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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종교인류신화

신화해석학 (이경재 지음, 다산글방 펴냄)

by 서음인 2016. 5. 30.

1.인간은 외부의 대상을 ‘날 것 그대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언어적 상징을 통하여 인식하고 이렇게 언어적으로 재구성된 상징적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이자, 생존과 생식이라는 생물학적 욕구 이외에 자신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의식의 잉여’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듯 언어적 상징, 즉 이야기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삶과 죽음의 실존적 의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것이 어떻게 우주가 혼돈에서 질서로 변화하였고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기원에 관한 거룩한 이야기, 즉 신화다. 또한 이러한 신화의 내용을 재현하는 행위가 바로 종교적 제의이며, 따라서 신화와 제의는 종교를 그 내용으로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제의가 행하는 종교라면 신화는 말하는 종교다. 

 

2. 신화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1) 한 집단의 사회학적 기원과 우주 내 위치를 알려주고 의미를 제공해 주는 창조신화와, (2) 각 개인이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의 드라마를 실현해야 하는지 원형적으로 보여주는 영웅신화이다. 집단과 개인은 창조신화를 재현하는 제의를 통해 혼돈과 무질서로 오염된 현재의 시간에 새로운 창조질서를 재현하고 일상적 시간을 거룩한 시간으로 바꾸는 우주적 드라마에 참여하며, 영웅신화의 모델을 모방하고 재현함으로 공동체적이고 이상적 자아를 실현한다. 또한 신화와 같이 초역사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은 이데올로기도 특정 공동체 내에서 신화와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며, 어떤 이데올로기들은 (예를 들면 나찌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공연히 신화적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3. 창조신화는 (1) 만유가 혼돈을 떠도는 우주알로부터 스스로 탄생되었다는 地母神 계통의 창조신화와 (2) 혼돈과의 투쟁을 통해 신이 피조물인 알을 낳고 부화시켰다는 天父神 계통의 창조신화로 나눌 수 있다. 혼돈을 생명의 모태로 여기는 지모신 계통의 창조신화가 분열과 대립을 초월하여 만물의 존재론적 일치를 강조하는 평등주의적인 몸의 철학이라면, 생명의 원동력을 부성신의 씨요 의지로 보는 부성신 계통의 창조신화는 창조자와 피조자의 관계가 강조되는 계층적인 머리의 철학이며, 자연을 신적 대상이 아니라 신의 창조물로 여기는 비신화화적, 탈주술적인 경향을 가진다. 이 두 신화의 차이는 사회학적으로 볼 때 농경민과 수렵민의 상상력의 차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으며 농경민의 심리학이 자연에 순응하는 순응적 심리학과 땅에 고착하는 보수적 심리학 그리고 순환적 세계관을 탄생시킨다면, 수렵민의 심리학은 동물의 몸을 살해하지만 동물의 영은 신에게 돌려보낸다는 금기와 주술의 제의를 발생시키며 개인적인 가치 및 자유와 진취적 정신과 투쟁과 계약을 중시하는 인격적 관계의 정신을 창조한다. 저자에 의하면 천부신의 창조신화요 의식적 창조신화인 야훼종교는 지모신인 자연을 정복하는 페니스의 종교요, 반성적 사유의 종교이자 계약적이고 법률적인 아폴론적 청년기의 종교다.

 

4.  <천의 얼굴을 가진 얼굴>에서 조지프 캠벨이 잘 설명한 영웅신화의 영웅은 (1) 드래곤과 투쟁하여 외향적 영웅이 되는 경우와 (2) 영혼의 어둔 밤, 드래곤의 뱃속을 통과하여 내향적 영웅인 성자가 되는 경우의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든 영웅의 이야기는 일상으로부터의 분리, 지하세계의 모험, 일상으로의 회귀라는 3중의 원형구조를 가진다. (1) 일상으로부터의 분리는 영웅이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일상에 머무는 자는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다. (2) 영웅은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후 신비가들이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세계의 비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는 고난과 모험의 드라마적 세계를 통과하게 되며, 안내자나 조력자의 도움으로 이러한 모험을 무사히 완수하게 되거나 때로는 비극적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3) 이러한 모험을 완성한 영웅은 영계의 비밀을 아는 지혜 혹은 공동체를 살리는 보물을 가지고 자신이 떠난 일상으로 회귀하게 되며, 그 결과 영웅이 가져오는 공동체적 축복은 천복으로 수용되고 영운은 영웅, 신적 존재나 신 자신으로 추앙되기도 한다. 인간의 의식이 진보함에 따라 폐쇄적이고 부족적인 영웅이 아닌 개방적이고 인간의 보편 정신을 표상하는 영웅이 등장하게 되며. 따라서 오늘날 종교를 근간으로 하는 문명의 충돌은 종교간 영웅간의 투쟁이 아니라 부족종교로 퇴화한 보편종교간의 타락한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5. 금세기의 위대한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종교의 본질을 세속적인 것에 반대되는 거룩한 것의 경험이라고 정의했으며, 거룩의 대상인 절대타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聖顯(hierophany) 혹은神顯(theophany) 으로 표현했다. 공간과 시간에 나타나는 이러한 성현은 미지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여 태초의 혼돈인 chaos 를 질서화된 우주의 세계 즉 cosmos 로 바꾼다. 창조신화는 어떻게 혼돈에서 코스모스가 발생했는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질서의 원천이요 모방의 근원이며, 원시인들은 시간 속에서 발생한 무질서와 혼돈을 사물의 거룩한 기원으로 돌아가서 창조신화를 모방하는 제의를 통해 질서의 세계로 재생시킨다. 현대인들과 달리 원시인들에게 시간은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 제의를 통하여 순환적으로 흐르며, 역사란 새로운 것을 잉태하는 가능성의 지평이 아니라 제의를 통해 신화적 시간으로 변형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원시인들에게 실재는 모방할 수 있고 재현할 수 있는 것만을 의미하며, 역사란 오직 원형과 반복의 변증법에 따라 움직인다. (<영원회귀의 신화>)

 

직선적이고 목적론적인 역사관을 가진 유대 기독교에 의해 최초로 이러한 원형과 반복의 지평이 초월되었을 때 종교경험 속에 하나의 새로운 범주 즉 믿음의 범주가 도입되었으며, 이는 인간에게 원형과 반복의 변증법을 초월하는 절대적 자유가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현대인은 역사적 시간과 절대적 자유를 얻었으나 세속화로 인해 초월적 차원을 상실했으며, 믿음의 초월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역사의 절망과 공포를 극복할 수 없다. 엘리아데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적 인간이 유대 기독교의 결과이듯이, 역사적 인간의 구원은 다시 유대 기독교의 믿음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다.

 

6. 인류학과 신화학의 보고인 대작 <황금가지>의 저자인 프레이저는 인간의 기본 욕구는 시공을 초월하여 동일하나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법은 시대에 따라 주술, 종교, 과학의 단계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주술이란 자연을 상징적으로 모방함으로서 자연을 변형하고 이용하려는 원시 기술로,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공통점을 가지며 인간의 지성이 발달하면 과학에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이에 반해 종교는 자연 현상의 뒤에 있다고 믿는 초자연적 신들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는 것으로 주술이나 과학에서 인간이 자연을 조절하는 주체의 입장에 있다면 종교에서는 신이 자연조절의 주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주술과 과학이 실패하는 곳에 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고 한다.


7. 이러한 신화가 실재가 되고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신화를 진리로 믿는 해석학적 공동체의 존재가 필요하며,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해석학적 공동체가 사라지면 신화를 대치하는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스 철학과 계몽주의가 신화를 비신화하면서 이성을 재신화화했다면, 20세기 후반의 언어철학은 신화와 철학 과학을 모두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며 이들을 또 다른 의미의 신화로 간주함으로서 이성우월주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신화는 문학, 정신분석학, 역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으며 이러한  신화 해석의 다양함은 우리에게 해석학적 차이의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8.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신화적 상징의 언어가 기술적 이성의 언어에 의해 억압되고 있으며, 그것은 한 사회를 통합하는 상징세계, 집단 신화가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이야기에 참여함으로서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존재이며, 이야기(신화) 란 삶의 인식론적 범주이자 인간 실존의 조건이기에 겉으로 보기에 사라진 것으로 생각되는 신화는 오늘날에도 개인의 무의식, 대중문화, 영상, 예술, 문학 등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9. 우리가 만약 성경을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한 과학적 명제들의 집합으로 취급하는 근대적 계시 이해에서 벗어나 성경의 계시를 우주의 기원과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거룩한 이야기, 그 이야기에 따라 세상의 모든 개별적 이야기가 해석되어야 하는 커다란 이야기, 우리가 해석학적 공동체로서 참여하고 살아내야 하는 바로 그 이야기로 여길 수 있다면, 우리는 성경에 ‘신화’해석의 다양한 틀을 적용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성경은 중립적 이성이 진술하는 입증 가능한 진리의 체계가 우리 신앙의 근거라고 말하지 않으며, 신앙이란 ‘들을 귀와 볼 눈’을 필요로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오히려 우리는 객관성이라는 근대적 진리의 신화에 집착하는 대신 우리가 성경이라는 특정한 ‘메타내러티브, 거룩한 ‘신화’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신화해석의 다양한 도구들은 전통적 신학이 발견할 수 없었던 다양하고 풍요로운 해석의 패러다임을 우리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변절’과 ‘오염’ 의 두려움 때문에 안정된 ‘정통’ 신학의 언어와 그 패러다임에 머물 것이냐, 익사의 공포를 뚫고 범람하는 신화적 해석학의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질 것이냐가 우리 앞에 놓인 다음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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