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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박종성 지음, 살림 펴냄)

by 서음인 2021. 4. 9.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은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충남대학교 영문과 교수인 저자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핵심 내용과 중요한 사상가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그는 탈식민주의가 강대국 혹은 지배권력의 본질을 조명하고 주권과 자율성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실천담론이요, 해방, 독립, 평등, 정의를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프로젝트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저항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한 ‘저항적 민족주의’야말로 패권주의, 신자유주의,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역담론이라고 강조한다. 작지만 알찬 책의 내용을 요약해 앞으로의 공부를 위한 토대로 삼기로 한다.

 

식민 · 탈식민 · 제국    식민주의란 강대국이 무력으로 자신보다 약한 나라의 땅을 침략해 정복하고, 그곳의 물적 인적 자원을 약탈하며, 자국민을 이주시켜 지배하고 통치하는 차별적 이데올로기다. 식민지배는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시켜 줄 거울인 ‘타자’를 필요로 하며, 식민 지배자는 타자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결속을 다지며 지배를 정당화한다. ② 탈식민주의는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억압과 착취를 낳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해체 혹은 전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이론적 실천적 이데올로기다. 여기서 ‘탈’이란 예속상태를 벗어남, 즉 주권수립과 해방을 넘어 의식의 탈식민화까지를 의미한다. ③ 제국주의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경제적 군사적 면에서 합법적으로 통치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데올로기적 개념이다. 식민주의가 하나의 민족 집단이 새로운 지역(식민지)에 정착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제국주의는 강국이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체제와 욕망을 아우르는 말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와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그 주요 목표는 영토 확장과 이권 챙기기다.

 

제국주의의 종류    영국 식민통치는 도덕적 우월감과 문명화 사명을 기반으로 하며, 완전한 동화나 영구적 식민통치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자치주의와 협력적 관계를 모색했다. ② 프랑스 식민통치는 만민평등의 이념에 의거해 동화정책을 실시했지만, 이는 식민지인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기만에 불과했을 뿐 실제로 식민지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③ 일본의 식민주의는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제국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의 후진성을 부각시키고 문명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방식은 박애주의와 인도주의와 같은 서구적 윤리성을 철저히 결여하고 있었다.

 

타자화 전략     식민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인종적, 문화적, 지적, 기술적 우위를 확인하고 권위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늘 ‘열등한’ 타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서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동양 혹은 비서구(오리엔탈리즘)는 유럽인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적 관념의 덩어리요 제국경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인식론적 폭력에 불과하다. 지배자는 ‘재현’을 통해 타자에 대한 상투적이고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정형화’ 혹은 ‘고정 관념 만들기’를 수행하고, 식민지인들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구분 · 구획 · 분류 · 명명한 후, 이러한 허위 지식을 널리 유포함으로서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한다. 이렇게 권력은 정복과 약탈이란 직접적 방식 외에 인종차별, 오리엔탈리즘, 정형화 작업 등의 간접적 방식을 통해서도 생산된다.

 

지배담론과 저항담론     식민주의는 지배담론이고, 탈식민주의는 이에 맞서는 저항담론이다. ‘담론’이란 지배그룹이 피지배그룹에 특정 지식, 규율, 가치를 강요함으로서 진리의 장을 구성하는 진술체계다. 식민담론은 자민족 우월주의에 입각한 일방적 담론으로 위계질서와 우열, 불평등을 만들어 내며, 저항담론은 식민지배의 권위와 명령을 거부하는 담론으로 자치권과 독립 쟁취를 목표로 삼는다. 이에는 흑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네그리튀드 운동을 포함한 민족주의 담론, 영문학의 고전을 식민지인의 입장에서 다시 쓰는 ‘되받아 쓰기’, 영문학 작품에 녹아 있는 제국주의 이념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저항독법’과 ‘대위법적 읽기’등이 포함된다. 영어는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헤게모니와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이자, 우리 사회의 모순된 계급구조를 재생산하는 일종의 문화자본이다. 신식민지 단계로 진입할수록 물리적 폭력보다는 인식론적 폭력이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며, 피지배자의 동의에 의존하는 헤게모니적 방식에 더 의존하게 된다.

 

푸코의 권력담론     푸코는 권력이 담론을 통해 개인들의 행위를 지배하고 종속시키는 방식에 대해 탐구한다. 그는 오늘날의 권력은 과거처럼 거시적이고 수직적이며 억압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대신, ‘훈육적 권력’에 대한 순응의 형태로 인간의 신체를 미시적으로 지배하는 ‘생체권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에게 강요하는 특정한 지식과 규율의 체계인 ‘담론’에 의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사이드는 푸코의 권력담론을 동양과 서양 사이의 권력 작동방식에 적용한다. 그는 유럽의 동양 재현행위인 오리엔탈리즘은 식민지인을 자신의 권력과 권위에 순응시키려는 목적을 가지는 허구적인 관념의 덩어리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일종의 ‘지적 폭력’ 내지는 ‘학살’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리고 식민통치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상상 속에서 동양은 여전히 서구의 식민지 내지는 시장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저항정신으로 영문학 텍스트에 주체적 비판적으로 접근했으며, 텍스트 밖의 세속적 현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반식민 저항운동가 파농     제3세게 반제국주의 운동의 기수로 평가받는 프란츠 파농은 백인의 세계관에 갇힌 채 ‘하얀 가면’을 쓰고 그들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식민지인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이념과 교육의 허구성을 깨닫고, 자신의 ‘검은 피부’를 사랑하며, 무력투쟁을 통한 식민상태에서의 해방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완전한 탈식민화를 위해서는 억압당한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이 자신을 창조하는 갱생과 변혁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식민지인을 포함한 모든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가 되고 정치의 주인공이 되는 사회를 꿈꾸었다.

 

호미 바바      호미 바바는 정치적 해방에 열광하기보다 문화적 차이에 주목한다. 그는 백인 식민지배자는 피식민지인 앞에서 지배욕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는 ‘양가성’ 주장을 통해 백인의 정체성이 견고하다는 파농과 사이드의 견해를 부정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모방하도록 요구하는 동시에 차별화를 통해 우월성을 확인하고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종주국의 전략은, 피식민지인들을 긴장과 양가성이 혼재하는 역동성 존재인 ‘잡종’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양가성’과 ‘잡종성’ 이론은 지배와 피지배의 견고한 이분법적 구분을 무너뜨려 반식민 저항의 공간을 창조한다. 또한 바바는 파농과 달리 ‘흉내내기’가 지배자의 권위를 위협하고 견고한 믿음을 뒤흔듦으로서 저항과 전복의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가야트리 스피박     가야트리 스피박은 지배계층의 헤게모니에 종속되거나 접근을 부인당한 그룹인 ‘서발턴’(하위주체)의 목소리, 경험, 역사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을 예속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재현이나 묘사가 아닌 그들에게 ‘말을 걸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전략을 택한다. 그는 민중중심의 역사기록이 ‘민족주의’나 ‘저항주의’라는 본질주의의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하면서, 무시되거나 잊혀진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온전히 복원해 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스피박은 하위주체가 ‘자율성’을 가진다는 그람시의 주장을 일축하며, 하위주체의 자발적인 저항 가능성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투사가 아니라 해체주의자이며 불평등 해소라는 정의실천보다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지배권력의 해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성찰과 전망     민족주의는 저항성과 실천성이라는 장점을 지녔지만, 폐쇄성과 배타성이라는 단점 또한 지닌다. 신제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탈민족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해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나이브한 발상이며, 저항적 민족주의는 아직도 패권주의, 신자유주의,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항담론이다. 저항적 민족주의가 폭력적 배타적이어서 나쁘다는 것은 지배자의 논리일 수 있으며, 서구 지배자를 따라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체의 식민주의를 바라볼 경우 그들의 시각에 갇힐 위험성이 높다. 탈식민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신제국주의라는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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