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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성서학

이 여인을 보라 (이현아 외 지음, 평화교회연구소 펴냄)

by 서음인 2019. 4. 20.

지난번 성탄절에 이어 이번 사순절에도 평화교회연구소에서 나온 묵상집과 함께 했습니다. 이번 묵상집도 우리에게 익숙한 하와, 한나 같은 여성으로부터 이름조차 잊혀진 레위인의 첩이나 수가성 여인까지 40명의 성서 속 여성들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40명의 여성들이 하루에 한 명씩 조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기획자는 독자들이 이 묵상집을 읽으며 시뻘겋게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선 모세처럼 익숙한 공간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나 자신이 주체에서 객체로 쫓겨나는 도발적인 경험을 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부장 사회 속에서 성역할과 씨름하고 갖가지 사회의 모순들을 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갔던 성서 속 여성들이 감당한 고난들에 깊이 잠기며, 그 속에서 펼쳐질 하나님의 새 길, 새 역사에 초대받는 시간을 가지길 소망합니다. 31일부터 420일까지 이 책과 함께하며 느끼고 배운 부분을 요약하는 것으로 이번 묵상의 여정을 마칠까 합니다.

 

1. 여성의 입장에 서서 여성의 눈으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성서읽기가 얼마나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 가부장의 시각에 서 있었는지 깨닫는 일이다. 과연 가부장제는 하나님이 정하신 불변의 창조질서인가? 남성은 그의 능력과 상황에 관계없이 가부장의 짐을 져야 할 운명을 타고났으며, 여성은 예외 없이 이 질서에서 순종과 희생의 역할을 강요받는 객체로 창조되었는가? “존재는 평등하나 기능이 다르다는 복음주의 기독교의 상투적 답변은 바뀐 세상에서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한 부드러운 가부장제의 사탕발림이 아닌가?

2. 성서의 여성들은 자주 무명인으로 감춰지며, 대부분 철저하게 순종과 희생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조연에 머무른다. 그러나 그녀들은 때로 주체적인 신앙의 결단과 실천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경계를 넘거나 불의에 맞서는 모험을 벌이기도 하고, 가부장제 아래서 남성에서 속한 채 폭력과 권력투쟁의 한가운데서 가솔들을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전개하기도 한다. 남성들은 자신들의 피상적인 여성 이해를 강요하던 가벼운 입을 닫고, 먼저 여성들이 바라보는 성서 시대 여성들의 절절한 고난과 믿음과 소망과 모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수난절에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불평등의 현실과 그 속에서 억압받아왔던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주체로 살아냈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하고, 희생과 침묵을 강요당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그녀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감춰진 이름과 목소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 History에 가려진 Herstory를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21세기 한반도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성서 해석의 과제 중 하나다.

4.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예수와 관계있는 사람인가?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성서의 이름으로 여성과 외국인과 타종교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낙태가 살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산모의 생명과 삶은 율법의 족쇄로 얽매고,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여성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전쟁을 통한 살상은 정당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당신이 믿는 예수는 혹시 남성과 가부장의 질서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분은 아닌가? 메리 데일리의 말마따나 하나님이 남성이면 남성은 하나님이다”.

5. 고난당하고 부활하신 예수만 잘 믿으면 세상의 불평등과 부정의가 저절로 사라지는가? 천만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기꺼이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는 믿음 좋은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불평등과 부정의, 성차별을 만드는 데 앞장서 왔다.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은 바로 그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받아 왔던 그녀들, 철저하게 남성의 이름 아래 감추어져 왔던 그 여성들의 고난을 기억하고 연대하고 동참하는 것이며, 이야말로 오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고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참된 십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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