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세계/빈곤기아개발

빈곤의 종말 (제프리 D. 삭스 지음, 21세기 북스 펴냄)

by 서음인 2016. 5. 28.

1.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이자 유엔 새천년개발목표 (The Millenium Development Goals, MDG) 특별자문관으로 지난 20년간 세계 10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빈곤퇴치를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던 저자는 이 유명한 책에서 극단적 빈곤을 끝내고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에 주어진 과제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과제의 핵심은 스스로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극단적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경제발전의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1) 2015년까지 극단적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목표를 포함하는 새천년개발목표 (MDG) 를 달성하고 (2) 2025년까지 세계의 모든 극단적 빈곤을 끝내며 (3) 이를 위해 2025년 이전에 세계의 모든 빈국들이 경제발전의 사다리 위로 확실히 올라갈 수 있도록 하고 (4) 부국들의 적절한 재정지원을 통해 이 모든 목표를 달성한다는 네 가지를 우리 시대에 이루어야 할 구체적 목표로 제시한다.

2. 2013-2014년판 유엔 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인구의 1/6에 해당하는 12억명은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절대빈곤 (혹은 극단적 빈곤) 의 함정에 빠져 있다. 더 큰 비극은 이들이 전 세계적인 경제발전의 물결에서 소외되어 발전의 사다리에 발도 올려보지 못한 채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 역사적으로 지난 200년 동안 가장 가난한 나라와 가장 부유한 나라의 격차가 급격하게 심화되어 왔으며, 저자에 의하면 식민지배의 유산이나 일방적인 착취가 아닌 기술과 사상의 차이가 이 거대한 간극의 중요한 이유다. 이 사실은 경제개발이 종속이론가들이나 세계체제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따라서 극단적인 가난에 처한 나라들도 경제개발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또한 흔히 가난한 나라들이 비난받는 이유인 ① 만연한 부패 및 잘못된 통치②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인 문화적 규범이 그들이 경제성장에 실패하는 핵심적인 원인으로도 여겨져 왔지만 이것은 사실의 일부에 불과하며, 경제성장의 실패는 이들 외에 ③ 자연 및 지리적 환경, ④ 대외채무를 비롯한 재정적 빈곤, ⑤ 교역에 영향을 끼치는 지정학적 문제, ⑥ 혁신의 결여, ⑦ 과다한 인구를 포함하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너무 가난해서 장래를 위해 저축할 수도 자본을 축적할 수도 없게 만드는 ⑧ 빈곤 그 자체의 함정이야말로 대부분의 빈국에서 경제성장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부패한 나라들이 너무 많은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치로  용감하게 빈곤과 싸우는 나라들이 너무 적은 원조를 받는다는 데 있다.  

 3,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IMF나 세계은행은 위와 같은 경제성장 실패의 구체적 원인에 대해 무지한 채, 모든 빈곤의 원인이 ① 취약한 통치구조 ②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 ③ 정부의 지나친 지출 ④ 국가의 지나친 소유에 있다는 전제하에 ① 긴축재정 ② 자유화, ③ 사유화, ④ 훌륭한 통치구조의 확립이라는 가혹한 경제개발 프로그램들, 소위 ‘구조조정 정책’을 피지원국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함으로서 대다수의 나라에서 오히려 빈곤을 악화시켜 왔다. 그러나 저자는 빈국들이 선진국들의 적절하고 꾸준한 재정지원을 통해 일단 발전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 놓으면 그 이후로는 경제발전의 거대한 메커니즘에 의해 스스로 상승을 계속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가난한 나라들이 극단적 빈곤을 탈피하는 데 필요한 도움은 일단 경제성장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4. 미국의 2004년 대외원조 금액은 국민총생산 (GNP) 의 0.18% 에 해당하는 150억 달러로, 4500억 달러의 군비에 비하면 1/30에 불과했다. 또한 2002년 전 세계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기부한 금액은 아프리카인 1인당 30달러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다양한 비용으로 서구인들에게 다시 지급된 돈을 제외하면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실제로 사용된 원조금액은 1인당 12 달러 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는 각각 3달러와 6센트) 저자는 이렇듯 원조 금액 자체가 극히 미미한 상황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가 낭비되고 있다는 주장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며, 노예무역과 식민화 냉전 등으로 끊임없이 아프리카를 약탈하거나 학대해 온 서구가 유일하게 하지 않은 일은 아프리카의 장기발전을 위한 투자였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극단적 빈곤이야말로 테러리즘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기에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서 군사적 접근으로 일관하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일이며, 테러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대량파괴무기’ 가 아닌 AIDS 치료약품, 말라리아 방지 모기장, 안전한 급수를 위한 우물과 같은 ‘대량구제무기’ 이고, 따라서 극단적 빈곤의 종식이야말로 전세계적 안보를 위한 진정한 보루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5. 저자는 적절하고도 지속적인 개발원조야말로 세계의 극단적 빈곤을 끝내기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지난 2002년에 191개 모든 유엔 회원국이 유엔밀레니엄 선언에 서명함으로서 동의한 8개조 목표로, 극단적 빈곤과 질병과 결핍을 줄이겠다는 목표들을 구체적인 수치와 일정표로 제시하고 있는 유엔 새천년개발목표 (MDG) 에 잘 담겨 있으며, 이러한 새천년개발목표야말로 최빈국들에게 지난 20년간 실패해온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정책을 대체하는 훨씬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계획에 따르면 극단적 빈곤의 종식을 위해 필요한 개발원조의 총 비용은 선진국 국민 총생산의 0.7% 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극단적 빈곤의 종식은 부유한 사람들의 커다란 희생 없이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이며, 문제는 개인들의 기부의지가 아닌 더 많은 노력을 요청할 만한 정치적 지도력의 부재이기에 선진국 지도자들은 이 0.7% 를 위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부자들 역시 극단적 빈곤으로 고통받는 국가들에 대한 도덕적 훈계나 손가락질을 멈추고 겸양과 실제적 지원으로 이 희망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2025년까지 빈곤을 완전히 종식하기 위한 조치로  ① 빈곤 종말에 대한 약속 ② 구체적이고 계량화된 행동계획의 채택 ③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 높이기 ④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미국 역할의 회복 ⑤ 경제정의와 계몽된 지구화를 위한 IMF 와 세계은행의 역할 ⑥ 전문적 역량을 갖춘 국제연합의 역할 강화 ⑦ 빈곤탈출을 위한 세계적 과학의 활용 ⑧ 지속 가능한 개발의 촉진 ⑨ 개인적 수준의 약속이라는 아홉 가지를 제시하면서 이 책을 마치고 있다. 

 6. 국제정치나 경제 분야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는 저자의 주장을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 그러나 (1) 역사적으로 부국과 빈국 사이에 심각한 경제적 격차가 발생한 원인이 식민지배로 인한 착취나 억압이 아닌 사상과 기술의 차이 때문이었다는 인식이나 (2) 일단 경제발전의 사다리에 올라가기만 하면 저절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발전이 지속된다는 사고 (3) 선진국의 지속적이고 꾸준한 개발원조야말로 가난한 나라들이 극단적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저자의 시각이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며 낙관적일 뿐 아니라 빈곤의 구조적이고 국제정치적인 측면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령 그의 분석과 처방에 100%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경제학자가 뜨거운 가슴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인도적 과제인 극단적 빈곤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또한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대량구제무기’ 야말로 테러와 전쟁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저자의 호소는 퍼주기 운운하며 북한에 대해 호전적 태도로 일관하는 현 정권과 이 땅의 냉전세력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미래가 우리 세대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자. 우리가 희망이라는 강력한 물결을 일으켜 세계를 치유하기 위해 뜻을 모아 함께 일했다고.”



댓글