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기독교/영성제자도

어둔 밤 (십자가의 聖요한 지음, 최민순 옮김, 바오로딸 펴냄)

by 서음인 2020. 11. 19.

어둔 밤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성()요한이라는 별칭으로 더 익숙한 스페인의 신비주의자 후안 데 예페스(1542-1591)의 대표작으로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어둔 밤」이라는 시에 대한 해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강력한 시련인 어둔 밤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비록 하나님(또는 모든 희망)이 철저하게 사라지는 경험인 어둔 밤은 꼭 종교적 영성가나 신비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보편적인 경험에 가깝지만, 그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어둔 밤'과 관련된 세세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리처드 포스터가 편집한 영성을 살다신앙고전 52, 그리고 케네스 리치의 하나님 체험과 같은 책들을 도움을 받고서야 간신히 최소한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둔 밤이란 경건 생활에 열심을 내던 사람이 거기서 얻었던 모든 기쁨을 잃어버리고,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철저한 메마름과 어둠 속에 던져진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께로서 오는 강렬하고 신성한 빛을 인식하지 못하고 어두움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러한 빛은 인간의 외부로부터 오는 감각적 즐거움과 이성에서 나오는 자연적 빛을 어둡게 만들 뿐 아니라, 정제하는 불이 되어 교만 · 영적 탐욕 · 분노 · 질투 · 나태와 같은 모든 불완전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게 된다. 따라서 이 상태가 되면 인간의 영혼은 단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제로 텅 비어 있게 되며, 하나님이 이러한 "감성의 (어둔) 밤"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감각적 정화가 없이는 영적 생활의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계를 넘어 하나님과의 최종적인 합일을  위해서는, 인간의 어떠한 능동적 협력이 없이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도하시는 "영의 (어둔) 밤"을 통과해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관상 혹은 보다 깊고 단순한 수용의 단계에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 책에서 십자가의 요한이 설명하는 어둔 밤이라는 모티프는 성경의 이야기 중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욥이 그의 고난 가운데서 겪었던 경험과 유사하며,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빛에 의해 눈멂회심을 경험했던 사도바울은 이 체험을 "이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성서의 인물들과 십자가의 요한이 동일하게 겪었던 어둔 밤체험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님과 깊이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부재의 경험' 그리고 정화를 통한 옛 자아의 철저한 죽음과,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는 새 자아로의 위대한 변용(metamorphosis)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둔 밤’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을 강조하는 요한의 생각은 인간이 앎의 길이 아니라 알지 못함의 길(via negativa), 능동의 길이 아니라 수동의 길을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부정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리처드 포스터는 신앙고전 52에서 어둔 밤이 없이 영적인 성숙을 바라는 것은 훈련 없이 챔피언이 되려고 하는 운동선수와 같고깊은 사고 없이 위대한 책을 쓰려고 하는 저술가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수동적인 어둔 밤을 통과해 마음 속에서 일체의 감각적인 체험과 내면적 이성의 빛을 없앰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직관적인 관상이나 완전한 연합에 도달하는 것이 영성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이 위대한 영성가의 주장에 전부 동의할 수는 없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가톨릭 영상가인 토머스 머튼은 관상이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과 그에 반하는 세상의 불의와 압제를 명료하게 보고” “인식한후 거짓을 꿰뚫는 진리의 말씀으로 그릇된 의식과 그에 근거한 세계에 맞서는 위험한 행위이며 ...... 기독교적 관상과 영성의 목표는 개인의 내적 평화가 아닌 하나님 나라로 여기에는 현실과의 갈등과 그에 따르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라고 말한다. 성공회 사제이자 탁월한 영성 신학자인 케네스 리치는 관상을 갈등회피와 내면의 평화라는 심리학의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결국 맹목과 무지 속에서 자신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사이비 내면성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 ..... 그리스도인의 관상이 일어나야 할 참된 장소는 부정의로 가득한 이 세상, 정치의 세계다라고 강조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의 관상의 대상이 '하나님 자체'가 아닌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상'이며, 영성 생활의 진정한 목표는 신과의 합일에서 느끼는 영적인 기쁨과 평화가 아닌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치열한 영적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토머스 머튼과 케네스 리치의 생각에 공감한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수동'과 '부정'의 방식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이 신비주의 영성가의 생각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