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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세계/빈곤기아개발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산책자 펴냄)

by 서음인 2016. 5. 29.

1. <동물해방> <죽음의 밥상> 과 같은 논쟁적인 저술들로 유명한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이 책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절대 빈곤층과 대규모 부유층이 공존하는 세계’로 정의한다. 세계 70 억 인구 중 14 억 명이 하루 수입 1.25 달러 이하인 절대빈곤의 늪에 빠져 가장 기초적인 인간으로서의 욕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로 살아가고 있는 반면에, 주로 부유한 나라에 거주하는 10 억 명의 사람들은 과거 왕이나 귀족들도 누릴 수 없었던 호사를 누리며 말 그대로 ‘살이 쪄서’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부유한 선진국들의 평균 대외 원조액은 2006 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소득의 0.46% 로 UN 의 권장치인 0.7% 보다 훨씬 낮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의 경우 이 비율이 0.18%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조의 대부분은 자국의 정치, 군사적 이해에 중요한 국가 -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 - 에 집중되어 있어, 실제로 도움이 가장 절실한 세계 최빈국들은 원조의 손길에서 소외된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의 현실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2. 저자는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은 당연한 정서가 아니며, 다른 사람의 곤란을 우리 자신의 곤란처럼 여겨야 한다는 사실 역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핵심적 이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기독교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는 내가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너도 남에게 행하라는 황금율의 정신에 따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중대한 의무라는 사실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우리는 매년 1천 8 백만 명이라는 소중한 생명이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이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반드시 자문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가 한 인간의 생명에 상당하는 가치를 지닌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막기 위해 구호단체에 기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보통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보다 훨씬 많이 남을 돕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고 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3. 저자는 또한 (1) 서방 선진국 (특히 미국) 이 이미 충분한 액수의 원조를 베풀고 있으며 더 이상의 원조는 개인의 삶이나 미국의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미국의 해외원조 자선액은 총소득에 비해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며, 우리가 그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많이 원조한다 해도 우리의 삶에는 거의 변화가 없겠지만 그 결과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대답한다. 

(2) 대부분의 기부가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의도가 아닌 감추어진 개인의 이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돈이 ‘순수한’ 의도로 쓰였는지보다 결과적으로 ‘좋은’ 곳에 쓰였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며, 그들이 누군가를 돕고 있다고 ‘나팔을 불고’ 있다면 오히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기부행위에 동참하도록 권유하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히려 기부를 통해 자신의 삶에 의미와 활력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3) 해외원조가 실질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해를 끼쳐 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국가에 대해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제대로 집행된 원조가 해당 나라의 제도개선과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는 증거가 있을 뿐 아니라 원조의 효과에 깃든 그러한 불확실성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야 하는 우리의 의무를 지워버리지는 않는다고 대답한다. 비록 그것이 해당국의 경제발전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원조 프로젝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가능성이 많이 있다면 우리는 조건 없이 베풀어야 한다.

4. 저자는 우리가 삶이 주는 기쁨을 최대한 누리며 사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생사보다 우리 자신의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모든 인간의 생명을 동등하게 귀히 여기는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생명만큼 중요한 것을 희생해야만 추가로 기부할 수 있는 선에 이르게 될 때까지, 다르게 말하자면 더 이상 기부를 하면 우리의 기부를 통해 막을 수 있는 악 만큼 중요한 뭔가를 희생하게 되었을 때까지 기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정당한’ 윤리적 원칙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하여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돕는 데 나서기를 주저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세계 빈곤퇴치를 위해 연소득의 5% 를 기부하고 부유할수록 기부의 비율을 더 늘리는 것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고 기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나, 내가 돕게 될 대상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일. 혹은 본인이 명시적으로 거부의 의사를 표하지 않는 한 수입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기부하는 일 (강제적 자선정책)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이러한 기부행위는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줌으로서 기부자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5. 해방 당시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1945년에서 1995년까지 50여년에 걸쳐 세계 각국으로 부터 총 128억불의 원조를 받았던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으며, 2013년도에는 국민총생산의 0.15%에 해당하는 19억불, 우리 돈으로 약 2조 원을 공적개발원조에 쓰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비정부 민간구호단체들이 2013년에 모금한 총 액수가 1조 4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과거에 비해 기부문화도 많이 활성화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12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한다는 한국의 원조 규모는 세계의 원조 공여국 중 액수로는 17위 비율로는 22위에 불과하며, 오랜 세월 단일민족 단일언어로 살아온 역사적 폐쇄성과 아직 해결되지 못한 불평등과 부정의의 문제가 산적해 있는 국내의 정치사회적 상황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해외원조나 해외에서의 NGO 활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상당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할 일이 산더미인데 무슨 외국까지....) 

그러나 아무리 세계시장에 많은 물건을 팔아넘기고 정의롭고 부강한 나라가 된다고 해도 만약 국제사회에서 마땅히 져야 할 의무에 인색하다면 우리는 결코 존중받는 나라가 될 수 없다. 이 사실은 개인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이웃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는가? 반 이상이 수술과 안경착용만으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기에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1억 8500만 시각장애인 이웃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별 지구에서 관대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기부가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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