의 사고는 근대과학과 마찬가지로 합리적 이성적 사고이며, 주술과 과학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사물을 이해하는 서로 다른 태도이자 지식습득의 두 양식이다.

 

3. 이러한 구조주의적 사고에 따르면 어떠한 문화에서건 불변하는 것은 사회문화적 현상들의 특정 요소 하나하나가 아니고 그 요소들이 이루는 관계구조이며, 따라서 신화나 의례에 나오는 각각의 요소에 대한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문화의 상징체계 내에서 각각의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모든 인류에게 동일한 내재적 '집단무의식' 과 '원형' 의 존재를 가정하는 융의 주장과  달리 각각의 신화나 의례의 개별 요소들은 결코 불변하는 내재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그 의미는 위치(역사적 문화적 상황, 그들 요소가 참여하고 있는 구조적 체계) 에 의해서만 정해진다는 것이다. 공통적인 것은 형식이지 내용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전혀 다른 범주인 여성의 교환(친족관계)과 음식물의 교환은 공히 의사소통의 형태로 사회집단의 상호결합을 견고하게 하거나 과시함으로서 상호간의 대립을 융화시키고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행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며, 다양한 형태의 신화들 역시 자연과 문화의 모순적 대립적 관계를 중재하고 해소하려는 논리적 도구로 이들은 모두 우주를 이항대립으로 이루어진 연속체로 이해하는 무의식적 정신의 보편적 논리구조에 기초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저자는 인류를 ‘역사가 있는 사회’와 ‘역사가 없는 사회’로 분류하고 역사 없는 인류는 열등한 미개인이라고 주장하며 구조에 대한 역사의 우위를 강조하는 사르트르의 변증법적이고 진보주의적인 역사관에 대해 스스로의 사회 속에 가능한 모든 의미와 존엄을 지니고 있는 ‘미개사회’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자, 근거 없는 주체성의 환상에 빠져 구조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외면하는 비과학적 사변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역사적 요인이 사회의 연속성과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제도를 통해 제거하려고 하는 ‘차가운 사회’와 역사의 에너지를 사회 내부로 끌어들여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뜨거운 사회’라는 구별이 있을 뿐이며  어느 한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5. 미개한 ‘야생의 사고’에 대한 서구의 합리적 과학적 사고의 우위성을 부정하는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은 서구문화의 우월성 및 자기중심성과 그에 따른 식민주의적 논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 중 하나이며, 주체란 결국 구조에 의해 구성되는 구조의 효과에 불과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근대적 주체’의 해체라는 탈근대적 사유의 맹아가 된다. 또한 그의 사상은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 미셸 푸코와 같은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철학이나 마르크스주의 또는 정신분석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계승되어 구조주의라는 풍성한 지적 흐름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6. 그러나 그의 구조주의는 인간 실존을 왜곡하고 인간을 몰역사적이고 정태적인 사물로 전락시키는 반인간적이며 반주체적인 이론이자,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기존 질서와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적인 사고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실존의 존엄성과 독특성을 강조했던 사르트르가 평생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적 이념과 억압을 거부하는 참여적 지식인으로 살았던 것과는 달리, 레비 스트로스가 68혁명과 같은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도 일관되게 소극적 입장을 견지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p.s 이 책은 그의 구조주의 인류학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난해하고 전문적인 인류학적 사례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의 사상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읽기에는 상당히 버겁다. (사실은 소개서 몇 권을 읽고 그의 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어도 그의 인류학적 논의를 따라가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혹시 누군가가 그의 책을 읽는다면 그에 대한 소개서들을 항상 곁에 두고 함께 읽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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