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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영성제자도

사귐의 기도 (김영봉 지음, ivp 펴냄)

by 서음인 2021. 9. 6.

1. 내가 이 책의 저자인 김영봉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오래전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라는 책에서였다. 청부론을 주창한 김동호 목사님의 문제작 <깨끗한 부자>에 맞서 깨끗한 부자란 존재할 수 없다는 ‘청빈론’을 강조한 책이었다. 청빈은커녕 청부도 실천할 능력이 없는 내가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책이었지만, ‘김영봉’이라는 도발적인 저자의 이름이 내 마음에 확실하게 각인되기에는 충분했다. 그 후 1993년 만난 저자의 다른 책이 바로 <사귐의 기도>였다. 기도란 무엇보다 ‘만남’과 ‘사귐’과 ‘임재 안에 거함’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읽는 순간부터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나는 훌륭한 기도자가 결코 아니지만 지금도 ‘기도’라는 주제에 관한 한 로자린드 링커의 오래된 책인 <기도, 하나님과의 대화>와 함께 이 책을 인생책으로 꼽는다. 

 

2. 나는 기도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대체적으로 공감하지만 기도의 정의 혹은 방식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기도란 배후에서 끝까지 나를 믿고 지켜봐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내 머리와 내 의지와 내 심장과 내 발로 주어진 틀을 깨고 미지의 영역을 향해 과감히 모험의 발자욱을 내딛는 행위라는 것이다. 여기서 깨야할 틀은 때로 너무 익숙해 바꾸기 싫은 상황/환경일 수도 있고, 나를 지배하는 고착화된 고정관념일 수도 있으며, 의심 없이 당연시하던 성경해석이나 신학적 도그마일 수도 있다. 물론 변화는 언제나 위험하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결국 자신의 틀에 갇힌 채 퇴보하거나 몰락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끔 성경의 유명한 비유 중 하나인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종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만약 그 비유에서 주인을 신뢰하고 낮선 세상으로 나아가 용감히 분투했지만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빈털터리가 되었거나 심지어 손실을 입힌 종이 있었다면 어떤 처분을 받았을까? 나는 그 종이 적어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달란트를 ‘수호하기 위해’ 땅에 묻어 두기만 했던 종보다 덜 가혹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3.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 내가 선호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쓴 기도문을 읽는 것이다. 이 방법은 저자의 말대로 내 신앙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뿐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삶의 핵심을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즐겨 찾는 기도선집은 김영봉 목사님의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과 이현주 목사님이 엮은 <세기의 기도>다. 그리고 최근에 접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기도집인 <신학자의 기도>도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시편의 탄식시와 저주시편도 가끔 큰 위로가 된다. 최근에 분출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시편에 나오는 저주시편의 형식을 빌어 ‘21세기 저주시편’이라는 글을 써서SNS에 올려본 적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기도는 아직 응답되지 (!) 않았지만, 파괴적인 분노를 다스리는 데는 꽤 효과적이었다. 

 

4. 또하나 좋은 기도의 방식은 서양 고전음악, 특히 종교음악들을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음악듣기를 기도 전 묵상을 위한 좋은 방법으로만 소개하고 있지만, 나는 종교음악을 듣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기도의 방식일 수 있다고 감히 단언한다. 헨델의 메시아나 바하의 수난곡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팔레스트리나에서 20세기의 메시앙에 이르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쓴 미사곡이나 레퀴엠이나 엔섬 같은 서양 종교음악들은 그 자체로 절대자에 대한 찬양과 인생의 비탄, 구원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삶과 세상에 대한 소망을 절절하게 표현한 진실하고 아름다운 기도다.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 그 선율과 가사에 몸을 맡기며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얻을 수 없는 은혜와 위로와 소망을 체험하곤 한다.

 

5. 개정판을 읽어보니 분량이 조금 늘어나기는 했으나 내용 자체는 초판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기도의 교과서’로 불린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기도에 대한 충실하고 균형 잡힌 안내서로 이만한 책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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