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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세계/빈곤기아개발

빈곤의 경제학 (폴 콜리어 지음, 살림 펴냄)

by 서음인 2016. 5. 30.

1.옥스포드 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아프리카 경제 전문가인 저자는 오늘날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리 주로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세계 최빈국들(저자의 표현으로는 밑바닥 국가) 에 거주하는 10억의 인구는 전 지구적인 경제발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 밑바닥에서 헤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밑바닥 국가들이 그들을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하는 네 가지의 덫 중에 적어도 한두 가지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한다. (1) 내전이나 쿠데타와 같은 만성적인 분쟁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분쟁의 덫 (2) 풍부한 천연자원의 존재가 오히려 경제성장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천연자원의 덫 (3)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4) 작은 국가의 나쁜 통치라는 덫이 그것이다.

 

2. 저자는 이러한 밑바닥 국가들의 핵심 문제는 성장의 정체이며, 따라서 경제성장이야말로 이들 국가들의 개발의 핵심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밑바닥 국가들이 빠져 있는 빈곤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처방 역시 상황에 따라 다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처방에는 (1) 오랜 동안 밑바닥 국가들의 기아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던 원조 뿐 아니라 (2) 분쟁 종식 이후의 평화 회복과 쿠데타 억제를 위한 군사 개입 (3) 밑바닥 국가들이 서구 은행에 예치해 놓은 부정부패와 관련된 예금을 반환하기 위한 법률적 장치 (4) 밑바닥 국가들이 국제적 행동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적절한 국제규범 및 규약의 제정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각각의 처방은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되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전략적으로 사용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선진국들이 이 문제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 나라의 빈곤의 종식과 경제발전을 위해) 개입하는 것만이 이들 밑바닥 국가의 빈곤의 악순환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3. 오늘날의 세계는 말 그대로 ‘지구촌’ 이며, 모든 인류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이다. 꼭 인류애와 사해동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지구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빈곤과 테러, 기아와 전쟁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오늘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세계에서 24번째로 해외원조공여국에 가입했다는 나라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마저도 가끔은 깜짝 놀랄 정도로 국수주의적이고 폐쇄적인 태도(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이나 잘 돌봐라)를 보이는 것 같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잊혀져 있는, 세계에서 가장 고통받는 밑바닥 10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4. 저자는  동정심에 사로잡힌 무분별한 원조, 자유무역(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세계화) 에 대한 반대, 군사적 개입을 두려워하는 어설픈 민주주의가 최빈국 10억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거기에는 분명히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진실이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훌륭한 경제학 교수요 ‘아프리카 전문가’ 인 저자는 주로 ‘연구실’ 과 ‘정책’이라는 현장에서 ‘통계’나 ‘수량적 계측’ 이라는 무기를 사용해서 빈곤과 대항해 왔을 뿐, 그가 실제로 도와야 할  밑바닥 사람들의 삶과 고난 그리고 밑바닥 국가들의 빈곤을 유발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다양한 견해(예를 들자면 세계체제론) 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성장이야말로 밑바닥 국가들이 추구해야 할 핵심 과제라는 저자의 주장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정무역 운동을 통한 정당한 이윤의 보장을 일종의 자선행위로 간주하는 충격적인 시각이나 밑바닥 국가들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들의 군사적 개입 필요성을 당연시하는 태도,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 정도를 좌파적인 시각을 가진 책으로 소개하는 인식 수준이라면, 저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가 서 있는 ‘주류 경제학’이라는 자리가 과연 밑바닥 국가들의 가난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위치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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