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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by 서음인 2021. 6. 6.

『사람, 장소, 환대』는 서울대학교와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공부하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사람/장소/환대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본질과 문제를 흥미롭게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을 인용해 '사람됨'이란 일상 속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야 하는 '수행적 개념'이기에, 우리는 오직 타인의 ‘인정’에 의해서만 사회 안에 들어가고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이 된다는 것은 특정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는다는 의미이며, 현대 사회의 도덕적 기초는 사회가 어떠한 조건이나 유보도 없이 모든 개인에게 ‘사람’의 자리를 주어야 하고 어떤 명목으로도 이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절대적 환대'의 원리라고 강조한다. 탁월한 통찰이 돋보이는 책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고 개인적인 단상을 덧붙인다.

 

사람의 개념이 내포하는 ‘인정’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사람임’이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한 개인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① 전통사회에서 출생 후 사회적 환대(세례, 백일잔치)의 기간에 도달하지 못한 태아 ② 지켜야 할 명예나 권리가 없는 노예 ③ 입대와 동시에 인권을 박탈당하고 어떤 명예나 신성함도 갖지 못하게 된 현대의 군인 ④ 인류 공동체에서 추방당해 물건 혹은 벌거벗은 생명의 지위로 격하되어버린 사형수는 사람으로서의 성원권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박탈당한 개인들의 예이며, 이는 사람의 개념에 내포된 ‘인정’의 차원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이다. 

 

사람의 개념이 내포하는 ‘장소성’      사람의 개념은 장소 의존적이다. 이는 사람이라는 말은 사회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뜻이며, 사회적 성원권은 장소에 대한 권리와 관계가 있다는 의미다. 또한 이는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특정한 사회)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상호주관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며, 우리는 이 지평 안에서 타인들과 조우하면서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와 성원권을 인정한다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작용은 언제나 철회될 수 있으며 , 사회의 경계는 이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이나 세계화 시대의 이주 노동자들처럼 장소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가지지 못한 개인들은 그 사회 내에서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사람의 기능이 내포하는 ‘수행성’      사람이라는 것은 ‘본질적’ 개념이 아니라 ‘수행적’ 개념이다. 이 말은 사람됨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나거나 사회화를 통해 획득된 불변의 본질이나 상태가 아니며, 모든 사람은 사회라는 무대 위에 올라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면서 계속 자신의 사람자격을 확인받는다는 뜻이다. 고프먼에 따르면 ‘얼굴’(인격)이란 상호작용 속에서 가정되고 재생산되는 의례적 픽션이며,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대해 의례를 행함으로서 서로를 사람으로 임명한다. 상호작용 의례를 행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에서의 그의 성원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가면’이 우리가 연기하고자 하는 성격이라면 ‘얼굴’은 그 가면의 배후에 있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주체성과 관련된다. 그러나 실제로 가면의 뒤(얼굴의 자리)에 있는 것은 어떤 종류의 내면성이 아니라, 신성한 것 또는 명예이다.

 

구조와 명예 vs 상호작용질서와 존엄      우리는 사회 안에서 행위자로서 목표지향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동시에 사람으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의례를 수행한다. 이는 총체로서의 현대 사회가 ‘구조’와 ‘상호작용 질서’로 이원화되어 있다는 의미다. 구조가 지위와 역할의 할당 및 자본의 분배와 관련된다면, 상호작용 질서는 성원권의 인정과 관련된다. 현대 사회는 구조적 측면에서는 불평등한 개인들이 상호작용의 질서 안에서는 평등하다고 가정하며, 이는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자본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사람으로서 평등하다고 간주된다는 의미다. 개인의 정체성이 고정된 신분이나 제도화된 역할이라는 ‘구조’에 의지하던 근대 이전의 윤리 감각에 뿌리박은 개념인 ‘명예’는 가질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지만 (노예는 명예가 없다), ‘상호작용 질서’의 층위에서 만인이 평등하다고 간주하는 현대적 정황에서 강조되는 ‘존엄’은 자격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배제와 낙인      그러나 현대사회라도 이러한 ‘의례적 평등’의 원칙이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낙인과 수용소에 대한 고프면의 연구는 사회가 그 내부에 일체의 존중의 의례가 사라지는 예외 지대를 마련해놓고 있으며,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어 '배제'와 '조건부 통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고프먼은 의례의 교환에 참여할 수 자격을 ① 의례의 교환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상대방에게 존중의 의례를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경우, ② 신체적/정신적 '결함'을 가졌거나 특정한 계급/인종/민족/종교에 속해 있는 ‘낙인자’의 경우에서처럼, 특정한 행동 노선을 따를 때만 조건부로 의례 교환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 ③ 정신병원/수도원/교도소/병영 등에서 볼 수 있듯 의례 교환의 장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탈인격화의 과정을 겪는 경우의 세 가지로 구분했으며, 이중 뒤의 두 경우에 속한 사람들은 불완전한 성원권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신분사회와 모욕 vs 현대사회와 굴욕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모욕할 수는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면 그 사회에는 신분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때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차별은 의례화되고 공동체 질서의 일부가 되며, 차별당하는 집단은 모욕을 받아들인다는 조건하에 사회 안에 머무를 자격을 얻게 된다. 현대사회의 발전은 이러한 신분 질서를 해체하며, 이는 개인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상호작용 의례가 신분적 의례를 대체하는 과정이자, 그때까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사회적 성원권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와 상호작용 질서는 밀접히 결합되어 있기에, 현대인들은 형식적으로 평등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불평등을 경험하며, 신자유주의의 노동 통제는 신분적 '모욕'을 더욱 미묘하고 일반화된 ‘굴욕’으로 대체한다. 

 

우정의 조건인 절대적 환대       현대 사회는 구조와 상호작용 질서를 구별함으로서 지위와 역할이 다른 사람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우정을 맺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경제력 없이 우정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고, 가부장제 하에서 경제권이 없는 피부양자는 부양자에게 쉽게 종속될 수 있으며, 환대는 흔히 주인의 의지에 따라 조건부로 주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모두에 대해 우정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이념형으로서의 현대사회와 원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우정의 조건은 ‘절대적 환대’이지만, 이는 흔히 오해하듯 사적 공간의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개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절대적 환대란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고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이며, 그러한 환대는 가능할 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회의 원리인 절대적 환대      절대적 환대는 현대 사회의 성립을 위한 기본적인 전제이자 작동 원리로, 상대방의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적대에도 지속되는 환대를 의미한다. ①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란 모든 인간은 출생과 더불어 사람이 되고, 공적 공간에서 의례적으로 평등하며, 개인 정체성 서사의 최종 편집권이 공동체가 아닌 당사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②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란 우리가 벌거벗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왔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를 맞이한 사람들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철저히 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③ 복수하지 않는 환대란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 자체를 빼앗거나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란 본대 절대적 환대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며, 절대적 환대 없이는 현대사회는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신성한 것     사람은 신성하기 때문에 의례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의례의 대상이기 때문에 의례의 수행을 통해 비로소 신성해진다. 이 경우 신성함을 부여하는 힘이 사회에 있다면 박탈할 힘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을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는 것, 그들에게 자리를 주고 그 자리의 불가침성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사람의 신성함을 부인하려고 하지만 신성함의 관념을 도덕의 토대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 사회의 도덕적 기초에 있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절대적 환대의 원리, 즉 사회는 어떠한 유보나 조건도 없이 모든 개인에게 자리를 주어야 하고 어떤 명목으로도 이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누구든 사회 안에 자리가 있다는 것이며, 신성하다는 것은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이 자리에 손댈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적 단상     

 

저자는 사람이란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수행적 개념’이기에 우리는 타인의 인정에 의해서만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사회에 자신의 온전한 ‘자리’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상호작용질서 내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기본 원리로 삼는 현대 사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에게 어떠한 전제나 유보도 없이,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빼앗길 염려 없이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절대적 환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신학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람됨이 ‘본질적 개념’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하나님의 대리인인 자신들이 사회의 특정 집단에 대해 ‘배제’와 ‘조건부 인정’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강변하는 일부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입장과 흥미롭게 대비된다. 사람됨이 ‘수행적 가치’라고 강조하는 저자는 ‘절대적 환대’를 주장하는데, 사람임이 ‘본질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종교인들이 ‘조건부 환대’의 권리를 요구하다니! 그리스도인인 내게 누군가 두 견해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단호히 그리고 아무런 주저 없이 ‘실천적으로 적실한’ 전자를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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