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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영성제자도

본회퍼와 제자도 - 『나를 따르라』『신도의 공동생활』『옥중서간』

by 서음인 2021. 10. 25.

나는 본회퍼의 책을 20대 중반경의 비교적 젊은 시절부터 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의 책들은 이해하기에도 받아들이기에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봐도 “비종교적 기독교”와 “타자를 위한 존재”로 대표되는 제자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매우 급진적이다. 몇몇 참고서의 도움을 받아 제자도에 대한 본회퍼의 가르침을 이해한 대로 요약하자면 “성인이 된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자 사함 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으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꺼이 따라가며 세상을 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성인이 된 세상

 

세상은 성인이 되었다, 이 말은 과학을 통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힘과 지식을 얻게 된 현대인이 이제 ‘종교’나 ‘하나님’이라는 작업가설 없이도 세상을 설명하고 꾸려나갈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다. 성경은 두렵고 떨리는 ‘주의 날’에 벌어질 우주적 심판에 대해 준엄하게 선포하지만, 핵무기를 가진 현대인은 적어도 지구를 수십 차례 ‘주의 날’에 벌어질 파멸로 이끌 힘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광풍을 극복하는 일은 온전히 과학의 몫이며, 코로나와 관련해 교회를 향한 세상의 유일한 기대는 오직 질병을 퍼뜨리지 말아달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통적 신학의 응답은 변화된 현실을 애써 무시한 채 '인간의 철저한 무능'이라는 전통적 도그마의 모래더미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거나, 인간이 아직 도달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영역에 거하시는 ‘틈새의 하나님’(God of the gap)만을 열심히 찾아다니거나, 하나님을 고난이나 죽음 같은 한계 상황을 해결해주는 ‘미봉책’이나 ‘해결사’(기계 장치의 신, Deus ex machina)로만 동원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인된 세상을 거부하는 기독교는 갈수록 '산 자의 종교'에서 '죽을 자의 종교'로 전락해 가고 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성인된 세계란 종교의 시대가 지나가고 무종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종교’란 인간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나 초월적 하나님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을 의미하며, 신학이 이러한 '종교성'에 근거해 세워지게 되면 ‘성숙한 인간’을 공격하면서 ‘해결사 하나님’ 찾기나 비굴한 의존심으로 퇴행하게 된다. 그러나 성인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어린아이에게 하듯 매사를 시시콜콜 지시하고 간섭하며 뒤치다꺼리해 주는 분이 아니라, 성인이 된 인간에게 세상을 맡기고 마치 계시지 않는 것처럼 약함과 무력함 속에 존재하는 분이다. 성인이 된 세상에는 더 이상 ‘해결사’나 ‘미봉책’으로서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스스로의 발로 대지를 굳게 디디고 서서 책임적 존재로 자신에게 맡겨진 세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 하나님은 신학적 개념이나 교회의 울타리에 국한된 분이 아니라 세속의 한복판에 계시는 초월자이며, 우리는 삶의 한계에서가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인간의 약함에서가 아니라 강함에서, 죽음과 죄가 아니라 삶과 인간의 선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이해해야 한다.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자 사함받은 죄인들의 공동체, 교회

 

값싼 은혜는 그리스도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제자도 없는 은혜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댓가로 내어준 결과 얻어진 값진 은혜이며,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성도들에게 제자도의 삶, 곧 순종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로부터 오는 은혜의 선물로, 그리스도가 인간 가운데 공동체의 형태로 존재하는 곳, 즉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며, 제자들은 값비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바로 이 공동체로부터 얻는다. 또한 교회는 스스로를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함 받은 죄인들'로 규정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이 말은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 타인을 정죄하거나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사죄의 은혜를 증언하고 그들을 섬기는 자리에 서는 일이라는 의미다. 부름 받은 죄인인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남과 함께 그리고 홀로 기도하고 명상하고 예배하고 섬기며 죄를 고백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지만, 이러한 사귐과 훈련은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 한 가운데서 ‘세상’을 섬기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스도가 타자를 위한 존재였듯 교회도 타자를 위한 존재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아감

 

값비싼 은혜는 우리를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삶의 전 과정을 통해 철저히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아갔던 그리스도를 쫒는 제자직으로 부른다. 성숙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란 종교 의식에 참여하거나 초월적 황홀경을 체험하거나 율법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세속 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자, 세상에 내려와 전적으로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사셨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삶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종교가 아닌 삶으로 불렀으며, 우리가 제자로 부름 받은 궁극적인 자리는 황홀한 피안이나 은혜로운 교회가 아니라 거칠고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 한 가운데다. 제자의 핵심적 표지는 권력이나 능력이나 경건이나 지식이 아니라, 세상 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다. 성숙한 세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세계와 역사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받아들이면서, 성도 이전에 참된 인간으로 삶과 행동을 통해 세상 한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간략한 단상

 

1. 본회퍼의 생각이나 소망과 달리 21세기에도 영성과 종교(들)은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심지어 본회퍼로부터 시작된 세속화 신학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세속 도시』의 저자인 스타 신학자 하비 콕스조차 21세기는 새로운 종교적 부흥의 시대이자 성령의 시대가 될 것이며,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신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신들(그리고 여신들) 의 재탄생’으로부터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21세기 과학시대의 대중문화 속에서 수많은 ‘신들과 여신들’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다!

 

2. 그렇다면 본회퍼는 결국 실패한 선지자가 되고 만 것일까? 과연 인간은 영원히 성인이 되지 못하는 “신의 어린이”로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 난 것인가? 과연 기쁘고 은혜 가득한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넘어 거칠고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 한 가운데로 나아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아가려는 인간의 시도는, 신의 처절한 복수를 불러오는 오만(hubris)에 불과할 뿐일까? 오히려 성인이 되기를 거부한 채 끝끝내 말 잘 듣고 책임지지 않는 어린이로 남기를 고집하는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태만’의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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